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에 대한 환대, 우리 자신에 대한 배려
김세진 |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
“다시는 치킨을 먹고 싶지 않다!”
송환대기실에 약 8개월간 구금되어 있다 풀려난 시리아 난민이 한 말이다. 작년 11월부터 한국의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한 시리아 난민들은 난민심사조차 회부되지 못한 채 송환대기실에 구금되었다. 이렇게 구금된 시리아 난민 28명은 햇빛도 비치지 않는 곳에서, 거의 매일 삼시 세끼 치킨버거와 콜라만 먹으며 지냈다. 빈대가 끓어 피부병으로 괴로워하고, 양치질하고 싶어도 치약이 없어 비누로 가글하며 근 8개월을 지냈다.
난민 하면 시리아 난민을 떠올릴 정도인데 한국은 시리아 난민조차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난민 인정에 인색하다. 2015년 한국의 난민인정률은 3.8%에 불과한데, 2015년 유엔난민기구 UNHCR이 발표한 글로벌 동향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 대비 난민보호 수용력은 189개 국가 중 119위이다. 국내총생산 세계 11위, 1인당 국내총생산 28위 경제 규모에 비하면 한국의 난민인정률은 턱없이 낮다.
난민인정률 뿐만 아니라 난민지원도 부족하다. 난민 대부분은 월세를 사는데, 비용은 대개 지인들이나 종교 단체에서 지원받는다. 이런 도움을 받지 못 하는 경우 ‘공장기숙사’, ‘음식점,’ 또는 ‘가게 내의 임시숙소‘, ‘친구 집‘에 거주하기도 하고, ‘주거지가 일정하지 않은 사람‘도 상당하다. 난민인정자는 국민건강보험법상 지역가입 및 직장 가입이 가능하지만, 보험료를 못 내 가입을 못 하는 경우도 많다. 난민 아동은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입학을 허가하도록 돼 있어 학교장이 입학을 거부하면 먼 거리를 통학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대학진학을 원하지만 학력 증명의 어려움, 대학 입시전형 통과, 재정적 어려움으로 포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
난민신청자는 더 열악한 상황이다. 난민신청자는 신청 후 6개월이 지나기 전에는 취업활동이 불법이다. 6개월 후에는 취업활동은 할 수 있지만, 허가를 받기 위한 전제로 고용계약서와 사업자등록을 요구한다. 취업활동 허가도 나지 않은 난민을 위해 미리 고용계약서를 작성해 줄 사업주를 찾기는 쉽지 않다. 구직의 어려움은 결국 열악한 근로환경과 권리침해로 이어진다. 또 국민건강보험법상 지역가입자가 될 수 없어 건강권이 매우 취약하다. 특히 구금되는 경우도 있는데, 구금된 난민신청자의 경우 과거 박해경험 때문에 정신질환까지 우려되지만 적정한 의료서비스를 받기는 힘들다. 3년 9개월간 보호소에 구금됐던 이란 출신 난민인정자의 경우 보호소 구금기간 중 극심한 스트레스로 이빨이 거의 다 빠지기도 했다.
한국의 이러한 낮은 난민인정률 및 난민지원은 인종차별적인 외국인 정책이 그대로 적용된 결과이다. 2013년 난민법이 제정되기 이전에 한국의 난민인정절차는 출입국관리법 하에 규정되어 있었다. 출입국관리법은 외국인의 출입국 통제를 위한 법이고, 난민법은 인권적 관점에서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을 규정하는 법인데, 이렇게 서로 상호 충돌할 수밖에 없는 법을 하나의 법으로 묶어 두었던 것이다. 결국 법무부의 출입국통제적 난민정책은, 난민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고 있고, 그 결과 한국의 난민인정률은 전세계 평균 난민인정률의 1/10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현재 한국에서 난민인정자는 500여 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부는 난민과 테러를 연계하여 테러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더니, 작년 11월 언론에 마치 시리아 난민들이 한꺼번에 한국으로 몰려오는 것처럼 오보를 냈다. 나중에 법무부가 해명을 했지만, 한 번 나간 기사는 엎질러진 물처럼 주워담기 어려웠다. 이미 기사를 접한 시민들은 프랑스처럼 우리도 테러가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게 됐고, 테러방지법 제정은 급물살을 타더니 결국 제정되었다.
사실 위와 같은 오보가 있기 직전 작년 9월, 바닷가에 시신으로 발견된 시리아 난민아동 아일란 쿠르디 사진으로 난민들에 대한 연민과 동정의 마음이 일고 있었다. 한국에 난민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시민들이 필자의 단체에 전화해 난민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묻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사실 왜곡 및 과장으로 시민들은 난민들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움과 공포를 가지게 되었다. 어려움에 빠진 난민에 대한 연민의 감정은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훼손되어 버렸고, 대신 무관용과 무자비로 대체되었다. 우리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사지를 도망쳐 온 난민들을 부정하며 연습된 무관용과 무자비는 우리 사회 내의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다시 반복될 수 있고, 종국에는 나와 내 가족에게 그 화살이 돌아올 수 있다.
영국의 철학자 홉스는 ‘계산된 이기심을 가져라‘고 하였다. 지금 나의 행동이 결국은 부메랑처럼 자신에게로 피드백해옴을 아는 성숙한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서라도 타인을 돕는다고 한다. 보험처럼 누가 피보험자가 될지 아무도 모르나 누구라도 피보험자가 될 수도 있으니,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보험을 적립하는 것처럼. 지금 누군가의 어려움을 위해서 도움을 준 것이 동시에 자신에 대한 준비, 즉 타인에 대한 배려가 결국 자신에 대한 배려가 된다고 한다. 우리는 왜곡된 진실에 호도되지 말아야겠고,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타인을 더욱 배려하는 성숙한 시민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적대감이 아닌 서로에 대한 환대의 공간이 더욱 확장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김세진 |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
한방에 큰 행복보다는 작은 행복이 많은 삶을 살고 싶어하고, 그래서 일상 속에서 향기가 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마침 첫 직장인 어필에는 이런 동료들과 난민들을 만날 수 있어 많이 배우며 감사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