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M 칼럼] 모두가 아끼는 아웅틴툰 샘을 떠나 보내며

모두가 아끼는 아웅틴툰 샘을 떠나 보내며

(그리고 난민을 맞이하는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하여)

  • 편집자 주: 지난 8월 21일 미얀마에서 아웅틴툰 활동가가 갑작스런 병세로 세상을 떠났다. 아웅틴툰 활동가는 한국에서 이십 년 넘게 미얀마 난민으로 있으면서 미디어, 인권 활동을 꾸준히 하였고 이주민방송 공동대표, 이주민영화제 집행위원장 등 많은 역할을 하였다. 그런만큼 코로나 시기에, 특히 쿠데타에 맞선 민주화투쟁이 지속되고 있는 미얀마에서 날아든 부고는 그를 아는 이들에게 깊은 슬픔과 안타까움을 주었다. 아웅틴툰 활동가를 기리며 이정은 활동가가 추모 칼럼을 써주셨다. 다시 한 번, 아웅틴툰 활동가의 명복을 빈다.

 

아웅틴툰 샘,

당신의 영정 앞에 안녕을 고하고 나서도 한참을 먹먹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믿기지 않는 현실 앞에 많은 분들이 슬픔에 무너졌어요. ‘황망하다’는 단어가 절로 나왔어요. 미누샘 떠나실 때도 그랬는데 어쩜….

미얀마로부터 소식이 전해지고 샘과 인연이 깊은 선배들께서 마음을 모아 서울과 부천에 각 이틀씩 나흘동안 빈소를 마련하셨어요. 저희 곁에 함께 하셨으리라 믿어요. 샘을 기억하는 수많은 분들이 한걸음에 달려왔어요. 저도 샘의 상호문화교육-미얀마 수업 파트너였던 세연샘이랑 다녀왔어요.

샘, 그거 아세요? 샘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얼굴을 본 사람들도 참으로 많아요. ‘틴툰이 떠나면서 우리를 이렇게 이어주는구나.’라고들 하셨어요. 어디든 그렇지만, 이주판에서 일하시는 분들 모두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잖아요. 연대는 하지만 막상 사적 교류를 시간은 부족하죠. 코로나로 서로 얼굴 볼 기회마저 줄어들었고요. 그런데 샘 영정 앞에 모여 앉게 된 거예요. 자연스레 샘에 대한 추억을 하나씩 꺼내었죠. 추억이 한줄한줄 이어져서 그런지 빈소 공간이 더 아늑하게 느껴졌어요. 누군가 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했고, 모두가 정말 그렇다고 했어요. 샘은 모두에게 사랑스러운 수다쟁이였으니까.

한국에서 이주노동자 당사자로서 교육과 미디어 활동을 통해 이주인권운동을 열심히 하셨지요. 누구보다 모국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앞장서셨고요. 2년 전에 귀환하셔서는 농업, 미디어 교육 등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서도 힘을 쏟으셨지요. 떠나시기 며칠 전에 현지 산소공장 기금 마련 소식을 담벼락에 공유하셨던 걸 저는 늦게야 봤어요.

열 아홉살에 고향 미얀마를 떠나오셨다고요? 제가 열 아홉살 땐 그저 순진한 아이였는데. 그 먼 타국에 와서 언어도 통하지 않고, 먹는 음식도 색다른 곳에서 적응하시느라고, 또 노동하시느라고 얼마나 애를 쓰셨어요? 어느 날은 밤잠 못 이룰 만큼 내 고향, 가족들이 그리운 적도 있었겠지요. 제가 샘을 만난 것은 2013년이네요. 강렬한 눈빛을 가진, 처음 본 사람에게도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는 정 많은 분으로 기억해요. 저는 낯가림이 심한데 샘이 편하게 대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요. 한국에서 이주노동자, 난민, 이주인권운동가, 미디어활동가로 살아온 샘의 삶! 제가 이루 다 알지 못하는 것은 선배들을 통해서 들으며 배웠어요.

샘, 요즘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 보고 계시지요? 아프가니스탄 난민에 대한 일들이요. 처음에 언론을 통해 법무부는 국내 거주 아프가니스탄 국적자들에 대하여 ‘인도적 특별체류 조치’를 하겠다고 했어요. 인터넷을 통해 소식을 접한 저는 무슨 의미인가 의아했죠. 그래서 난민네트워크에서 활동하시는 샘에게 물어봤어요. 이것이 사실인지. 그렇다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 될 테니까요. 그런데 역시, 난민법 제 2조 제 3호의 ‘인도적 체류허가’를 뜻한 것이 아니었어요. “인도적으로 법무부가 특별히 체류를 허가했다.”는 것일 뿐인데 마치 안정적인 지위를 획득하는 것처럼 쓰여진 거니 말장난이나 다름없는 거죠. 늘 이런 식이니 답답할 노릇이에요. 분노가 치밀고요.

외교부는 아프가니스탄의 파병과 지역재건사업에 파병국이었던 한국정부 측 기관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특별 기여자’라고 명명하고 피난 작전 ‘미라클’을 성공시켰어요. 탈레반의 승리로 고통받을 것이 뻔한 사람들이었죠. 맞아요. ‘난민’들이죠. 그런데 ‘난민’이라고 부르지 않고는 건 그저 도움을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게 할 뿐, ‘난민’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죠. 샘도 난민으로 인정받을 때, 험난한 과정을 겪어내셨죠. 아시다시피 2020년 기준으로, 한국이 난민을 인정한 비율은 불과 0.4%에 불과하다고 해요. ‘특별기여자’라고 하는 것은 국민들로부터 난민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데 과연…

2018년에 500여 명의 제주 예멘 난민들이 한국에 찾아오고,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요. 그때 정말 참혹한 시기를 보냈잖아요. 밤낮없이 일하던 활동가들, 그때 건강을 잃게 된 분들도 계세요. 3년이란 기간 동안 한국사회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샘도 기억하시죠? ‘난민을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드높이던 사람들. 예멘에서 온 사람들의 대부분이 무슬림, 남성이라는 것이 타겟이 되었죠. ‘한국이 이러다 무슬림국가가 될 것이다, 여성의 안전을 위협할 것이다.’라면서 사람들은 뜻 모르는 혐오발언을 퍼붓기 시작했어요. ‘국민이 먼저다.’라는 구호 앞에 얼마나 치를 떨었는지 몰라요. 국민의 안전이 중심이 되면서 국민 아닌 존재는 더욱 배제되고 소외되었죠. 예멘 난민들이 스마트폰을 쓰는 것이 언론에 포착되자, ‘난민됨’의 기준에 어긋난다고 ‘가짜난민’ 열풍이 불었고, 난민들 스스로 ‘가짜’가 아님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했어요.

난민을 보호할 의무가 대한민국 정부에 분명히 있지요. 동시에 국민들에게 공존의 씨앗을 심는 것도 그의 몫이에요. 정부는 그 의무를 져버리고 있고요. 새삼스럽지도 않아요. 사람을 사람답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유용하면 쓰고 아니면 버리는 기존의 방식과 다를 바 없으니까요.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들을 노동력, 재생산의 도구로만 보는 시선들. 열악한 사회구조에서 한국사회를 떠받들고 있는 이주민들의 삶이 실제로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죠.

언제까지 피부색, 인종, 출신국가로 사람을 가르며 살아갈까요? 낯섦이 공포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문화다양성이 창의의 원천이고, 사회를 풍요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우리는 언제쯤 진정 깨달을 수 있을까요? 한국사회에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면서도 여전히 이방인으로 여겨지는 이들을 어쩌면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다양한 이유로 모국을 떠나온 사람들과 선주민들이 공존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지…

당신이 앞서 가신 길, 우리 함께 손잡고 걸어간 길을 다시금 떠올려 봅니다. 힘들어도 조금씩, 어려워도 한걸음씩 그렇게 남은 이들이 또 함께 가겠습니다. 한 가지 방향으로만 이루어질 일은 아니니까요.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접점을 만들어가야겠습니다.

당신과의 갑작스러운 이별이 여전히 믿기지 않습니다. 실은 떠나시기 며칠 전에 샘이 떠올랐어요. 여느 때처럼 톡으로 안부를 전했으면 좋았을 것을 왜 머뭇거렸을까. 계속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제는 안녕을 묻는 일을 미루지 않으려고 해요.

샘, 부디 세상으로부터 짊어진 무거운 짐 내려 놓고, 이제는 평안히 쉬십시오.

그리고 그곳에서 저희 잘 지켜봐주세요.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정현종 ‘방문객’ –

이정은 (이주인권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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