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M피플] 헬프시리아 압둘 와합을 만나다_뿌리 깊은 나무 시리아, 다시 새 잎 돋아날 것

뿌리 깊은 나무 시리아, 다시 새 잎 돋아날 것

헬프시리아 압둘 와합 사무국장에게 듣는 시리아의 과거와 현재

인천공항에 8개월간 구금되어있던 시리아 난민 28명 중 19명이 소송에서 이겼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6월 23일, 시리아 난민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헬프시리아’의 사무국장 압둘 와합 씨를 서울 충무로 헬프시리아 사무실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2009년에 한국에 유학 온 시리아 학생(동국대 법학과 박사과정)이기도 합니다. 이번 인터뷰는 헬프시리아를 대표하는 인물로서보다는, 유프라테스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나라 시리아에서 평범한 청년으로 자라다가 어느날 가족들이 집을 잃은 난민이 되어 뿔뿔히 흩어진 압둘 와합 개인의 이야기에 좀더 초점을 맞췄습니다.
먼저, 얼마전에 터키에 다녀왔다는 와합 씨에게 우선 가족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와합 씨 고향이 현재 IS가 수도로 삼고 있는 라카 지역이지요, 작년에 가족들이 터키로 탈출했다고 들었는데, 가족들은 잘 지내나요?
아버지와 여동생들은 아직 라카에 있어요. 엄마와 남동생은 터키에 안전하게 있고, 또 남동생 한명은 노르웨이에 있어요.
시리아에 있는 가족들은 왜 못 나왔나요? 
 
여러 이유가 있어요. 첫 번째는 터키로 가는 루트가 닫혔습니다. IS는 인질이 많이 필요해요. 민간인들을 방패 삼고 있어서 라카 밖으로 아예 못 나가게 막았어요. 다른 이유는, 돌봐야할 가족들, 친척들이 너무 많아요. IS가 한 가족이 나가면 다른 가족들을 괴롭히고, 집, 재산을 모두 빼앗아요. 처음엔 아버지도 같이 터키로 탈출했었어요. 할머니와 여동생들은 건강도 안 좋고, 길도 위험해서 라카에 남아있었구요. 그런데 집 주인이 없다고 소문이 나니까 IS가 집에 자꾸 찾아왔어요. 몇 번 아버지가 친척 만나러 갔다고 거짓말 했는데, IS가 우리 재산이랑 땅을 30%는 빼앗아갔어요. 그래서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시리아로 돌아가야했어요. 여동생도 돌봐주고 탈출시키기 위해서도. 그런 개인 사정이 있습니다.
시리아 안에서는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이지만, 일상 생활은 할 수 있나요?
 
일상 생활을 못해요. 집 밖에 나가기가 어려워요. 나가면 IS가 이유 없이 시비를 겁니다. 옷은 왜 이렇게 기냐, 짧냐, 수염은 왜 안 기르냐, 여자가 왜 혼자 밖에 나가냐. 그리고 폭격이 계속 있어서 집 밖을 못 나가요.
사람들이 집 밖을 못 나가기 때문에, 가게 주인들이 차에 모든 물건들을 싣고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팔아요. 예전엔 물건을 사러 시장에 나갔는데, 이젠 시장이 집으로 온다는 겁니다.
상인들의 차는 IS 보호 하에 있나요?
 
일반인 차에요. 물론 IS 허락 받고 돌아다니는 거예요. 사람들은 야채가 필요해도 집에서 기다려야해요. 물건도 많이 부족하구요. 작년 터키로 탈출했을 때 동생들 얘기 들어보니까, 과일을 1년 반 동안 하나도 못 먹었대요. 기본적인 야채만 있고, 고기 같은 건 아예 없구요. 물가가 엄청 올랐어요. 원래 시리아 물가가 쌌는데, 한국보다 더 비싸졌어요.
돈보다 안전 문제가 심각합니다. 비행기가 매일매일 폭격해요. 아랍연합군, 미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거의 모든 나라에서 폭격해요. IS 핑계로 폭격하고, 시민들은 계속 죽고. 시리아 정부군도 폭격하고 IS도 괴롭히고, 사람들은 도망갈 곳 없어서 집에만 있습니다.
집에 있어도 안전하진 않잖아요.
 
안전하진 않아도 집에만 가만 있으면 IS가 안 건드려요. 시골에 있는 집들은 IS 캠프가 멀어서 어느 정도는 안전하구요.
시리아 내전 이전에는 이런 전쟁이 없었나요. 
 
전혀 없었어요.
그 전에도 독재 정권이었는데, 이전에는 삶이 어땠는지, 시리아가 어떤 나라였는지 궁금해요. 시리아코리아(syriakorea.com 시리아와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사이트. 2012년에 와합 씨가 한국 친구와 함께 만든 홈페이지)에 소개된 시리아 사진들을 보면 굉장히 아름다운 문화유산들이 많은데 다 어떻게 되었나요?
중동에서 제일 아름다운 나라
제가 객관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시리아는 중동에서 제일 아름다운 나라였어요, 옛날에는.사계절이 있고, 사막, 바다, 강, 산도 볼 수 있고, 다양한 과일, 야채, 고기, 음식이 있고, 자원도 풍부하고요. 사막문화, 바다문화, 도시문화 모두 하모니를 이루며 살고 있었어요.
다민족 
다양한 문화, 다양한 언어, 다양한 민족이 있어서 모자이크처럼 하나만 빠지면 그림이 되지 않아요. 인접한 이웃나라들은 달라요. 요르단은 거의 100% 아랍인. 이슬라엘은 90% 아랍인, 나머지 무슬림이에요. 레바논은 작은 땅에서 시리아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서 문화가 비슷해요.
다종교_종교를 묻지 않던 사회
‘당신은 기독교이냐, 무슬림이냐, 시아파냐, 수니파냐’ 이런 구분도 아예 없었어요. 이런 종교 구분은 2-3년 전부터 시작됐어요.
종교는 원래 절대 서로 안 물어봐요. 금지 질문이고 실례에요. 다마스쿠스 대학 때, 라마단 기간에 식사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모두 기독교고, 단식하는 사람은 무슬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단식하는 기독교 친구들도 많더라구요. 무슬림 아닌데 왜 라마단을 지키는지 물어보니, 친구들이 다 무슬림이니까 응원해주고 싶어서 어릴 때부터 라마단을 해왔다고 하더라구요. 라마단을 종교가 아닌 문화로서 받아들이는 친구들을 여럿 봤어요.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놀랍고 감동이 컸어요.
정치_감시사회
독재정권 하에서 정치 자유는 없었어요. 친구들이랑 정치 얘기하면 명확하게 이름을 언급해야 오해를 받지 않아요. 시리아 교육 시스템이 나쁘다고 얘기 하면 바로 잡혀가요. 대통령 욕하는 거라고. 교육장관이 나쁜 사람이라고 해야 오해 받지 않아요. 정치 얘기는 못해요. 서로서로 안 믿어요.
저는 다마스쿠스 대학에 다녔는데 집부터 다마스쿠스까지 버스로 30분 걸려요. 그 30분 동안 여러 경찰들이 나를 감시했어요. 시리아에는 국정원 같은 비밀경찰들이 있는데, 한 기관이 아니라 여러 기관이 있어요. 내가 누구와 만나는지, 어떤 사람이랑 같이 공부하는지, 여러 사람이 나를 관찰해요. 나뿐만 아니라 다마스쿠스 대학 다니는 사람들 거의 비슷해요. 우리도 알고 있어요. 저 사람 비밀경찰이다, 감시하고 있다, 그래서 무서워서 얘기 못해요.
다마스쿠스 대학은 중동에서는 이름 알려진 대학이라 특히 외국인들이 많아요. (저도 외국 친구들 통해서 한국 친구도 만나고 이들과 친해져서 한국까지 왔거든요.)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아랍어, 역사, 종교를 공부해요. 그래서 교육을 받은 사람을 위험한 사람이라고 보는 거죠. 다른 나라 문화도 알기 쉽고 식견이 넓으니 사회 불만도 많아질 수 있다고요. 가난하고 교육 못 받은 사람들은 단순히 먹고 자는 것에 쫓겨 넓게 보지 못하니까. 교육받은 사람들을 잘 컨트롤해야 한다는 거예요.
경제_나라는 부유하고 국민은 가난한 나라
시리아는 자원이 많아서 경제상황은 나쁘지 않았어요. 그런데 자원을 독재자가 사유화해서 국민들이 가난해졌어요. 요르단 같은 나라는 자원이 없어서 나라 전체가 가난한데, 시리아는 나라는 부자이지만 사람은 가난해서 사람들이 불만이 생겼어요.
문명의 발생지
시리아가 아름답고 역사가 깊은 나라인데, 지금의 상황이 안타까워요. 한국 친국들 만나면서 자랑할 수 있는 건 딱 하나, 집 근처가 첫 문명 발생지였다는 거 외에는 자랑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우리 집이 바로 유프라테스 강 바로 앞이에요. 몇천년 된 유적지들 많은데 절반은 파괴됐어요. 일반 도시들도 마찬가지구요.

▲ 유엔훈련조사연구소는 시리아 팔미라의 벨 신전 폭파 전후의 위성사진을 공개해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이곳을 완전히 파괴한 사실을 확인했다. (출처: 유엔훈련조사연구소, BBS 재인용)

 

▲ 시리아 전쟁 전과 후의 알레포의 어느 건물 (출처: pinterest.com)
▲ 시리아 전쟁 전과 후
내전이 나기 전에는 어떤 꿈을 갖고 법 공부를 하게 됐나요?
법은 우연히 공부하게 됐어요. 고등학교 때 안과의사 되려다 점수가 부족해서 독일에서 안과의사 공부하려고 유학을 준비했어요. 준비하는 동안 시리아에서 자리를 잡아야 해서 가족들의 바람대로 1년간 법을 공부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독일행은 비자문제가 생겨서 포기했구요.
정부 탄압으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우리 가족
가족 중에 역사전문가 한 분이 나라의 탄압을 받게 되면서 가족들에게 교육이 금지되었어요. 아버지는 고등학교 다니던 중에 공부를 중단해야 했어요. 그래서 가족 중에서 교육 받은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제가 태어나자 어떻게라도 설득해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허락 받았어요. 그래서 가족들은 장남인 제가 법을 공부해야 힘이 생기고 가족을 도와줄 수 있을 거라 했어요. 의사, 기술자 훌륭하지만, 변호사, 판사 되면 더 힘이 있을 거라고요. 저도 의사가 되고픈 제 꿈을 달성 못 했으니 그다음은 가족이 원하는 공부를 해야겠다 했어요.
법은 나라의 문화를 담고 있어요. 법을 통해 문화를 이해할 수 있어서 갈수록 법 공부가 더 좋아져요. 그래서 다마스쿠스 대학 졸업하고 한국 와서도 계속 법을 공부하고 있어요.
상법 공부한다고 들었는데, 한국 법, 시리아 법은 어떻게 다른가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상법의 차이
이익은 있지만 이자는 없는 이슬라믹 뱅킹
많이 달라요. 문화 백그라운드가 법에 담기는데, 문화가 달라서 법 로직이 달라요. 한국은 자본주의로 가니까 일단 기업을 먼저 살리는 게 핵심이고. 경제를 잘 살리면 나라가 살고 국민 잘 살 거란 관점이구요. 이슬라믹 뱅킹은 사람들이 먼저 잘 살고 그 사람이 경제 만들고 나라가 잘 산다는 관점이에요. 이슬람 사회가 잘 되기 위해서 하는 시스템이라서 이익(benefit)은 있지만 이자(interest)는 없어요.
이자라는 건, 정해진 이자만 주고 나머지는 은행이 다 가지는 거라면, 이슬라믹 뱅킹은 정해진 이자가 없고 은행이 운영하고 남은 이익을 나눠요. 1% 나올 수도 있고, 4% 나올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어요. 첫 번째 목표가 사람을 위하는 것이라서, 은행이 어떤 일을 하는지 사람들이 관찰해요. 두 번째는 은행의 수익은 사회를 위해 환원해야 해요. 학교 설립하거나 아파트를 세워 낮은 렌트비로 대여하는 일 등. 사회가 잘 되면 사람은 가난하지 않을 것이란 거죠.
이슬라믹 뱅킹은 이슬람의 문화니까, 시리아 법은 이 영향을 받아요. 사회 방식도 여긴 자본주의고, 저긴 사회주의라서 달라요. 하지만 비슷한 점도 있어요. 공부하면서 재밌는 거 많이 배워요.
 
공부를 마치면 향후 계획은요?
저도 계속 고민해요. 아직 답이 없어요.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석박사 공부하고 1-2년 회사 다니다 시리아로 가서 한국과 시리아의 가교 역할을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리아 상황 벌어져서 언제까지 한국에 살아야할지 모르겠어요. 시리아 안전할 때까지 계속 한국에 있고 싶어요. 거주를 위해 다른 나라에 가고 싶지는 않아요. 한국 좋아해서 한국에 와서 언어, 문화도 배웠는데, 다른 나라 가면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니까요. 지금은 한국생활이 편해져서 외국 잠깐 나갔다 오면 고향처럼 편안한 느낌이 들어요.
시리아 안팎에서 같이 연대하는 활동가들 많나요?
많아요. 유럽 친구들, 미국 친구들.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활동해요. 그런데 우리는 정부도, 어떤 세력도 아니고, 개인들이라 큰 활동을 하긴 어려워요.
‘아랍의 봄’이라는 혁명적이고 희망 찬 분위기가 있고 나서 시리아 내전이 생겼는데, 이게 민주화로 가는 과정일까요?
평화를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건너 가야할 단계
뿌리 깊은 나무 시리아, 다시 살아날 것
안타깝고 답답하고 실망하지만, 희망은 있어요. 어쩔 수 없이 건너 가야할 단계라고 봐요. 어떤 나라 역사를 봐도 평화가 쉽게 얻어진 나라가 없어요. 독일, 한국, 모두 거친 과정인데, 이 기간이 시리아가 좀 길어지고 있어요. 시리아뿐 아니라 이라크도 잘 될 거라 믿어요. 역사가 있는 나라라서 다시 회복할 수 있어요. 나무는 백년, 이백년 심어놓으면 뿌리가 깊으니까 위를 자르면 이 나무 망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뿌리 물 주고 잘 관리하면 빠른 시간 내에 새로운 나무가 나타날 수 있어요. 나라도 마찬가지에요. 시리아 지금 어렵지만, 옛날 역사 보면 오백년, 육백년, 천년 전에 학살도 있었는데, 그래도 나라 이어지고 있으니 훌륭한 나라 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강대국들이 손을 떼야 시리아 상황 해결될 수 있다고 하신 인터뷰를 봤는데요, 그들이 손을 못 떼는 이유가 뭘까요?
시리아 때문에 상황이 악화 된 게 아니고 강대국들 때문에 악화되고 있어요. 다들 장사해요. 나라마다 이익이 있어요.
미국_오일과 이스라엘 안전
미국의 목표는 오일과 이스라엘 안전 이 두 가지에요. 이 원칙 안에서 아랍관계 유지하고 있어요. 시리아는 석유는 별로 없지만 이스라엘 안전 때문에 중요해요. 바로 이스라엘 옆이라. 독재정권 때는 독재자를 협박하면서 강경책과 회유책으로 시리아를 컨트롤했어요. 독재자 없어지면 어떤 리더가 될지 몰라요. 아직 미국이 원하는 리더가 안나타났으니. 시리아에는 무기도 많고, 아직 이스라엘을 적이라고 싸우고 싶어하는 사람들 많아요. 누군가 리더가 되면 바로 이스라엘을 타격할 거에요. 그래서 무조건 시리아는 잘 컨트롤 해야 해요. 컨트롤 할 수 없으면 다른 안타까운 방법으로 가야하는데, 그건 시리아를 없애는 방법이에요. 그런데 지금 미국이 키울 수 있는 리더가 없으니, 아예 나라 망하게 하는 쪽으로 갈 수도 있어요. 지금은 일부러 필요할 때 개입하고 필요 없을 땐 우리는 힘이 없다고 개입을 안하고 있어요, 오바마가.
프랑스, 영국_옛 식민지
프랑스, 영국은 옛날 식민지 생각하고 이 지역을 자기네 땅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엔 프랑스가 시리아 땅 점령했고, 영국은 요르단 등 여러 나라 점령했었어요. 지금까지 정치 영향이 있어서 계속 개입하고 있어요.
러시아_아랍에 남은 마지막 친구 시리아
러시아는 아랍에서는 친구가 셋 있었어요. 리비아의 카다피, 시리아의 알아사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나머지 리더는 다 미국편이에요. 사담 후세인 먼저 제거되고, 그 다음 카타피 없어졌어요. 러시아 입장에서는, 카타피 폭격할 때 미국과 협상해서 실행한 건데, 러시아에 돌아가는 이익이 없었어요. 러시아는 점점 아랍국가 내 영향력이 없어지고 있어요. 아직 시리아에 알아사드 남았으니까 어쩔 수 없이 알아사드를 끝까지 지원해주고 있어요. 러시아가 40년 동안 시리아에 투자했는데, 알아사드 없어지면 그동안 투자했던 것을 다 잃어버릴 거라고요. 하지만 시리아는 지금 상황에서 어떤 리더가 와도 좋은 리더든, 나쁜 리더든 미국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어요.
주변 아랍국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나 다른 아랍 국가들은 거의다 수니파고요. 시리아도 수니파 많고 시아파가 소수 있는데 그 소수의 시아파가 권력 잡고 있으니 화 나는 거에요. 시리아는 사우디아라비아보다 이란과 친해요. 그래서 꼭 시리아를 사우디 편으로 만들어야겠다 해서 알아사드한테 활동 시작했어요.
천연가스가 미칠 영향
그리고 지중해 일대 이스라엘, 시리아, 키프러스 연안에서 천연가스가 많이 나타났어요. 아직 생산하지 않지만 큰 가스가 나타나면 아랍 국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석유수출국가에 경제적으로는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어요. 러시아도 가스 밖에 없으니까 경제적으로 어려워질 수 있어요.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 편가르기 어려워 
이렇게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시리아 상황은 알아사드 편이냐, 반대 편이냐 구분하기가 어려워졌어요. 지금은 거의 모든 나라가 알아사드 윈, 반군도 윈하는 방식으로 가길 원해요. 한쪽이 이기면 또 어려워질 수 있으니까요. 사우디는 알아사드 반대했는데 갑자기 가스가 나타나면서 입장을 고민 중이에요. 터키도 바로 옆나라니까 정치 영향력을 키워서 시리아를 작은 이웃으로 생각해서 알아사드를 지원할까, 반대할까, 아니면 새로운 리더를 터키에서 키울지 등 다양한 아젠다가 있어서 복잡해졌어요.
국민들도 안에서 여론이 굉장히 갈라져 있을 것 같아요.
시리아 국민들도 크게 세 부류가 있어요.
 
반정부
첫 번째 부류는, 알아사드 반대하는 사람들, 45년 간 알아사드 점령 때문에 시리아 발전 못 했다, 교육시스템 나빠졌다, 경제적으로 힘들었다고 하는 쪽이구요. 시리아도 사우디아라비아보다 자원이 많은데 관리를 못하고, 아랍에미리트보다는 재산 많은데 아랍에미리트보다 훨씬 못살아요. 그리고 자유도 필요해서 알아사드 반대를 하는 거구요.
친정부
두 번째는, 시리아정부를 지지해요. 그들은 알라위파(시아파 분파)이고 알아사드 정파에요. 고위직 군인들인데 자기 지위 보전하기 위해 당연히 알아사드 지지하고, 그 밑에서 사업하는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알아사드 지지하고요.
중도
세 번째는,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무서워서 가만히 있는 사람들이에요.
세 부류 간 말 통하지 않아서 갈등이 많아요. 한 가족 안에서도 세 입장이 다 있어요. 내 친구 하나는 알아사드 지지하는데, 그 친구 동생은 알아사드 반대하고 무기 들고 싸우고 있어요. 형제인데 정치 때문에 갈라졌으니 너무 안타까워요.
그 안에 사정은 인터넷으로 페이스북으로 다 소통하시는 거에요?
알아사드 정부군이 있는 지역은 인터넷, 물, 전기, 가스 모두 시설이 되어 있어요. 인터넷은 옛날보다는 좀 더 좋아졌어요. 옛날엔 시리아 인터넷이 느렸는데, 이제는 지역마다 깔렸어요.
내전 중에도 기반시설이 확충되는 곳도 있군요.
살기 편한 지역 vs 폭격 지역
시설이 좋아진 지역들이 있어요, 알아사드 지지하도록요. 일부러 알아사드 반대하는 난민 지역들은 모두 차단하고 없애고 폭격해요.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고 싶은지 선택하라는 거죠. 병원, 학교, 전기, 물을 편하게 구할 수 있는 지역에서 살든지, 매일 폭격받는 지역에서 살든지. 중간에 있는 사람들 중에 요즘 알아사드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헬프시리아를 만들어서 시리아 난민들 돕고 계신데, 어떻게 구호 대상을 선택하는지 궁금해요.
활동 시작했을 때 제 목표는 시리아 안에 있는 사람들 돕는 거고요. 다른 나라에 있는 사람들도 힘들지만, 시리아에 있는 사람들이 더 힘들어요.
시리아인의 절반이 난민, 그 중 절반이 국내 난민
시리아 전체 인구 2,200만명 중 5-600만명이 해외 난민이 되었고요, 국내에 남은 인구 1,500만명 중 600만명이 집을 잃고 난민이 되었어요. 그러니까 시리아 국내외 통틀어 국민 절반(1,200만명)이 난민이 되어 버렸어요.
시리아에 남은 국내 난민들을 위해서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헬프시리아 설립했구요. 헬프시리아 설립하기 전에 다양한 단체랑 같이 구호활동했는데 한계가 있었어요. 단체 정책 등 여러 이유로 시리아 안으로 가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기관 만들어서 우리 모임은 시리아 국내 난민들만 돕겠다고 친구들에게 알리고 친구들과 같이 헬프시리아 만들었어요. 시리아인이니까 시리아 안에 있는 사람들과 컨택할 수 있어요. 한국단체들 중에 시리아 안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젤 중요한 건 연결성이 없어요. 시리아 안에서 우릴 누가 믿어요. 우리가 직접 못가는 게 큰 어려움이에요. 구호물자를 그들이 엉뚱하게 사용하면 어떻게 해요. 우리가 컨트롤 못 해요. 저는 시리아인이니까 어느 정도 컨트롤 할 수 있어요. 음식 어디로 갔는지 추적할 수 있으니 시리아 안에서 활동할 수 있었어요.
시리아 안에 있는 난민들 중에서는 어떻게 지역을 선택하나요?
터키에서 가까운 알레포, 난민 300만명이 거주하는 곳
지금은 주로 알레포 지역을 지원해요. 지역 선택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시리아 안에서 세력이 너무 많아요. 시리아 정부군 있는 지역도 있고, IS 있는 지역도 있고, 반군 있는 지역도 있고,다른 세력 있는 곳도 있어요. 알아사드 지역이나 IS 지역은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어요. IS나 정부군이 모든 지원금, 후원물품을 다 가져가고 거기서 알아서 분배하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직접 난민들에게 전달해질 수 있는 지역은 알레포 지역 밖에 없어요. 난민 300만명이 알레포에서 살아요. 그분들은 도움이 많이 필요해요.
다른 중요한 이유 있는데, 시리아 내부로 깊이 들어가면, 홈스, 하마 등 정말 상황 어려워서 긴급구호 필요한 지역들이 있는데 갈 길이 없어요. 정부군이 막거나 반군이 막아서. 터키 통해서 알레포 지역까지는 음식 보낼 수 있으니까요. 게이트는 두 개 남아 있어요. 그 지역에서도 맨날 상황이 달라요. 예를 들어 명동, 충무로, 동국대 1km 차이지만 상황이 매일 바껴요. 오늘은 충무로 지원할 수 있고, 내일은 명동만 지원할 수 있고. 근거리지만 상황이 달라요. 활동하기 너무 어려워요.

▲ 시리아 반군이 점령하고 있는 옛 알레포 지역에서 붕괴된 건물들 사이로 주민들이 걸어다니고 있다. (출처: 로이터통신)

▲ 올해 2월 러시아의 폭격을 받고 알레포를 떠나 터키 국경을 건너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시리아인들의 아이들. (Mostafa Sultan)
3년 동안 활동하면서 후원이라던가 활동 상황은 좀 나아졌나요?
요즘은 상황이 예전보다는 좋아졌어요. 헬프시리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저는 전문가도 아니고 법 공부하는 대학생이었고, 단체 운영 경험도 부족했어요. 단체 만들기 전에는 시리아를 위해서 활동하고 싶다고 한 전문가들이나 대단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헬프시리아 하자고 하니까 다들 안 오셨어요. 저한텐 첫 번째 큰 실망이었어요.
내 손 잡아준 사람들은 가까운 친구들이었어요. 와합 혼자하기 어려우니 와합 도와서 옆에 있겠다, 이것만 가지고 헬프시리아 만들었어요. 그 친구들도 나처럼 경험 없고 전문가도 아니었어요. 서로 배우면서 여러 단체랑 협력하면서 지금까지 왔어요. 그래도 3년 전보다는 지금은 좀 나아요. 활동 범위도 많이 넓어졌어요. 3년 전에는 모금함 들고 캠페인 나가면, ‘시리아가 뭐에요, 나라에요, 어디 있어요?’ 이런 질문 많이 받았어요. 지금은 미디어 때문에 사람들이 시리아 상황 이해하고 응원해주고 있고, 같이 활동하자는 단체들도 있어서 같이 연대하고 있어요. 작년에는 세 살 꼬마인 아일란 쿠르디 사진 한 장 때문에 전세계가 난리가 났는데요. 한국에서도 사람들 많이 공감해주셔서 그때 후원금이 많이 들어왔어요. 그때 1년 후원금의 3배가 두달동안 들어왔었어요. 한국인들이 따뜻한 마음 보여줘서 무척 감동했어요.
송환대기실 난민 19분이 승소했다고 들었는데, 그런 얘기 들었을 때 어땠나요.
2만 8천명 아니고 28명
유럽 난민문제가 있다 해서 물어보면, 독일에서는 시리아인 100만명 이상, 영국에 10만명 있대요. 한국에서 난민 위기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안에 ‘2만 8천명 있나’ 이렇게 해석하는 거에요. 터키에 있었을 때 28명 얘기가 나왔는데, 친구들이 물어봐요. “시리아 난민이 한국까지도 갔니”, “오 한국 너무 훌륭하네, 몇천명도 받아들이고.” 거기에 제가 “몇천명 아니고 28명이에요.”라고 답하는데 너무 부끄러웠어요.
28명을 컨트롤 못하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야
“아니 28명을 왜 일처리 안 해주냐. 나쁜 사람이면 돌려 보내고, 뭔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증거 있으면 감옥 보내고, 아무 것도 없으면 그냥 입국 시키면 돼. 28명을 컨트롤 못하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 이런 얘기 많이 들었어요.
외국 나가면 자동으로 제가 한국 얼굴이 돼버렸어요. 나는 한국에서 공부하는 외국인이고. 한국 정부가 초대해서 온 사람도 아닌데, 사람들이 나를 한국대표로 봐요. 이런 얘기 나오면 욕만 먹어요. 무척 곤란하고 답답했어요.
저번에 터키 기자가 연락 와서 “28명 어떤 문제있는지 우린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터키는 400만명을 받아주고 있는데 한국은 28명도 못 처리하고 있냐”고 해요.
이제 한 단계 지났구나
저번에 판결 발표 나왔을 때 19명 입국할 수 있다고 하는데 많이 행복했어요. 아, 한 단계 뭔가 지났다, 남은 9명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어요. 한국이 국제사회에 좋은 얼굴 보여주면 좋겠어요. 한국에 들어오면 28분 모두 좋은 일만 했으면 좋겠어요. 그들을 열심히 도왔던 사람들을 위해서도, 시리아 난민 전체 얼굴을 위해서도요.
 
 
기존 한국에 있는 시리아 난민 천 명과 인천에 억류된 28명은 어떻게 다른가요?
28명도 똑같은 방식으로 왔어요. 원래 한국에 있던 사람들은 200명 정도였는데 시리아 전쟁 후에 한국에 머무르거나 가족 초대하면서 많아졌어요. 초대장 보내서 1-2명씩 오는 방식으로 28명도 똑같은 방식으로 왔는데, 갑자기 출입국에서 문을 닫은 거죠. 비자 있어도 입국 못하는 상황이 된 거죠.
헬프시리아는 시리아 내부 난민들하고, 시리아 인근 난민 캠프 분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하시는 거죠? 한국에 와 있는 시리아 난민들은 아직은 한국의 연이 있는 분의 추천으로 오시기 때문에, 이분들에 대한 긴급 지원은 나중인 거죠?
한국에 있던 난민들은 어렵고 도움 필요하고 힘들고 계속 고생하고 있지만, 시리아 난민보다 훨씬 좋은 환경이고, 그분들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은 많아요. 한국 작은 단체들은 시리아 안으로 갈 수 없어서 시리아 난민 못 도와준다면 한국에 있는 가까운 난민들을 도와주면 돼요. 우리가 멀리 있는 난민들 도와줄테니까요.
시리아 교육 문제도 심각할 것 같은데, 다마스쿠스대학는 운영이 되나요?
다마스쿠스대학은 운영하고 있지만, 내부 상황이 불안해요. 학생 중에 알아사드 좋아하는 사람이 알아사드 싫어하는 사람을 신고하면 바로 경찰 와서 잡아가요. 교수들도 나쁜 짓 하면 예전엔 학생들이 보이콧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교수가 시리아 정부만 지지하면 누구도 건드릴 수 없어요. 독재자가 돼버렸어요. 그리고 먼 지역에서 오는 학생들은 매일 조사하고 의심해요. 라카 지역에서 다마스쿠스 가면 너 IS 지역에서 왔으니 IS라고 오해하구요. 학교는 운영하지만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어요.
▲ 시리아 내전 발발 후 5년이 지난 2015년 12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동부 지역 조바르 상공을 드론이 촬영한 묵시록적인 영상 (출처: 러시아 투데이)
난민캠프에도 학교가 생기나요? 
요르단, 자타리 캠프
캠프마다 거의 학교는 있지만 상황이 달라요. 요르단에 있는 UN에서 설립한 대표적인 시리아 난민캠프 자타리에는 난민 8만명이 살고, 유니세프가 운영하는 학교도 있는데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요. 다양한 나이와 수준의 학생 150명이 모여 있어서 수업이 안 돼요. 아이들은 잠깐 공부하고 놀고요. 선생님은 요르단인데, 요르단 정부가 시리아인이 직접 아이들을 못 가르치게 해요. 요런 얘기는 매번 해서 미안한데, 학교가 아이들을 이용해서 유엔 후원금을 받아요. UN의 고위 관계자가 온다고 하면, 학교에선 ‘작은 선물, 큰 선물’ 이렇게 두 개 준비해서 아이들에게 작은 선물 먼저 주고, ‘내일 공부하는 학생처럼 깨끗하게 입고 일찍 오면 큰 선물 줄게요’ 하면 아이들은 큰 선물 받으려고 깨끗하게 입고 일찍 옵니다. 아이들이 다음날 오면 우연히 손님이 왔다고 합니다. 반기문 같은 사람 오면 학생들이랑 페이크 스마일하면서 사진 찍고, 홍보영상 만들고. 손님 가면 2-3일 학교 안 와도 된다, 이런 방식으로 운영해요. 사람들도 익숙해졌어요. 선물 받으면 어떤 손님 온다는 걸 압니다. 너무 안타까웠어요.

▲ 사막 한가운데에 세워진 자타리 난민 캠프는 현재 요르단에서 5번째로 큰 도시가 되었다. (출처: AP/dpa)
레바논
레바논은 가난하고 UN도 일할 수 없는 나라여서 난민캠프 운영방식이 달라요. 레바논 사람들이 장사하듯이 관리해요. 자기 땅이 있으면 UN사무실 가서 텐트 받고 설치하고 난민들에게 렌트합니다. 개인이나 자원활동가들이 와서 작은 학교를 만들기도 하는데 교육시스템이 안 되고 있어요.
터키
터키는 난민캠프에 학교 있지만, 잘 되지 않고요. 난민캠프 밖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터키학교 다닐 수 있는데 서류에 등록이 안 됩니다.
시리아 
시리아 안 상황이 제일 어려워요. 학교는 매일 가스 폭격 받아요. 폭격 하면 제일 먼저 학교, 병원에 합니다. 사람들은 무서워서 자식들 학교 못 보내요. 개인적으로 여기저기 작은 학교를 만드는데 잘 안 돼요. 지원금도, 책도 필요하고. 책도 어떤 책을 가르쳐야하는지, 시리아정부 책인지, 외국 책인지. 우리 지역에서 IS가 아이들에게 이상한 지식을 만들어서 지하디스트 참수방법도 가르친다고 들었어요. 사람들이 IS학교에 아이들을 안 보내려해요. 안 가게 한다면 참수당하니까 아이들 아파서 못 보낸다고 핑계를 만든다. 이상한 교육이 돼버렸어요.
시리아 상황 한번 가까이에서 보면 되게 쇼크에요. 믿을 수 없는 얘기가 너무 많아요. 2014년 한국 팀과 시리아 가서 다큐 만들면서 며칠 있었는데, 되게 무서웠어요. 폭격 때문이 아니라 시리아 미래 때문에 무서웠어요. 아이들 보니까 아무것도 안하고, 공부도, 일도 안하고. 계속 싸움 소리만 듣고, 총알이 두두두두하는데 아이들이 무기 이름도 소리만 들으면 다 알더라구요. 되게 무서웠어요. 아이들이 똑똑해서 빨리 배우는 건 넘 좋은데, 이상한 것만 배우니까 너무 안타까웠어요.
난민 다큐멘터리 보니까 아이들이 전쟁놀이하고 놀더라구요.
교육이 안 되면 한 세대를 잃어버리는 것
전쟁놀이 많이 해요. 싸움놀이. 다다다다 싸우고 한 사람 죽으면 땅에 묻고. “이거 뭐야?”하고 물으니 “게임이야. 너는 독재자, 나는 시위자, 너는 반군.” 이렇게 역할도 나누고. 얼마나 무서워요.
시리아가 무너져도 우리가 다시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건물은 빨리 지을 수 있지만, 교육이 잘 안 되면 한 세대를 다 잃어버리는 겁니다. 안타까워요.
상황이 어려운데 앞으로 활동을 어떻게 해나가실 계획인가요?  
어려운 질문이에요. 저나 친구들 모두 3년 동안 자원봉사로 열심히 했는데 힘들었어요. 개인 생활도 아예 없어지고 학생인데 논문 쓸 시간도 없어요. 같이 활동하는 친구들도 다 직장인이고, 사정들이 있어서 활동가도 많이 줄었어요. 처음에 헬프시리아 설립했을 때 1년만 하면 될 거 같다 생각했어요. 그땐 정말 시리아 상황이 곧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IS 나타나서 너무 복잡해지고, 활동한 지 3년이 되니 친구들도 저도 지쳤어요.
3년 동안 활동비 안 받고 활동하신 거예요?
제 개인 돈으로 활동하고 있고, 우리에게 오는 돈은 100% 시리아인들에게 보내고 아예 손 안 대요.
헬프시리아, 지속가능성을 위한 다음 단계 모색
계속 지금 방식으로는 활동하면 안 되고, 뭔가 효율적으로 전문성 있게 가야겠다 싶어요. 헬프시리아 없애고 개인 이름으로 활동하거나, 아예 헬프시리아를 확대하거나 둘중 하나를 택해야 해요. 그런데 헬프시리아 활동을 멈추면, 난민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에요. 3년 동안 열심히 버틸 수 있었던 건 난민 때문이에요.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너무 힘들고 눈앞이 캄캄하지만, 난민에게 음식을 갖다줄 때 행복해하는 얼굴을 보면 내 안의 인간성이 살아나는 느낌이 들고 새로운 힘을 얻고 활동하게 돼요. 뭔가 난민을 도와주지 않으면 저도 생활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무조건 헬프시리아도 확대시키고, 활동분야도 넓혀야겠다 싶어요. 사단법인 준비 중이고. 상근자도 뽑아서 지난달부터 활동하고 있고, 예전엔 후원금 없었는데 지금은 후원금 모아서 운영회비로 보내주셔서 감사해요. 사무실도 없는데 빙고(개발협력 협동조합) 사무실을 임시로 빌려 쓰고 있어요. 사단법인 등록이 되면 여러 전문가 뽑아서 방향을 잡고, 난민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활동하려합니다.
헬프시리아가 난민 위해서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활동해야 해요. 난민 도와주면서 우리도 배우고. 시리아 상황이 끝나게 되면 한국과 시리아를 연결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헬프시리아 이름으로 정리하려 합니다.
이제는 한국 기업들 모두 시리아를 관찰하고 있어요. 새로운 시장이니까. 완전 다 무너져서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우리는 이런 자본의 관점으로 가지 않고 문화교류하는 방향으로 가려해요. 시리아 난민 위해서 열심히 활동하고 관심, 사랑, 응원 많이 해주셨으니 (보답하는 마음으로) 투자로 생각하려합니다. 헬프시리아의 첫 단계 시리아 난민 돕기, 두 번째 단계는 문화교류.
어서 시리아 상황이 종료되고 시리아와 문화교류할 수 있는 그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3년 동안 헬프시리아에 관심, 사랑, 응원, 희망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몇 년 더 도와주세요.
난민들은 이상한 사람들 아니에요. 다 자기 집, 직업, 학교 있던 사람들인데, 갑자기 가난해지고 어려워진 사람들이에요. 이들에게는 말한마디도 상처가 됩니다. 넓은 마음으로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주셨으면 해요.
한국도 역사를 보면 전쟁으로 난민이 되었던 아픔들이 있었으니, 시리아 난민들에 대한 이해를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한국도 그런 어려운 상황을 딛고 지금 잘 되고 있는데, 시리아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임시적으로 도와줬으면 해요. 시리아인들은 한국하면 삼성, 기아, 엘지, 케이팝, 강남스타일 같은 건 알지만, 비즈니스 마케팅보다는 한국인 마음 마케팅을 했으면 합니다. 얼마나 마음이 따뜻한지 시리아 난민들에게 보여주면 해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시리아 인들이 잊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요. 어려운 상황이지만 시리아 좋은 상황 되고, 한국이랑 좋은 교류 했으면 해요.
누구도 언제 난민 될지 모릅니다. 우리 잘못 없어도 난민이 될 수 있습니다.
긴 시간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리아 상황이 잘 해결되길 기원합니다. 헬프시리아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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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취재·정리 | 숲씨 웹진 VOM 편집장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과 생명 아닌 것들의 벗이 되고자 합니다. 악의 평범성, 폭력의 내재화를 끊어내는 일을 나와 내 이웃으로부터 실천하고자 합니다. 평화에 물들고 평화를 물들이는 삶을 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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