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M현장] 임금 절도를 합법화하는 숙식비 지침 – 이주노동자 숙식비 사전공제제도 대응방안 토론회 열려

임금 절도를 합법화하는 숙식비 지침
이주노동자 숙식비 사전공제제도 대응방안 토론회 열려
고용노동부의 숙식비 사전공제 지침,
취지는 ‘외국인 근로자의 권익 보호’
요지는 ‘고용주들을 위한 이주노동자 임금 절도 합법화’
월세 30만원 숙소, 감정평가 결과 적정월세 6만원 나와

▲ 농업이주여성노동자들이 직접 촬영한 핸드폰 영상을 편집해서 만든 영상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제작: 지구인의정거장) 중 한 장면
   지난 2월 6일 고용노동부 외국인인력담당관실에서는 ‘외국인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이라는 제목의 자료를 배포했다. 이 지침에서는 숙소와 식사를 모두 제공하는 경우 노동자 전체 임금의 13%를 숙식비로 제공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공제 비율이 과다하고, 규정이 모호하다는 등 각계의 문제제기가 있어 왔다.
   이에 대한 논의를 위해 4월 25일 <이주노동자 숙식비 사전공제 지침 문제점 및 대안 모색 토론회>가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김이찬 지구인의정거장 대표 등 이주단체 활동가들이 참가한 이날 토론회에서는 농업이주노동자들의 주거 실태와 과도한 숙식비용 공제가 고발되고, 이를 정당화·고착화시킬 수 있는 고용노동부 지침의 문제점과 대안 등이 폭넓게 논의되었다.
   본격적인 토론회 진행에 앞서 농업이주여성노동자들이 핸드폰으로 직접 촬영한 영상을 지구인의정거장에서 편집한 비디오클립의 상영이 있었다. 영상에 등장하는 노동자들은 도저히 집이라고 부를 수 없는 비닐하우스에서 5~6명씩 수용되어 거주하고 있었다. 실내에 취사시설이나 샤워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음은 물론이고, 제대로 된 화장실도 갖추어져 있지 않아 노동자들은 실외에서 용변을 보고 흙으로 덮어 처리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비닐하우스에는 잠금장치를 비롯한 기본적인 안전 장치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여성노동자들의 주거 공간이 ‘자신의 방’이라고 주장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침입하는 고용주가 있는가 하면, 휴식을 취하는 노동자들을 성희롱하는 고용주도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여성노동자들에게 신체 접촉을 시도하는 고용주가 있다는 증언도 등장했다. 고용주가 거친 욕설과 폭언을 내뱉는 장면에서는 토론회장 내에서 탄식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 농업이주여성노동자들이 직접 촬영한 핸드폰 영상을 편집해서 만든 영상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제작: 지구인의정거장) 중 한 장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열악한 숙소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
   이후 지구인의정거장 김이찬 대표의 발제가 이어졌다. 김 대표는 현 상황과 관련해 근로기준법 63조, 열악한 거주시설, 지나치게 긴 노동시간 등 3개의 쟁점을 제기했는데, 특히 거주시설의 열악함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화장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개방형의 숙소에서 이주여성 노동자들이 한 달 35만원의 숙식비를 공제받으며 몇 년씩 살아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김 대표는 고용주들이 노동시간을 속이는 관행이 있다는 점도 고발했다. 출퇴근 기록부에 기록된 노동시간이 아무리 길어도 초과노동시간을 적는 칸에는 1시간이라고만 기록하는 식이다. 고용주들은 숙식의 대가로 하루에 두 시간씩은 기록하지 않는다고 설명하는데, 이는 분명한 법 위반 사항이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꾸준히 있어 왔지만, 노동부는 소극적인 대응만으로 일관해 왔다고 한다. 서류가 갖춰져 있으니 관여할 수 없다, 혹은 추가적인 근거를 가져오라는 것이다. 이에 더해 김 대표는 최근에는 그나마 휴대폰으로 현장을 기록하는 것이 가능해져서 상황이 나아진 측면이 있지만, 전체 이주노동자 중에 농업노동자의 비율이 높은 편이 아니고 그나마도 일하는 곳이 너무 넓게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노동부의 문제 인식과 그에 대한 대응에도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 농업이주여성노동자들이 직접 촬영한 핸드폰 영상을 편집해서 만든 영상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제작: 지구인의정거장) 중 한 장면
취지와 요지가 따로 노는 고용노동부의 지침
   이주민지원센터친구 조영관 상근변호사는 이번 숙식비 지침의 취지는 ‘외국인 근로자의 권익 보호’이지만, 실제 지침 내용은 이를 보장할 수 있는 내용보다는 사업주가 임금에서 몇 퍼센트를 숙식비로 공제할 수 있는지를 명시하는 등 사업주를 위한 내용으로만 가득 차 있다며 이번 지침의 취지와 요지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이번 지침에서는 ‘그 밖의 주거 시설’이라는 문구가 명문화되어 있는데, 이 표현에도 문제가 있다고 조 변호사는 지적했다. 이 표현은 비닐하우스 등의 숙소를 임시 시설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시설인 것처럼 표현하고 있어 결과적으로 임시 주거시설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들에게 제공될 수 있는 숙소의 기준을 밝히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보아도 임금에서 숙박비를 공제하려면 최소한 사회 통념상 인정 가능한 수준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어야 하고,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등의 임시 시설은 주거 시설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지침은 사용자의 숙식비 공제를 정당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조 변호사는 이 또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임금을 공제하기 위해서는 법령, 또는 단체협약의 특정한 규정이 있어야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단체 협약의 체결 없이 근로계약에서만 공제에 대해 합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주노동자들은 계약 체결 단계에서 이미 고용주에 대해 종속적인 관계에 놓여 있고, 숙소에 대한 정보 또한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조 변호사는 이에 더해 만약 계약이 법적으로 정당하게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지침에서 언급하고 있는 공제 비율이 과도하고, 심지어는 추가 비용을 받을 수 있다는 조항까지 삽입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번 지침이 사실상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을 합법적으로 절도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변했다.

숙식비를 무리하게 임금과 연동시켜서는 안된다
   이주와인권연구소 김사강 연구위원은 농업 이주노동자들의 숙소 문제에 초점을 맞춰 발제를 진행했다. 현재 농업 이주노동자들은 열악한 숙소에 살면서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문제에 대한 언급이 모두 필요하지만 고용노동부의 지침은 비용 문제만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업노동자들은 비닐하우스를 사용하는 대가로 1인당 한 달에 15만원에서 많게는 50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임금에서 공제당하고 있다. 보통 집세를 결정하는 것은 집의 위치, 주위 편의시설, 교통의 편리, 집 자체의 시설 등이다.그런데 이번 지침은 이러한 제반 사항에 대한 고려 없이 집세를 임금에 일괄 연동시키고 있다.
   지침에서 제시된 비율은 현재 이주노동자들이 숙소에 대해 지불하고 있는 금액을 기준으로 작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연구위원은 이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착취를 합법화시키려는 시도일 뿐이라며 실제로 여러 이주노동자가 각 30만원의 비용을 지불하던 숙소를 감정평가해본 결과 적정한 월세로 6만원이 제시되었던 사례를 제시했다.
   또한 이번 지침에 언급되어 있는 주거의 기준은 세면실과 화장실을 숙소 안, 혹은 주변에 갖추어야 하고 남성과 여성을 같은 공간에 거주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 뿐이다. 김 연구위원은 이번 지침에 최소한의 관리에 관한 기준, 그리고 안전장치에 대한 기준은 하나도 제시되어 있지 않고, 이는 생활의 불편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안전에도 실질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숙소 내부, 외부에 대해 상세한 규정이 존재하는 캐나다의 사례를 제시했다. 또한 캐나다에는 이주노동자의 숙소만을 점검하는 감독관이 별도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인력과 비용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지만, 김 연구위원은 고용주에게만 부담을 지울 것이 아니라 다른 장치를 마련해서라도 농업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 함을 강조했다.
   이어 근로기준법 63조의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이 조항에는 농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근로시간, 휴게시간 등의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 규정의 의미는 농업 노동자들에게 8시간 이상 노동을 시킬 수 있고, 일정한 휴게시간을 주지 않아도 되고, 주휴 등의 규정 적용의 예외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고용주들은 이 조항을 근로기준법 전반, 뿐만 아니라 노동관계법, 최저 임금 등이 농업노동자들한테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석해, 몇 시간을 일해도 하루 8시간으로만 계산해서 돈을 주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김 연구위원은 이런 식으로 사라진 시간이 한달에 100시간을 초과한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이전에는 임금을 고정액으로 지급하는 대신 숙식은 무료로 제공해온 관례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2009년에 농업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체불 소송이 벌어진 후에 지금과 같은 숙식비 공제 관행이 시작되었다. 월급을 일정액으로 맞춰 주려다 보니까 일을 많이 한 달에는 숙식비가 올라가고 적게 한 달에는 숙식비가 내려가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이는 숙식비 문제가 임금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방증하고 있다.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라는 점 강조해야… SNS 플랫폼 건설이 도움 될 수 있을 것

   발제가 끝난 이후 현장의 증언과 플로어 토론이 이어졌다. 천안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MTU 조합원 고팔씨는 “현재 최저임금으로 받는 임금에서 20%의 돈을 숙식비로 공제당한다면 가족들에 대한 송금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이에 더해 “추가적인 비용이 더 징수당한다면 한국에서의 생활 자체가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지침의 철회를 촉구했다.
   정혜실 MWTV 공동대표는 추가적인 실태조사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전반적인 실태조사를 통해 최소한의 주거의 기준을 확립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체 가이드라인을 작성해 요구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희은 민주노총 기획국장은 이 문제가 농업 분야뿐 아니라 이주노동자 전반의 숙소 사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하며 최근 일부 공단에서 공장을 지을 때 이주노동자들의 숙소를 같이 짓고 있다는 등의 희망적 사례를 제시하기도 했다.
천연옥 민주노총 부산본부 비정규위원장은 운동 과정에서 비닐하우스가 집이 아니라는 점을 더욱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동시에 제대로 된 숙소가 제공될 경우 숙식비 공제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비슷하게 이주노조의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를 사람으로 인정하고, 사람이 살 수 있는 숙소를 제공해야 한다는 방향에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정혜실 대표가 농업 분야에 한해서 마을 차원에서 농업노동자들의 숙소를 제공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이에 대해 김사강 연구위원은 만일 이 같은 방안이 추진될 경우 부담을 느낀 고용주들의 수요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쏠릴 가능성이 있다면서 지자체나 정부에서 어느 정도 초기비용을 보조해야 할 것이라는 보충 의견을 제시했다.
   이후 김이찬 대표와 정혜실 대표가 이주노동자 조직화와 미디어 자료 축적을 위해 이주노동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평적 SNS 플랫폼을 만드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이에 더해 김이찬 대표는 실태조사의 결과를 주거지 시세표의 형태로 제작하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이주노조 박진우 사무차장은 6월까지 어느 정도 실태조사를 진행한 후 내용을 공개해 새로 출범하는 정부에게 압박을 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마지막으로 발언한 조영관 변호사는 법무부에서도 문제에 대한 피드백이 오고 있음을 언급하며 사안별로만 대응할 것이 아니라 출입국관리법을 포함한 이주노동자 관련 법체계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를 준비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했다.
 
▲ 농업이주여성노동자들이 직접 촬영한 핸드폰 영상을 편집해서 만든 영상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제작: 지구인의정거장)의 타이틀 화면

글 | 한건희 MWTV 기자단 5기

이주, 노동,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있다. 이것저것 읽는 것, 그리고 이것저것 먹는 것을 좋아한다. bbscg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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