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M 연구자 칼럼] ‘이주(migration)’ 렌즈로 본 ‘미디어바우처’ 제도

이주(migration)’ 렌즈로 본 미디어바우처제도

 

 

유네스코(UNESCO)는 ‘세계문화다양성선언’(2001)에서 ‘보편적 인권’과 ‘문화다양성 존중’에 기반을 둔 ‘문화간 대화’를 다문화 사회의 지속가능한 평화와 발전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선언이 무색하게도 세계 도처에서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악화일로에 있다. 한국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이민사회로의 변화를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이면서도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혐오 표현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는 미디어 환경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주민에 대한 미디어 재현에서 나타나는 오류나 왜곡은 이주민에 대한 오인과 오해를 낳고 문화간 대화에 커다란 걸림돌이 된다.

무엇보다도 이주민에 대한 부정적 대상화는 이들의 존엄과 정체성, 그리고 안전에 심각한 수준의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주민을 국가 발전을 위한 도구로만 바라보거나 범죄나 위생과 관련해 위협으로 재현하거나, 혹은 시혜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을 깔고 있는 언론 보도가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미디어 보도의 생산, 유통, 소비는 이주민은 ‘우리’사회의 ‘정당한 성원’이 아니라는 시그널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킨다. 뿐만 아니라 특정 국가, 국적, 종교, 인종 등이 부각될 경우 혐오 정서를 조장하기까지 한다. (참고로 이주민에 대한 부정적 언론보도 행태에 관한 구체 내용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신문, 방송, 종편 시사토크쇼를 대상으로 20195-9월에 시행한 이주민 인권향상을 위한 모니터결과에 유형별로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해당 내용은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모니터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미디어가 문제인 것만은 아니다. ‘권력이 작동하는 곳에 늘 저항의 가능성이 깃들어 있다’는 말이 있듯이 시선을 달리하면 새로운 가능성이 시야에 들어온다. 사회운동론의 눈으로 보면 매우 중요한 ‘정치적 기회 구조’가 바로 미디어 시스템이다. 이주민 권리 운동과 관련해서 보면, 미디어는 이주민 권리 이슈에 관한 공적 토의에 불을 지피고 사회적 인지 수준을 높임으로써 종내에는 정책 개선을 이끌어 내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기대와 한국 미디어 산업의 현실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주류 미디어의 전반적인 무관심과 심각한 타자화가 지속되어 왔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상황은 이주 관련 보도의 공정성을 높이고 합리적 소통을 시도하려는 이주민 당사자의 미디어 운동을 촉발시켰다. 초창기에는 이주민 공동체들이 소식지를 발간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인터넷 라디오방송(‘라디오21’)에서 서머르 타파가 ‘이주노동자의 Voice’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여기서 그는 ‘서머르의 일기’라는 코너를 운영했는데 그가 처음 남긴 말은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뜻의 네팔어 ‘순덜 선사르’였다). 보다 본격적인 행보는 이주민 독립 미디어의 출범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명동성당 농성(2003-2004) 이후 개국한 ‘이주노동자의 방송’(‘이주민방송’의 전신)이다. 이후 이주민 지원단체와 지역공동체에서 이주민 관련 방송 프로그램이 연이어 개설되었고, 현재 다문화 관련 케이블 채널도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시도들이 거둔 성취는 빛났다. 이주 관련 정보와 해설을 제공할 뿐 아니라 네트워킹과 연대의 가교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미디어 기능의 외연을 확장시켜 영화제나 공연과 같은 문화적 접근을 병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민 이슈에 특화된 방식의 미디어 운영(운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한국 미디어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그대로 두고서 이주민에 대한 미디어 재현의 공정성을 논하기는 어렵다. 최근에는 기사가 유통되는 디지털 플랫폼(특히 인터넷 주요 포털)의 영향력이 커지고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는 가운데 선정적인 보도와 가짜 뉴스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주민 미디어 운동이 보다 광범위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미디어 산업 전반의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언론개혁의 일환으로 국회에서 법안 발의된 ‘미디어바우처(Media Voucher)’ 제도(공식 명칭은 ‘국민참여를 통한 언론 영향력 평가제도의 운영에 관한 법률안’)가 눈길을 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제도를 ‘이주’의 렌즈로 들여다 볼 수 있다. 미디어바우처 제도가 이주민에 대한 미디어 재현과 관련된 문제점을 극복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 이야기할 수 있다. 우선 이 제도를 간략히 설명하면 이렇다. 미디어바우처 정책은 시민들이 정부가 배분해준 일정 금액의 바우처를 본인이 원하는 언론사에 할당하는 제도로, 복수의 언론사들에 대한 시민 후원 제도의 성격을 지닌다. 아울러 이 정책 모델은 변화된 디지털 환경에 대한 적합성,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언론의 독립성, 자원의 형평성의 세 가지 요구를 충족시키는 미디어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주’의 렌즈에 비춰 볼 때 미디어바우처 제도가 지닌 가능성은 무엇일까? 다양한 가능성을 논의할 수 있겠으나 여기에서는 필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두 가지를 언급도록 한다. 우선 큰 틀에서 볼 때 미디어바우처 제도의 기본 취지인 미디어 산업계의 공공성과 공정성 확대 및 언론 신뢰성 회복은,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취지와 상통한다. 과대해석해선 안되겠지만 이는 미디어바우처 제도 도입이 일정 부분 차별금지법 제정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근저에 깔린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미디어바우처 제도의 가능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미디어바우처 제도의 입법이 이주민 권리 운동과 맞닿아 있음을 잘 헤아릴 필요가 있다.

또 다른 측면도 있다. 미디어바우처 제도는, 영세하지만 비판적 저널리즘에 투철한 언론사가 유지되고 성장할 수 있는 토대의 중요한 일부가 될 수 있다. 이 점은 이주민 방송을 비롯해 이주민 권익에 초점을 둔 대안 미디어들에게 해당된다. 자체 수익 모델과 후원 제도만으로는 안정적인 운영이 쉽지 않은 것이 오늘날 미디어 생태이다. 규모가 영세한 언론사의 경우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규모가 작고 수입 구조가 불안정할수록 시민들의 바우처 후원이 지닌 한계 효용은 더욱 클 것이다. 또한 십시일반으로 모인 시민들의 후원은 양질의 기사 생산과 전문 기자 양성을 위한 모멘텀을 제공해 줄 수 있다. 미디어바우처 제도를 ‘이주’의 렌즈로 봐야하는 또 다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미디어바우처 제도의 긍정적인 효과에 수긍한다고 해도 입법 과정에서는 논란이 될 만한 요소와 쟁점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주’의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당장 몇 가지 논점들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참여의 범위다. 발의된 법안에는 기본적으로 만 18세 이상의 국민을 적용 대상으로 하면서 부가적으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결격사유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사람”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법률안 수정 혹은 행정입법을 통해 미디어바우처 이용 권한을 이주민으로까지 확장시켜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함축한다.

또한 법률안 제11조는 ‘언론윤리강령’ 준수를 미디어바우처 대상사업자 등록 요건들 가운데 하나로 설정하고 구체 내용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이주민 관련 보도에 관한 원칙과 지침을 여기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작업이 아니다. 이를테면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 제5장은 이주민과 외국인 인권에 관한 일련의 원칙들을 담고 있다. 하지만 권장 사항에 불과해 실질적인 구속력을 갖진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 점에서 미디어바우처 제도 도입은 이주민 보도에 관한 기본 원칙의 법적 구속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보다 논쟁적인 물음이 제기될 수도 있다. 이를테면 미디어바우처 이용 패턴이, 이용자의 편견을 강화하는 언론사나 기사에 집중됨으로써 여론 전반의 ‘확증편향’을 낳는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시민들의 바우처 이용의 ‘집합적인 효과’는 오히려 긍정적일 수 있다. 이를테면 전반적인 ‘미디어 다양성’ 수준을 높임으로써 특정 이슈에 대한 언론 보도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도 있다. 이는 특정 이슈에 관한 시민의 ‘대안 정보(alternative information)’ 접근성이 높아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논의에도 불구하고 ‘이주’와 관련하여 미디어바우처 제도가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할지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기대를 저버리는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미디어바우처 제도 도입 과정에 이주의 관점을 반영하려는 시도 없이 이 제도가 절로 이주민에 대한 공정한 미디어 보도에 기여할 것으로 낙관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조심스럽게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미디어바우처 제도가 올 하반기 이주권리운동의 의제들 가운데 하나가 될 수는 없을까? 이주권리운동의 새로운 의제를 발굴함으로써 운동에 또 다른 활력을 불어넣을 수는 없을까?

 

한준성 (경희대학교 공공거버넌스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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