[VOM 피플] 이주노동자의 애환, 방송으로 전하는 아이수로야씨

매월 첫째주 토요일이면 MWTV 이주민방송에서는 기자단 수업이 열린다. 이주민에 대한 이해와 기자에 대한 소양을 같이 익히는 이주민방송 기자단 수업에 매번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이주민 기자가 있다. 바로 네팔에서 온 아이수로야(Aishwarya Shrestha) 씨다. 기자단 수업이 주로 한국어로 이루어져 소통이 원활하지 않음에도 그는 영어가 가능한 참석자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귀를 쫑긋 세운다.

▲ MWTV 기자단 수업에 참석한 아이수로야 씨

기자단 수업에서 보여준 조금 과묵한 모습과 달리 카메라와 마이크 앞에 서면 그는 180도 달라진다. 라디오와 유튜브에서 속도감 있고 자신감 있는 어조로 네팔어 뉴스를 진행하는 아이수로야 씨. 놀라운 것은 그가 뉴스를 녹음하는 곳은 전문 스튜디오가 아닌 바로 본인의 숙소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의 본 직업은 따로 있다. 주경야송(晝耕夜送), 낮엔 김공장에서 일하고 밤이면 방송을 한다.

출입국 통계에 의하면 2016년 6월말 기준 한국에 거주하는 네팔 인구는 3만2천명에 이른다. 한국과 네팔, 전세계에 있는 네팔 국민들에게 인터넷 라디오와 영상으로 한국 이주노동자의 삶을 전하고 있는 아이수로야 씨를 만났다. 네팔어 통역엔 덤벌 수바 MWTV 대표, 영어 통역엔 이나단 기자가 도움을 주었다.

안녕하세요, 아이수로 씨. 현재 한국에서 일을 하고 계신데요, 한국은 어떻게 오게 되셨나요?

2011년에 고용허가제(EPS)로 와서 김 만드는 공장에서 일 하고 있어요. 한국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한국에 관심이 있어하고 한국어를 공부해보고 싶어해서 친구들과 같이 6개월 준비해서 EPS로 오게 되었어요.

M 일도 하시면서 RJ(radio jockey)랑 VJ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계시는데요. 방송 활동을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라디오를 1주일에 1번씩 월요일 저녁에 하고, 유투브로 방송도 해요. 네팔11라디오(www.nepal11.com)에서 라디오를 하고, 영상은 Wave TV(onlinewavetv.com)랑 네팔리코리아(nepalikorea.com) 등으로 나가요.

▲ 네팔 온라인 방송 online Wave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장면 캡쳐 ⓒ online Wave

M 네팔에서부터 방송 활동을 하셨나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네팔에서는 원래 수학 선생을 하다가 라디오 진행자로 직업을 바꿨어요. 네팔에서 5년간 네팔11라디오에서 뉴스 진행자(news reader)를 했어요. 한국에 입국 후 3개월 후부터 스카이프로 네팔11라디오 진행을 계속했어요. 지금은 네팔기자협회 한국지부에서 사무처장을 하면서 포털사이트도 운영하고 있어요.

(참고: 네팔기자협회 한국지부는 2007년에 설립되었고, 덤벌수바 MWTV 대표가 초대회장이다.)

M 한국에 네팔 저널리스트들이 많이 있나요?

20명 이상 돼요.

M 덤벌수바 대표와는 원래 아는 사이인가요? 

덤벌수바: 고향이 같아요. 네팔 다란. 저는 예전부터 기자생활했었어요. 아이수로야 씨가 라디오 해보고 싶다고 찾아왔었어요.

M 방송을 집에서 직접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어려움은 없나요?

라이브로 방송하는데, 인터넷으로 하는 거라 가끔 인터넷이 나가서, 얘기하다 끊어지기도 해요. 바깥 소음이 잘 들어와서 조심해야 하구요.

 

M 동료들도 아이수로야 씨가 방송 하는 거 알고 계세요?

사장님은 몰라요. 알면 못하게 할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 잘 때 방해되고 소음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방송할 때 항상 창문을 꼭 닫고 방음 확실히 되게 하고 해요. 동료들은 알긴 아는데, 방송시간엔 친구들이 나갔다가 끝나고 들어왔어요. 그동안 친구들은 전화하거나 페이스북하거나 그래요. 지금은 다행히 방을 혼자 쓰고 있어요.

방송 소재는 어디서 구하나요.  

한국 이주노동자의 생활에 대해서 주로 저와 주변 이야기를 소재로 해요. 네팔 커뮤니티의 음악, 문화 행사들이 많은 편이에요. 최근에는 네팔 문학인들 시낭송 모임이 있어서 홍보를 했어요.

방송 하면, 네팔 현지에서 반응은 어때요? 한국에 와서 고생하는 이주노동자분들도 많으신데, 코리안드림의 실상을 잘 아는지도 궁금해요.

그런 얘기를 하면 한국에 있는 분들 반응이 많고, 네팔 사람들은 그렇구나 하는 정도예요.


▲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이자 저널리스트 아이수로야

M 한국생활에서 힘들었던 점, 즐거웠던 점 한가지씩을 꼽는다면요?

한국에 일하러 온 네팔인들 대부분이 그렇게 행복하지 않아요. 한국은 일을 많이 시켜요. 네팔과 분위기가 매우 달라요. 한국은 무조건 일을 많이 해야 하는 시스템이에요. 처음에는 공장에서 아침 6시 30분부터 저녁 8시까지 하루종일 일했어요. 회사가 바빠서 그렇게 일할 수 밖에 없었어요. 주 6~7일 일하고, 격주로 일요일에 1번 쉬어요. 처음엔 많이 힘들었어요.

주말에만 기분이 가장 좋아요. 친구들 만나서 밥먹고 얘기할 수 있어서 가장 행복합니다.

한국 처음 왔을 때 김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네팔사람이 회사에 저 혼자밖에 없었어요. 동료와 소통이 안 되어서 답답하고 외로운 시기였어요. 태국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태국말로 얘기하고 서로 정보를 소통하는데, 저는 어울리긴 해도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 왔을 때 일주일간 많이 앓았는데 그런 심리적인 이유가 컸어요. 일년이 지나면서 차츰 나아졌어요.

방송은 한국 와서 3개월 지나고 나서 네팔11라디오에서 연락이 왔어요. 방송을 해달라고요. 그때부터 매일 밤 라이브로 방송했어요.

 

M ‘돈 많이 벌어(Harama Hara)’라는 뮤직비디오를 봤어요. 영상은 덤벌수바 대표가 감독하고 곡은 아이수로야씨가 직접 작사 작곡하고 노래도 불렀다고 하던데요. 돈 벌러 한국에 오는 이주노동자의 삶과 현실이 슬프지만 재치있게 잘 녹여진 것 같아요. 원래 문학이나 음악을 좋아했나요?

어렸을 때부터 재능이 있어서 손님 오면 노래해주라고 시키곤 했어요. 지금도 음악, 문학에 관심 많아요.

▲ Harama Hara MV(감독: 덤벌 수바, 작사/작곡/보컬: 아이수로야) 간간히 들어간 ‘돈 많이 벌어’, ‘허리 아파요, 머리 아파요’ 등의 한국어 가사와 뮤직비디오의 장면이 이주노동자가 처한 부당한 처지를 압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한국에서 5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는데, 지난 5년을 돌아보면 어떠세요?

매우 만족해요. 처음 1년간은 매우 부정적이었는데, 지금은 희망적이에요. 많은 걸 배우고 느꼈어요. 그중 하나가 어떻게 시간관리를 하는지를 배운 거에요. 나에게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는 거. 전세계 네팔인들이 쉴새 없이 제게 연락을 해와요. 그걸 처리하고 사람들 연결하는 것들에 보람을 느끼고 살고 있어요. 그리고 한국 생활하면서 좀더 활동적이고 열린 사고를 하게 되었어요.

네팔에 돌아가선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라디오, TV를 계속할 거에요. EPS 기간 종료 후에 한국 사장이 초청해서 한국에 재입국하게 되면 계획이 달라질 수도 있어요.

M 네팔에는 공동체 라디오가 활성화 되어있다고 들었어요. 발달이 많이 된 이유가 있을까요?

공동체 라디오가 400개 이상이 있어요. 공동체 라디오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몇가지 필요한 자격만 갖춰서 제출하면 정부가 검토해서 바로 라이센스를 내줘요. 용인, 안산에서도 그런 모임이 생겨나고 있어요. 소통에 대한 국민의 욕구가 확실히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한글 이해에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도 기자단 수업에 열심히 참석하셨는데요, 수업이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해요. 

큰 도움이 되었어요. 언어 때문에 이해 안되는 게 많았지만, 사람들의 표정, 그림의 상징적 의미를 보면서 유추하면서 알아들어요. 여러 가지 주제로 수업을 해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아이수로야씨의 왕성한 활동 기대할게요.

▲ MWTV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한 아이수로야 씨

그의 페이스북에서는 끊임없이 방송 중계가 올라온다. 지인의 기타 반주에 맞춰 동남아시아 특유의 바이브레이션 넘치는 창법으로 노래하는 그의 노래실력은 휴대폰으로 촬영했는데도 스튜디오에서 더빙한 게 아닌가 싶게 수준급이다. 골방 녹음에서 스튜디오 녹음까지 종횡무진하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를 보며, 네팔 커뮤니티의 단단한 조직력과 저력을 느낀다.

그러나 이렇게 분초를 쪼개서일지언정 일터에서의 힘겨움을 토로하고 재충전할 수 있는 창구가 있는 노동자들은 소수일 것이다. 고용허가제 시행 12년 이래 한국에서 자살한 네팔 이주노동자들의 수가 약 100명에 이른다고 한다. 한국생활 초기에 스스로 심리적 어려움을 겪었던 아이수로야씨는 이주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해서 꼭 기사를 쓰고 싶다고 한다. 많은 감수성과 재능을 지닌 그에게 네팔 이주민 커뮤니티와 한국 사회의 가교 역할을 기대해본다.

글 | 숲씨 웹진 VOM 편집장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과 생명 아닌 것들의 벗이 되고자 합니다. 악의 평범성, 폭력의 내재화를 끊어내는 일을 나와 내 이웃으로부터 실천하고자 합니다. 평화에 물들고 평화를 물들이는 삶을 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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