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M피플] 변방에서 주체로, 10년차 이주여성인권활동가 레티마이투 인터뷰

2001년 정부조차 관심을 두지 않을 때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를 설립하며 이주여성의 인권 향상과 법·제도 개선, 활동가 양성에 큰 기여를 해 온 한국염 목사가 올해 1월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한국염 목사의 이주여성인권운동 15년을 사례별로 정리한 《우리 모두는 이방인다》 출간기념회에서  그는 이주여성운동의 당사자성을 강조하며 10년 전 한국어교실의 학생으로 인연 맺어 활동가로 성장해온 레티마이투 인권팀장의 사례를 언급했다. 레티마이투 팀장의 한국이름 ‘한가은’은 한국염 대표의 성을 따라 지은 이름이라고 했다. 성을 따라 이름을 지을 만큼 두 분의 관계는 단순한 상사와 직원 관계 그 이상의 각별함을 갖고 있었다. 책 속에도 레티마이투 팀장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가 되어 있는데 직접 만나 지난 10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변방에서 주체로

10년차 이주여성인권활동가 레티마이투 인터뷰

▲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의 상담실에서 인터뷰에 응한 레티마이투 인권팀장. ⓒMWTV

숲씨(이하 숲)>  반갑습니다. 한국염 목사님의 책을 통해서 레티마이투 님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지난 10년을 한 대표님과 함께 이 기관에서 이주여성의 인권을 위해 활동해오셨는데요, 레티마이투 팀장님에게 한국염 대표님은 한마디로 어떤 분인가요?

레티마이투(이하 투)>  한국염 대표님은 저의 친구이자 선배이자 가족 같은 분이에요. 힘들 때 챙겨주시고 조언해주시고 제가 성장할 수 있게 이끌어준 언니 같은 분이셔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이하 센터)와는 어떻게 첫 인연을 맺으셨어요?

투>  제가 처음 2005년에 결혼해서 한국에 와서 1년 동안은 한국어교실이 어디 있는지 잘 몰라서 집에서만 지냈는데요. 동네 시장에 갔는데 친한 친구를 만나게 됐어요. 순대국 아줌마가 연결해준 친구였어요. 그때만 해도 이주민이 많이 없어서 순대국 아줌마가 이주민들 만나면 말 걸어 주시고 서로 연결해주셔서 그 동네에 알게 된 언니들이 꽤 있었어요. 그중에 이 친구가 센터에서 하는 한국어교실에 다니고 있었어요. 그 친구도 남편이 인터넷 검색하다가 알게 돼서 교육 받게 해준 거였어요. 하여튼 그 때 한국에 온지 1년 되었을 때 2006년에 여기 다니게 되었고 한국염 대표님을 뵈었었죠.

▲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진행했던 한국어교실. 다문화지원센터가 지금처럼 늘어나기 전에는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 흔치 않아 많은 결혼이주여성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처음부터 제대로 된 단체와 인연을 맺었네요.

투>  좋은 사람, 좋은 단체 만난 게 참으로 행운이었죠. 한국어교실은 다른 데도 있었을텐데 몰랐었죠. 좋은 사람 만난 게 좋은 인연이었어요.

2005년도에 한국에 오시고 2006년부터 센터와 인연이 되셨는데 지금은 많이 해소가 되셨겠지만 한국생활 초기에 다른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투>  다른 분들이랑 비슷해요. 언어도 안 되고 동네도 잘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고 TV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고, 음식도 다르고, 겪는 어려움이 다 비슷해요. 특히 이주민들이 많이 외로워하는 부분이 한국 가족 말고는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없잖아요. 외로워하죠.

인권센터에서 활동 하시는 건 집에서는 반대하진 않으셨어요?

투> 반대하진 않고 열심히 해보라고 얘기해주죠. 처음에 여기서 일 시작했을 때 센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인권이라면 어떤 인권인지, 한국사회를 잘 모르다 보니까 저도 잘 몰랐어요. 그냥 좋은 곳이다, 이주민들 위해서 한국어교실도 하고 컴퓨터교실이나 문화활동도 해주고 상담이 필요하면 상담도 하는 곳 이 정도만 알고 있었어요. 가족도 이 정도만 아니까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죠.

결혼한 사람들은 가정생활도 있어야 되잖아요. 가정도 챙기고 자녀도 챙기고 아내나 며느리 역할이 많이 요구되는 이 사회에서는 사회활동하려면 가족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어렵죠.

한국어교실 다니면서는 통역활동도 좀 했었어요.

활동가로서 역할이 단계적으로 커진 거잖아요. 지금 하시는 업무, 역할에 대해 소개해주시면요?

투>  처음엔 들어와서 한국어를 잘 모르니까 컴퓨터 사용이나 업무를 하나하나 배웠어요. 글씨는 읽는데 이해 안되는 것도 많고. 처음엔 회계를 맡지 않았고 주로 보조 역할을 했어요. 은행 가거나 우체국 가거나 도장 찍거나. 도장 찍는 일이 재밌었어요(웃음). 연말 보고서, 프로젝트 서류에 결재 도장 찍는 거 있잖아요. 사소한 복사라던지, 전화도 받고. 전화 받는데도 알아듣기가 어려웠어요. 외부단체 이름이 길잖아요. 평상시 사용하지 않는 이름들이 많다보니까. 그러다가 한국어교실 담당하고, 센터 내 회계도 맡고, 프로젝트 보조나 홈페이지를 관리하거나 소식을 올리거나 했고. 그 다음에 기부금영수증 발행이나 각종 세무신고, 지금은 프로젝트 진행도 하고 홈페이지 담당도 하고 이주민 직간접 인권 지원이나 행사 프로그램 등을 하고 있어요. 조금씩 올라온 거죠.

▲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염 상임대표와 레티마이투 활동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와 들어보니 일이 너무 많은데요.

투>  모든 일을 다 맡고있는 건 아니고요. 지금 얘기한 몇 가지만 맡고 있는데. 그래도 많기는 해요. 시민단체다 보니.

한국염 선생님 책 보니까 이주민 당사자가 스스로 활동가가 되어서 성장하기까지 정말 ‘지독하게 훈련시켰다‘는 표현을 쓰셨는데, 그런 훈련과정이 궁금해요. 이주여성 역량강화 프로그램이 일반 센터에서 하는 교육이랑 어떤 차별점이 있나요?

투>  기본교육은 다 비슷한데요. 역량강화교육으로 성폭력상담원 교육이라든지, 가정폭력상담원교육, 인권지원단교육, 한국사회의 이해, 이주의 이해와 같은 교육을 해요. 다른 곳에서는 주로 기본적인 걸 가르친다면 저희는 좀더 업그레이드된, 이주민입장에서 여성주의 관점에서 상담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해요. 그냥 통역하는 역할이 아니라 이주민이 직접 한국 가족들, 이주민 대상으로 상담할 수 있도록 하니까 많이 다르다고 봐야겠죠. 다른 데는 예를 들어서 가족중심 지원이잖아요, 한국정부정책이. 우리는 가족을 지원하긴 하지만 이주여성의 입장에서, 이주여성들이 엄마나 며느리, 아내가 아니라 스스로 주체로 성장할 수 있게 교육해요. 성장 후에 다른 이주민들을 교육할 때도 자세가 다른 거죠.

▲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이주여성 활동가 양성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인권적인 관점, 젠더적인 관점을 정확히 갖고 상담한다는 게 쉽지가 않은 것 같아요.

투>  상담이라도 다 똑같은 상담은 아닌 거죠.

그래서 이곳에서 하는 활동가 양성 프로그램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투>  다른 데는 보통, 한국사람이 강의해서 이주민들이 교육만 듣는 수동적인 교육이라면 저희는 함께 세미나도 하고 슈퍼비전을 해서 이주민들이 직접 발표하도록 해요. 이주민들이 자기를 드러내고 주체가 돼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말할 수 있게 하고, 주도적으로 프로그램이나 교육을 이끌어가는 기회나, 마음 편하게 대화, 토론할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마련하죠.

저도 처음엔 많이 내성적이고 말을 잘 못했었는데, 그런 훈련을 많이 받아서인지 할 말은 다 할 수 있는, 물론 사람들 만날 때 아직도 그 성격이 있어서 부담스럽긴 하지만, 자기 입장은 다 표현할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선생님이 2007년 8월부터 해서 10년차 활동가이신데, 여기서 당사자 활동가들 중에서는 가장 선배인가요?

투>  전국적으로는 거의 아마 상근활동가 중에서는 그럴 거에요. 처음부터 고용이 돼서 주 5일 정식 활동을 한 건 제가 처음인 것 같아요.

지금은 이주여성 활동가분들이 많이 늘어났나요?

투>  우리 인권센터에는 활동가 4명 중 이주민은 저랑 캄보디아 활동가 이렇게 2분 계시고, 종각역에 있는 이주여성상담센터에는 이주민이 5분 계셔요. 거긴 센터장님만 한국사람이에요. 쉼터에는 총 8명 중 이주민이 5명이구요. 이사회에서도 이주민 분들 계시고. 대구지부에도 상담이나 다문화강사, 이중언어강사로 활동하는 분들이 꽤 많구요. 충북도 1분 계시고, 전남도 상담센터 있으니까 많고요. 아직 없는 지부도 있지만 대부분 이주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자리를 마련하고 있어요.

10년 전과 지금이랑 비교하면 엄청난 격세지감이 있을 것 같아요.

투>  이렇게 같이 하다보니까 이주민들끼리도 공유할 수 있는 게 있고, 서로 이야기해주고 위로가 되어주기도 하고, 서로 바라보면서 내가 열심히 해야겠다 이런 게 보이죠.

출신국가별로 골고루 있으신가요?

투>  상담센터 같은 경우는 베트남, 중국, 몽골, 필리핀, 중국 2분 계신데 한 분은 상담, 한 분은 회계나 행정업무를 같이 하고 계셔요. 그 분은 원래 복지관에서 회계를 몇 년간 하셨거든요. 보니까 저희 센터랑 관련해서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이 다 훌륭하신 분들이에요. 아마 저희 센터랑 성향이 맞는 분들이 찾아오신 것 같아요.

이곳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양성되고 배출된 외부 활동가도 많을 것 같아요.

투>  인권전문가 교육이나 가족성폭력상담원 교육이라든지 저희가 인기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해요. 다른 데서 하는 기본적인 교육보다 업그레이드된 전문성을 키워주는 교육을 하다보니까 관련단체에서도 많이 오시고 또 한국에서 어느정도 생활하고 정착하신 분들이 와서 교육 받으러 오시기도 해요.

초반에는 선주민 활동가 비율이 더 높았을텐데 선주민이 이주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보다 이주민 당사자의 활동이 더 중요한 이유에 대해서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투>  저희 활동 목표도 거기에 있다고 봐야할텐데요, 선주민들이 아무리 얘기해도, 한국말은 잘 하시니까 전달은 잘 될지 모르겠지만, 이주민이 직접 나와서 한다면 확실히 설득력이 높아지는 것 같아요. 이주민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 소수자들도 당사자가 나와서 얘기한다면 조금 더 이해하기가 쉽고 공감이 형성되는 부분이 있잖아요.

저희가 처음에는 선주민들이 나와서 할 수 밖에 없었어요, 상황이. 그리고 이주민 경우, 귀화하기 전에는 나서서 말하거나 하면 억압받거나 추방당할 위험도 있잖아요. 전에는 제가 행사 갔을 때 위험할 것 같으면 나오지 말라, 뒤에 있어라 하면서 선주민 활동가들이 나서줬어요. 이제는 당사자들이, 저도 귀화를 했고 주변 활동가들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체류자격도 안정되고 하니까 당사자들이 주로 나가서 말을 하고 있어요. 저 같은 경우 이제 강의를 나가기도 하고 그러죠.

▲ 3월 19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린 세계인종차별철폐의날 집회에서 이주여성의 인권을 위해 발언 중인 레티마이투 활동가 ⓒMWTV

활동하신 분들 중에서 상담을 통해 어려운 상황에 있다가 센터의 도움을 받으면서 활동에 참여하게 되는 경우도 있나요?

투>  도움 받았다가 활동가가 되는 경우, 있죠. 저 같은 경우도 어려울 때 도움 많이 받았죠. 센터 도움 없었으면 힘들어서 의논할 상대도 없고. 그랬다면 아마 지금 여기까지 있지 못했을 거 같은데, 꼭 폭력 당해서 쉼터 입소해서 그렇게 활동가가 되는 게 아니라 어려울 때 의논할 수 있고 상담 받고 지원받고 연결되니까 내가 힘을 내서 활동할 수 있는 거죠. 여기뿐 아니라 나가서도 활동할 수 있고요.

활동하시면서 보람있었던 순간,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다면요?

투>  힘든 순간도, 보람도 많았어요. 상담할 때 가해자 남편이나 가족을 만났을 때는 많이 힘들었어요. 왜냐면 그들이 이주여성 당사자 활동가를 봤을 때는 베트남에서 왔다고 하면 똑같이 베트남여자들인 거죠. 다 똑같지 뭐. 아내를 미워하는데 같은 나라 출신 이주민, 아무리 활동가든 팀장이든 좋게 보겠어요? 똑같이 바라보고 대하는 태도도 그렇고, 어떤 때는 폭력적인 가족들 만났을 때는 위험부담도 있죠.

저랑 같이 일했던 분은 유난히 그분에겐 어려운 상담이 많이 왔었는데요. 위험한 사람을 상담하다 보니까, 자신뿐 아니라 가족까지, 자녀까지 해치지 않을까 하는 부담을 느끼며 일했어요.

저도 가해자가 아니라도 가족 갈등 있을 때 한국분들이 큰 소리로 얘기하면 위협적인 느낌을 많이 받거든요. 상담실에 있으면 상담사는 혼자만 있거든요. 내담자 하고 남편하고 가족. 그런 때는 많이 부담스럽고 어렵죠.

그 외에도 당사자 활동가다 보니까, 이젠 당사자가 나서서 한국말로 발표하고 강의해야 하니까 그런 게 많이 어려웠어요.

강의 준비는 혼자 다 하시나요?

투>  지금은 혼자 다 하는데, 전에는 글쓰는 거라든지, 실무회의에서 육하원칙으로 이야기하라, 미리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작성하고 이야기해 보고 연습해라든지, 어떤 책을 보면 좋겠다든지, 다른 선배 활동가와 연결해서 도움 받고 제가 성장할 수 있도록 사무처장님이나 다른 활동가들이 도움을 많이 줬어요. 신문도 같이 읽으라 하고. 프로그램이나 일을 할 때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나 관련단체에 대한 설명이나, 한국염 전 대표님도 도움 주셨지만, 허오영숙 사무처장님이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지금 남아있는 활동가 중에 제일 오랫동안 저랑 같이 했던 분은 한국염 전 대표님하고 지금은 상임대표님 되신 허오영숙 사무처장님이에요.

▲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의 가족 같은 식구들과 함께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보람을 느끼는 점은요?

투>  보람 있었던 일은, 어려움을 겪던 분이 어려움을 벗어나서 성장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처음엔 폭력피해 이주여성들이 주눅 들고 힘들고 막막할 때 찾아오잖아요. 내가 지원해줘서 아는 게 많아지고, 자기 생활을 계획하고 성장하고 그런 걸 보면 보람이 있고요. 지금 친하게 지내는 동생이 있는데 폭력피해자였는데 혼자서 잘 살고 있고, 자녀를 못 만났었는데 자녀 면접도 이젠 되고, 한국말도 늘어서 본인 스스로 살 수 있게 되었어요. 나아가 주변에 어려운 친구들에게도 도움 주고 그런 모습 볼 때 보람을 느끼죠. 도움 받은 분들이 도움을 주면서 그렇게 퍼져 나가는 거 같아요.

소식 안 닿는 분들도 있지만 건너서 소식 들으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다더라, 직장 잡고 잘 지내고 있다더라는 소식을 들으면, 그래 참 잘한 일인 거 같다 싶어요.

한국분들도 한 직장에서 일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 같은데, 오랫동안 한 길을 갈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요?

투>  힘이요? (웃음) 일단 제가 이 센터 너무 사랑해요. 가족 같은 곳이에요. 센터에 나오는 게 참 맘 편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고. 직장동료들과의 관계가 중요하잖아요. 그런 게 안 되는 직장이 많죠. 위계질서가 강하면 힘드니까. 여긴 직장이면서 가족 같은 느낌이에요. 좋은 분들하고 같이 일하다보니까.

물론 일하다 보면 프로젝트 담당하는데 잘 모르기도 하고 잘 못하기도 하고 포기하고 싶은 적도 있었지만, 다시 돌아봤을 때는 내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센터가 있고 이 분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거거든요. 이렇게 내가 성장할 수 있게 뒷받침해줄 수 있는 곳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 때문에 계속 있는 부분도 있죠.

사실 단체 입장에선 활동가로 키우려고 교육을 시킨다고 해도, 정작 본인은 교육이 끝나면 다른 곳에 취직하려고 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한국염 대표님도 초기에 그런 어려움이 있었다는 말씀을 하셨었는데요.

투>  그런 것도 우리 활동 목표 중 하나에요. 계속 그분들만 껴안을 수 없으니까. 그분들이 나가서 다른 곳에서 많은 사람을 지원하거나, 꼭 지원뿐 아니라 본인이 성장해서 자기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일을 하는 것도 되게 보람 있는 일이에요. 그렇지만, 한국염 대표님이 얘기하는 부분은 아마, 어느 정도 성장됐을 때 더 많은 기여했으면 좋겠는데, 사실 저희가 NGO단체다 보니까 급여라든지 여러 가지 비교가 되기도 하잖아요. 급여 많은 데로 가시는 분도 있어요. 제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그것도 잘한 일이다 생각해요. 이분들이 갖고 있는 관점이라든지 인식을 심어주고 나서 이분들이 나가서 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들 역할이니까. 그러나 아쉬운 건 조금 더 함께 뭉쳐서 하면 좀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빠져나가기 때문에, 인력이 필요한데 많지 않으니까 좀 아쉽다 이런 얘기인 것 같습니다.

지금도 상담인력이 많이 부족한 편인가요?

투>  그렇죠. 저희 인권센터도 활동가 4명이 지부나 쉼터를 지원하는 업무를 하고, 여기 본 업무도 있고, 또 저희가 하는 업무가 남들이 안 하는 일을 개척해나가는 그런 업무가 있으니까 일손이 달리는 편이죠.

상담센터 경우는 작년 한해 동안 서울에서만 1만 건, 대구에서만 4천 건의 상담을 했어요. 그런데 상담원이 4명, 행정담당 1명, 그래서 5명이지만, 상담건수가 점점 많아지고, 인권 지원하다보니까 복잡한 사례들이 많이 생겨요, 물론 원래도 있었지만, 요즘 들어서 더 그래요. 이제는 저희가 소문이 났잖아요, 열심히 도와준다고 많이 찾아와요. 다른 데서 해결 못한 케이스는 상황이 초기에 찾아왔으면 좋았겠는데, 예를 들어 부부갈등이 있을 때 바로 오셔서 상담받았으면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꽤 있거든요. 막 오랫동안 끌다 보니까 갈등이 너무 심각해지거나 아니면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서 또 다른 복잡한 일들이 많이 발생하고 꼬일 때 저희에게 찾아오거든요. 꼬인 걸 풀려면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한 사람 지원한다라는 게 한번 상담으로 끝나는 게 아니니까. 이런 때는 많이 찾아오시니까 상담원 5명으로 해결하기엔 많이 일손이 부족하죠.

역량강화 프로그램 중에 <느린 언어로 낯설지 않은 대화>라고 결혼이주여성이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프로그램이 인상적이었어요. 이런 프로그램하면서 기억에 남는 그림이 있나요? 그림을 그리면서 사람이 바뀌어나간 경험이 있나요?

▲ 결혼이주여성의 자기표현력을 키우기 위한 일환으로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실시한 ‘느린 언어로의 낯설지 않은 대화’ 작업의 결과물. ⓒMWTV

투>  저희는 많이 해왔던 거 같아요. 그림만 아니라, 글쓰기, 인권글쓰기, 여러나라 문화를 소개하는 그런 거라든지, 사진도 그냥 사진이 아니라 뜻을 담은 그런 사진을 찍어요. 사진에 대한 설명이나 그림 그리는 걸 통해서 이야기하는 거죠. 이주민들이 한국말은 안 돼도 표현은 되잖아요.

그림 하나로 확 바뀌었다거나 하는 건 어렵구요. 미술심리치료하고 해야하나요? 활동하면서 많이 스트레스 받고 힘든 일들이 있는데 풀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그림 그리기를 하는 게 있어요. 그걸 통해서 자신을 알고 자기가 어려운 상황 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활동가들이 스스로 이해하고 성장해나가는 거죠.

그리고 인권글쓰기를 하면서 인권에 대한 의식을 갖게 돼요. 상담할 때도 보면 처음에는 문제다라고 느끼지 않는 경우들 있잖아요. 이건 차별적인 언어가 아니다, 나를 무시한 거 아니라던지, 이주민에 대한 편견이라고 생각 못했다가 인권글쓰기 공모전에 참여하면서 나도 이런 경험해봤다, 이런 걸 인식해봤다고 알게 돼요. 인권 문제에 대해 의식 하게 되면 사람이 많이 달라지잖아요. 그런 경험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도 달라지고요.

쉼터에서는 아동이나 이주여성이 그림그리거나 심리치료 통해서 아팠던 얘기를 할 수 있으니까 치유가 되고요.

▲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실시한 이주여성 인권 글쓰기 공모전의 우수작품을 모은 《2009 이주여성인권글쓰기공모전 우수작품집》 중 한 페이지 ⓒMWTV

쉼터에 한번 방문할 수 있나요?

쉼터는 비공개시설이어서요. 가정폭력 피해자이기 때문에 가족들이 찾아올 수 있으니까. 쉼터는 집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 집안에는 이주여성들과 자녀들이 거주하고 있어요. 활동가들이 거기서 일하면서 쉼터에 들어오시는 분들하고만 프로그램을 하는 거죠. 행사, 한국어 교육, 취업 교육 등. 전에는 센터에서 한국어교실을 했었어요. 지금은 모든 곳에서 한국어교실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센터에서는 굳이 따로 하지는 않고 대신 쉼터에서만 하고 있어요.

이주여성인권센터가 있음으로 인해서 이주여성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안착된 느낌이 들어요. 이주노동자, 결혼이주남성들을 위한 쉼터나 센터는 없나요.

투>  남성분들은 주로 이주노동자지원단체로 가지요. 아마 이주노동자지원센터 가시면 한국어교육은 많지만, 상담원 교육, 인권지원단 교육은 없을 거에요. 그렇다고 따로 그분들 위해 확장해서 하긴 어렵고요.

하고 싶으신 얘기가 더 있으신가요?

투>  오랫동안 활동해왔으니까 많은 이주민, 활동가들 위해서 선배 역할을 해야겠어요. 경험을 나누고 도움이 되는 케이스가 되고 싶어요. 허오영숙 선생님과 입사 동기인데 이주민이 아니라 한국인 활동가처럼 정보력이나 사람관계나 하고 있는 일을 좀더 많이 확대해나가고 싶습니다. 좀더 능력을 발휘하고 성장하고 싶어요.

좋은 말씀 감사드리고요. 앞으로도 왕성한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인터뷰  | 숲씨 웹진 VOM 편집장

숲도 작은 씨앗에서 태어났습니다. 악의 평범성, 내재화된 폭력성을 살피고 끊어내는 일, 일상에서의 실천, 평화에 물들고 평화에 물들이는 삶에 관심이 많습니다. 

mwtvbae@gmail.com

목록으로
메뉴, 검색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