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M피플] 11년차 방송기자에서 감독으로_<그녀는 다시 일어섰다> 덤벌수바 감독 인터뷰

이주민, 한국 사회를 영화로 다시 바라보다②

11년차 방송기자에서 감독으로 변신한

<그녀는 다시 일어섰다> 덤벌수바 감독 인터뷰

“누구라도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권리는 주어져야 하는 거 아닐까. 이 영화를 통해서 이런 부분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떻게든 이주민과 선주민이 소통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숲씨  반갑습니다, 덤벌수바 감독님. 이번 영화 <그녀는 다시 일어섰다>가 이주민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되어 호평을 받았습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덤벌수바(이하 덤벌)  무엇보다도 처음으로 만들어 본 영화라 많이 설렜지요. 또 사람들이 참석도 많이 해주시고 반응도 좋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숲씨  덤벌수바 감독님은 방송기자 생활을 오래 하셨잖아요. 한국에서는 2006년부터 MWTV와 함께 기자생활을 쭉 해오셨구요. 혹시 이번 영화를 제작하기 전에도 다큐를 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으셨나요?

 

덤벌  극영화보다는 좀 덜할 수도 있지만,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는 데도 시간, 자본, 인원이 많이 필요하거든요. 아무래도 일단 영화다 보니까. 그동안은 그런 부담 때문에 영화를 찍겠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뉴스를 하다 보니까 한계가 점점 느껴지는 거예요. 뉴스만으로는 사람들하고 소통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고. 아직 사회에 알려야 할 이야기들은 많은데, 그걸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사람들한테 전할 수 있을까. 영화가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작년에 이주민영화제 사전제작지원 사업이 있다고 해서, 한번 시도해 봤습니다.

 

숲씨  사전제작지원을 받아 제작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덤벌  일단 감사하지요. 그런데 좀 까다로운 면도 있긴 했어요. 특히 영수증 처리하는 게, 아시다시피 제가 네팔에서 지낸 시간이 더 길잖아요. 그 절차를 좀 완화해서 쉽게 할 수 있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 <그녀는 다시 일어섰다>의 스틸 컷

 

숲씨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신 분은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덤벌  수실라라는 분이 주인공인데요. 제가 원래 직장은 병원 관리과거든요. 그 분이 배가 아프다고 누가 저를 소개시켜줘서 저한테 연락을 하셨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병원에서 통역도 해주고 그런 계기로 처음 만나게 되었어요.

당시에 한국엔 네팔이주여성단체가 없었어요. 한국에 들어오는 네팔 이주여성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분들이 힘들거나 피해를 봤을 때 머물 수 있는 공간도 없었어요. 그래서 이 분들이 이주민여성을 위한 쉼터를 한국에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얘기를 저한테도 하더라구요.

처음에 제안을 하셨던 분은 이주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에서 일하던 먼주 타파 씨였어요. 1995년에 이주노동자가 처음으로 한국에서 자기 권리를 위해 명동성당 데모한 일이 있었는데 먼주 씨는 거기 참여한 최초의 여성분이고요. 먼주 씨 하고 수실라 씨 하고 코필라 씨라는 분이 있었어요, 이분들이 네팔여성단체와 쉼터도 마련하자고 제안하시더라구요. 저도 도와주겠다해서, 강남에 있는 한 장소를 빌려서 쉼터 설립을 위한 자선문화행사를 하고 후원금을 모아서 2010년도 동대문 창신동에 방 한 칸 짜리 얻어서 ‘우먼 포 우먼(women for women)’이라는 단체를 여셨어요. 그때 수실라 씨는 이 단체의 초대 사무처장을 했고, 코필라 씨는 초대 회장을 했어요. 그런 계기로 알게 되었고, 가끔 연락되다 보니까, 어느날 자기 얘기를 하더라구요.

수실라 씨의 네팔 집에서 힘들게 한다는 거예요. 이 분이 아이가 둘이 있는데 전화상으로 만나지도 못하게 하고. 네팔에 재산, 집이 있는데 남편이 그걸 자기 명의로 돌리라고 압박을 넣고 그래서 많이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러던 어느날 회사에 휴가를 얻어서 두 달간 집에 다녀오겠다고 연락이 왔었어요. 잘 갔다오라고 하고 갔었는데, 그때가 2010년이었는데 한국에 안 돌아오더라구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잘 지내나보다 했어요.

그러다 어느날 네팔에 일주일에 한 번 나오는 <사자 서왈 Sajha Sawal>이라는 TV프로그램이 하나 있어요. 거기서 인권과 여성에 관한 에피소드를 했어요. 그런데 거기에 수실라 씨가 나오는 거예요. ‘나는 남편이 이런 식으로 나와서 집 명의 이전도 해주고 다 해줬는데, 내 권리를 다 뺏기고, 경찰도 법원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과연 내 권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나…’ 그러는 거에요. 저희는 깜짝 놀랐어요. 그냥 잘 지내고 있겠지 했는데 TV에 그렇게 나오니까.

그걸 보고 나서 바로 네팔에 전화를 했었어요. 자기 상황을 다 얘기하더라고요. 하반신 마비가 되어서 6개월 동안 병원에 있었던 이야기, 자기가 법을 몰라서 헤맸던 이야기, 울고 다녔던 이야기, 자기 시아버지가 정치인이라서 자기가 불이익을 당하고 있던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일도 있구나,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어떻겠냐. 네팔 여성들이 헌법적으로 인권과 권리가 보장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작품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숲씨  굉장히 가슴 아픈 사례인데, 한국에서 여성쉼터를 만들었던 경험이 있던 분이라 네팔에서도 본인의 문제를 이겨내고 또 여성인권센터를 만들어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놀랍고 희망적입니다.

이주노동으로 인해 가족이 해체되는 사례가 많은가요?

 

덤벌  많이 있어요. 누구나 사람이라면 가족이 소중하잖아요. 한국에도 2년 동안 군대를 다녀오면, 서로 사랑하던 사람일지라도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은 4년 10개월 동안 못 만나는 거니까. 중간에 가족들이 보고 싶어도 회사에서 휴가도 잘 안내주고요. 그 기간 동안 파괴되는 가족이 많을 수밖에 없는 거죠. 가족 위해서 돈 벌려고 왔다고 하지만 그 때문에 가족 파괴가 되기도 하는거죠.

이주노동자라면 돈 많이 벌었나? 이런 말 많이 하잖아요. 돈 버는 이들도 많겠지만, 과연 그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행복한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가족들과 떨어져 있는데.

1999년 ILO 협약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한테도 자기 가족과 함께 살 권리와 건강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나와 있는데, 지금 이주노동자들은 가족과 함께 올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누구라도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권리는 주어져야 하는 거 아닐까요. 이 영화를 통해서 이런 부분도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어요.

▲ 덤벌 수바 감독은 이주민방송에서 2006년부터 방송 앵커 및 라디오 진행자, 기자로 활약 중이다.

숲씨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도 궁금하네요.

 

덤벌  작년 12월에 네팔에 가서 20일 정도 촬영했어요. 수실라 씨가 활동하는 단체 여러 군데 쫓아다니면서 인터뷰했어요. 수실라 씨를 따라다니기가 조금 힘들었어요. 그 분은 항상 스쿠터로 움직이는데. 네팔에는 스쿠터로 이동하는 여성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카메라맨하고 나하고 둘이서 한 사람은 운전하고, 한 사람은 찍으면서 쫓아다녀야 되니까. 도로가 한번 막히기라도 하면 큰일 나는 거죠.

그리고 도로가 시끄러운 것도 문제였어요. 엄청 시끄러워요. 무선으로 소리를 따진 못했어요. 그래서 시끄러운 곳에서 찍은 씬은 소리를 죽이고 화면만 쓰면서 내레이션 처리를 해야 했던 경우가 많았네요.

 

숲씨  촬영은 네팔 현지 분이 하셨나요?

덤벌  전에 MWTV에서 8회 이주민영화제 때 같이 활동했던 러비 라마라는 분이 네팔에 계셔서 같이 촬영했어요. 스크립트라이터는 책 많이 냈던 여자분이 했고. 운전도 해주고 사람 섭외도 해주고 하던 분 있었어요. 그 담에 의사, 변호사, 국회의원도 시간 잡아야 하고 하는 데 그 역할을 먼주 씨가 마침 네팔에 있어서 해주셨어요.

숲씨  다른 직업이 있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 편집할 시간을 내시기가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덤벌  고맙게도 제작 시간이 충분하게 주어져서요. 시간이 날 때마다 편집을 하는 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집에서 작업을 했죠.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으니까.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문제는 다 네팔어로 되어 있는데, 그걸 한국어로 옮기고 영어로 옮기는 게 시간이 좀 걸렸죠. 또 한국말로 하는 부분도 네팔어하고 영어로 옮겨야 되니까. 이래저래 번역하는 게 제일 힘들었네요.

숲씨  다음 영화를 준비 중이신 게 있나요?

 

덤벌  한국에 와서 자살하는 네팔 사람들이 많아요. 그 문제에 대해서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왜 자살하는지, 그 사람들이 사업장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네팔의 가족들에게도 왜 스트레스를 받는지, 자살을 왜 해야 했을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어요.

제가 일하는 병원에 오는 네팔 사람들 중에서, 한 달에 10명이 온다면 절반 정도는 스트레스 때문에 문제가 생긴 사람들이에요. 배 아프다고 하고, 머리가 아프다고 하고, 가슴이 뜨겁다고 하고, 그런데 검사해보면 특별한 문제가 없어요. 스트레스성인거지.

6개월 넘게 치료가 잘 안 되는 만성 질환을 앓고 있던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정신신경외과를 데려가서 증상들 얘기를 해주니까 약을 5일치 정도 주는데, 그렇게 안 낫던 병이 5일치만 약을 먹으니까 낫는 거예요. 그런 걸 보면서 인터뷰를 좀 따고 있어요. 신경외과 의사 한 분이 있는데, 그 분한테 도움도 구하고 있고.

 

숲씨  이주민방송에서 그런 심층취재를 못하고 있었는데, 덤벌 감독님이 해주시고 계시다니까 기대가 크네요. 

병원에서도 다른 이주민들한테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신 것 같아요.

 

덤벌  대신 제가 힘들죠.(웃음) 통역이 필요한 사람이 한 달에 많으면 20명 정도까지도 되는 것 같아요. 어제도 통역 때문에 평택에 있는 병원에 다녀왔는데, 그 사람은 분명히 기계 때문에 다쳤다고 하는데 병원에 가보니까 신분이 확실한 사람인데도 회사에서 인적사항을 제대로 안 써줘서 치료를 못 받는 거예요. 아픈 채로 1주일이 넘게 지나고.

그런데 그래서 사장한테 전화를 해보니까, 이 사람이 고의로 손을 기계에 넣었다는 거예요. 다친 사람은 분명히 장애가 남을 테고, 그만큼 일도 못 할 텐데 회사에서는 무슨 불이익이 올까봐 그 따위로 발뺌을 하는 거죠. 그래서 제가 가서 인적사항 써주고, 산재(산업재해) 신청하는 것도 도와주고, 제출하는 것까지 도와주고 왔어요. 병원에서는 다행히 조치를 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숲씨  병원에서 싫어 하지는 않나요?

 

덤벌  그렇지는 않아요. 어차피 근무시간에 하는 일이 아니니까 뭐. 제가 거의 야간에 일하거든요. 사실은 병원에서는 제가 통역하는 걸 좋아해요. 외국인들이 우리 병원에 많이 와서 돈을 벌 수 있으니까. 문제는 제가 잠을 잘 못 잔다는 건데. 어느 순간 훅 갈까봐 걱정중이에요 요즘. (웃음)

 

숲씨  앞으로 몸조리 잘 하시면서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으시면 좋겠네요. 혹시 후계자 양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덤벌  후계자 많이 있지요. 취재를 할 시간이 주말밖에 없고, 중간에 네팔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같이 작업을 하는 동료들이 있어요. 다큐멘터리를 조금씩 만드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런데 그 분들이 작품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어서. 앞으로는 그런 공간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 보고 싶습니다.

 

숲씨  오늘 인터뷰 감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신가요?

 

덤벌  이주민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 이상, 그리고 정부에서 그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이상, 이 나라에서 이주 노동자는 그냥 아바타로 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 이주노동자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일어나서 자기 권리를 찾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언어를 모른다고, 문화를 모른다고 해서 그냥 있으면 안 되는 거죠. 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한글어든지, 영어든지, 네팔어라도 해서 어떻게든 소통하는 길을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그래야지 조금이라도 이주민들이 아바타가 아닌 사람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선주민 분들한테 얘기하고 싶은 것도 한 가지 있어요. 이주민들은 단풍 같은 인생 아니다. 쓰다가 버릴 수 있는 물건이 아니고, 그 사람도 누군가의 아들, 딸이고 누군가의 아버지인데, 그냥 아무렇게나 대하면 안 되지 않을까요. 한국 분들이 이것 한 가지만 가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 숲씨 웹진 VOM 편집장

숲도 작은 씨앗에서 태어났습니다. 악의 평범성, 내재화된 폭력성을 살피고 끊어내는 일, 일상에서의 실천, 평화에 물들고 평화에 물들이는 삶에 관심이 많습니다.

mwtvbae@gmail.com

 

정리 | 한건희 MWTV 기자단 5기

이주, 노동,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있다. 이것저것 읽는 것, 그리고 이것저것 먹는 것을 좋아한다. 

bbscg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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