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M피플] 미등록 이주아동의 마음을 읽는 사람들① 필리핀 귀국미등록아동 미술심리치료

미등록 이주아동의 마음을 읽는 사람들,
이주노동희망센터 안은주 국장과 송정은 미술치료사 
소환되는 아이들, 필리핀 귀국미등록아동 미술심리치료 이야기
“한국애에요. 공부도 잘 하고 상도 많이 받고. 모든 터전이 여기 한국인데, 갑자기 떠났을 때 아이 정체성에 문제가 있을 거라 추측했어요. 부모가 단속이 돼서 아이도 함께 보내는 건데, 아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신경을 안 써요. 이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어떻게 될까요.
한국에 남아 있는 미등록 아동들도 언제든 쫓겨날 가능성이 있어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장미는 파주의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던 중에, 엄마가 단속되어 함께 필리핀으로 갔다. 장미는 필리핀 말도, 문화도 모른다.
작년 5월, ㈔이주노동희망센터(이하, 희망센터)는 미등록이주아동 실태조사 발표를 하면서 미등록아동 문제를 이슈화하고 기본권리보장법 제안 활동을 함께 했다. 올해는 그 후속 사업으로 트라우마 커뮤니티 미술심리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아트온어스(Art on Earth)와 함께 미등록이주아동 및 부모, 귀국미등록아동에 대한 정서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희망센터가 올해 진행한 미등록이주아동 및 보호자에 대한 심리사회적지원 활동은 크게 △필리핀 귀국미등록아동 미술심리치료 △마석 무지개교실 미등록아동 미술심리치료(10회) △네팔여성이주노동자 정서지원으로 나뉜다.
9월 1일 ‘이주노동/미등록아동 심리사회적지원 결과 간담회’를 앞두고 희망센터 안은주 국장과 아트온어스의 송정은 대표를 만났다.
미등록이주아동 실태조사에서 드러난 문제들
이들에게 정서지원이 필요하다
안은주 : 부모는 본인의 선택으로 일하러 오고, 본인의 선택으로 미등록 체류자가 되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선택해서 한국에 난 것이 아니에요.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생명이 난 건데, 나라에서 이 생명을 없는 취급을 합니다.
지금 태어나 이 땅에 머물러 있고 자라나는 모든 아이는 우리 아이다, 아이가 이 땅에 머물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등록’은 하도록 하자, 해서 이주아동 기본권리보장법 제안과 맞물려서 활동했어요. 19대 국회가 끝나는 바람에 다뤄지지도 않고 끝나버렸어요.
실태조사를 해보니, 부모가 체류자격이 불안정하니까 아이들도 외부 출입이 자유롭지 않는 등 활동 반경에 제약이 많았어요. 한국에서 태어난 미등록아 동들 대부분이 스스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갖고 있어서, 한국말이 서툰 부모와 소통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구요.
부모 역시 불안정한 상태에서 준비 없이 부모가 되는 경우가 많아, 이에 대한 정서 지원이 필요했어요.
트라우마 커뮤니티를 심리지원하는 미술치료사와의 만남
안은주 국장은 작년에 네팔 지진으로 파괴된 학교 재건을 위해 네팔에 갔다가 국제개발단체인 더프라미스랑 같이 머물게 되었다. 그곳에서 미술심리치료 전문가인 송 대표를 만났다. 송 대표는 더프라미스 정서지원팀의 총괄실무자로 와있었다. 안 국장은 송 대표에게 미등록 이주가정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녀 또한 적극 관심을 표했다.
송정은 : 저는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와 연관된 커뮤니티 지원에 관심이 많아요. 학교 때는 미국 내 선주민인 인디언들과 미술치료를 하기도 했어요. 작년에는 구호단체에서 대학생 봉사단과 결합해서 네팔지진 이후의 아이들의 심리정서지원을 했어요. 네팔에 다녀와서 한국에도 커뮤니티 차원에서의 정서 지원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에서는 일대일 상담심리는 많은데 커뮤니티 회복에 관한 것은 많이 없더라구요. 다녀와서 트라우마 커뮤니티 심리지원 단체인 아트온어스를 만들게 됐어요. 그리고 안은주 국장님의 제안으로 미등록아이들 지원을 시작했어요.
귀환한 아이들을 찾아 필리핀을 찾다
희망센터는 가장 먼저, 단속 혹은 자발적 귀화로, 살다가 갑자기 나간 아이들을 찾아가는 심리지원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먼저 초등 5학년까지 다니다 필리핀으로 간 장미가 필리핀에 잘 정착했는지 소식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장미 가족이 있는 민다나오 지역은 통신이 잘 되지 않았다.
대신, 제니(가명)를 찾아갔다. 제니 역시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6살인 작년 5월, 엄마와 함께 필리핀에 돌아갔다. 희망센터는 제니와의 만남에 송정은 대표와 무지개교실에서 제니의 성장을 지켜봤던 김설이 팀장에게 합류를 부탁했다. 이렇게 두 분을 통해 올해 3월에 미술을 통한 제니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제니와의 만남, 현지 적응이 빠른 아이 
제니의 엄마가 필리핀행을 택한 건 여동생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아이를 둘씩 키우기는 어렵다. 아빠의 급여만으로는 집세를 내고, 보험이 없는 아이들의 비싼 병원비와 교육비를 감당하기 버겁다. 가족은 고민 끝에 아빠만 한국에 남겨두고 필리핀으로 떠났다.
사건이 아이한테 미친 영향을 아이가 스스로 인지해서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송정은 대표는 미술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했다. 5일간 머무면서 부모님도 과정에 함께 했다. 5일은 행동의 변화 등을 끌어내는 치료를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아이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제니는 처음에 필리핀에 가길 싫어했었다. 그러나 필리핀 입국 10개월 만에 봤을 땐 이미 한국말은 거의 까먹고, 따갈로어를 현지인처럼 하며 필리핀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송정은 : 너무 갑작스런 이동이잖아요. 본국 소환되는 다른 친구들도 보면,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요. 그냥 내가 원랜 한국 사람인데 한국에 가본다 하면 좋잖아요. 그런 식으로 가는 건데, 못 돌아오는 줄 모르고 가는 거죠. 설명을 충분히 하지 않고 가니까, 아이들이 그 나라에 가서 받게 되는 문화적 충격은 분명히 있어요. 한국에서 아무리 제한된 지역 안에 있어도 누렸던 거랑 너무 다르거든요.
큰 변화가 있다고 해서 아이들이 모두 흔히 말하는 PTSD로 가진 않아요. 아이들이 잠재적으로 가진 회복 능력이 있는데, 그것만 믿고 아이들을 방치한다고 아이들에게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는 건 아니거든요. 아이들 내적으로는 분명 갈등을 갖고 있는데, 자랄 때 다른 것에 얹혀서 나타날 수 있어요. 아이들에게 충격을 최소화해 주는 방향으로 가는 게 중요해요.
해가 나요, 아니에요, 비가 와요
가장 좋아하지만 가장 멀리 있는 아빠
아빠와 꽃을 보러 가고 싶은 소망이 그림 속에…
필리핀 사람들은 친하지 않은 이에게 부정적인 말을 하는 걸 터부시한다. 엄마도 남들에게 나쁜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았다. 제니도 습관적으로 웃는 얼굴을 그린다. 하지만 그림에는 조금 다른 메시지들이 나타났다. 송 대표는 그림 한 장을 보여줬다. ‘가족이 뭔가를 하고 있는 그림’을 그리라는 미션 하에 제니가 그린 그림이다.
송정은 : 버스를 타고 가는데 아빠가 운전하고 있어요. 본인은 맨 뒤에 타고 있어요. 그 옆에 자기 동생, 엄마, 필리핀에 있는 친척들과 친구들이에요.
하늘엔 처음에 해를 그렸다가 버스를 그리고 나서 ‘아니에요, 비가 와요’ 하면서 해를 지우고 비를 그렸어요. 날씨의 변화는 감정과 연결 되고, 보통 스트레스로도 많이 해석해요.
아이가 느끼는 아빠와 자기와의 물리적 거리가 그림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어요. 아빠랑 나랑 떨어져 있고, 그 사이 공백을 가족과 친척들이 메우고 있어요. 버스 바깥면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아빠랑 본인이랑 우산 쓰고 꽃을 보러 가는 그림인데, 그림 속에서도 버스 장식은 실제가 아니잖아요. 소망은 이렇게 나타나는데, 물리적으로는 떨어져 있고, 그 공허감을 어느 정도는 친척들이 메우고 있어요. (제니가) 원래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거든요.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보여요.
버스 타고 어디 가는 거냐 물었더니, 아빠가 보내는 돈으로 필리핀에 집을 짓고 있거든요. 우리 4명 가족이 모여서 살 수 있는 집에 가고 있다고 얘기 하더라구요.
그림 한 장에 아이의 상황과 심리가 다 들어 있다. 경제적 여유를 바라는 부모의 욕구로 아빠와 떨어져 있다는 것도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다. 엄마와 붙어있어서 약간의 마찰이 있는데, 엄마가 충분히 수용해 주지는 않아서 스트레스 요인으로 나타나고, 아빠에 대한 애착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송정은 대표는 분석했다.
 
웃는 얼굴 지우고, 소리 지르는 얼굴 
언젠가는 다시 이리로 갈 거에요
지금은 여기 물 속에 있는 것 같아요
송 대표는 제니가 그린 또 다른 그림 ‘다리 그림 검사’ 결과를 보여주었다. ‘다리를 그려봐라.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가는 다리다.’라고 했더니, 다리를 본 적 없는 제니는 계단을 그렸다. 그림에는 물 위에 빠진 제니와 하늘로 연결된 계단 위에서 이를 구해주는 아이가 그려져 있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6세에 필리핀으로 귀환한 제니(가명)가 귀환 10개월 후 그린 ‘다리 그림 테스트’
ⓒ아트온어스 제공 (소중한 사진들은 아동과 보호자의 동의하에 촬영 및 게시합니다)
 
송정은 : (오른쪽 상단을 가리키며) 여기가 자기가 먹고 자고 놀던 곳이래요. 거기 있다가 갑자기 뚝 떨어진 거예요. 물 속으로. 딱 봐도, 자기가 먹고 자고 놀던 곳에서 물로 떨어지는 경험은 필리핀으로의 이주 경험이랑 비슷하잖아요.
아이에게 공간을 이동하는 가장 큰 인상을 남긴 경험이 한국에서의 필리핀 이주라고 생각할 수 있고, 그 이주는 바다에 빠지는 것 같은 공포인 거라고 송 대표는 설명했다. 아이는 처음에 물에 빠졌는데도 습관적으로 웃는 얼굴을 그렸다가, 소리 지르는 얼굴로 바꿨다. 위에서 자기를 구하러 오는 아이는 친척인 또래 남자아이라고 했다.
송정은 :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 같아? 했더니 언젠가는 이리로(떨어지기 전에 있던 곳) 갈 것 같은데, 지금은 여기(물 속)에 있는 것 같다고 얘기하더라구요.
아이에게 필리핀은 갑자기 떨어진 물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이에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자원이 있고 아이도 그걸 잘 알고 활용하고 있다. 도움을 요청하면 누군가는 도움을 주러 온다. 아빠를 제일 좋아하지만, 아빠보다 물리적으로 가까이 사는 친척에게 도움을 청한다.
송정은 : 아이에게는 당장 유용가능한 자원들이 있어요. 현재 가족들이 이런 충격적 경험을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 경험이 이렇게 (물에 빠지는 그림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해요.
아이에게는 드러나진 않지만, 잠재적으로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이 될 수 있다며, 아이의 심리가 커서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아이에 대한 지원이 섬세하게 이루어져어야 한다고 안 국장은 덧붙였다.
잘 관계 맺고, 잘 헤어지는 법을 배우는 시간
제니는 한국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을까? 처음에 같이 간 다른 분들이 한국에 가고 싶냐고 물어볼 때, 제니는 안 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송 대표에게 몰래 와서는 한국에 가고 싶다고 했단다. 어딜 제일 가고 싶냐니까 이마트에 가고 싶단다.
송정은 : 아이들에게는 잘 헤어지는 게 중요한 이슈에요. 저랑 짧은 시간이었지만 관계 맺고 잘 헤어지는 방법에 대해 롤모델링을 했길 바래요. 아이들에게 감정이 어떠냐고 물어보는 그런 기회들은 많지 않잖아요. 특히 엄마 아빠가 바쁘고 여유가 없을수록요.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들을 익히는 그런 기회가 됐던 것 같아요.
송 대표는 이주노동으로 인한 갑작스런 이주 뿐 아니라, 우리 삶에서 불가피한 상황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어쩔 수 없다면, 아이에게 가해질 상처를 최대한 줄이고, 건강한 방식으로 상황을 인지시키기 위해 고민하고 교육해야 한다고 했다.
쫓아내야할 불법 체류자인가, 민간외교관으로 성장할 소중한 자원인가
다리 그림에서 아이는 물에 떨어지기 전에 있었던 그 곳으로 언젠가 돌아갈 거라 했다. 제니가 훗날 한국에 다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관광비자로 오거나 고용허가제로 오는 방법 밖에 없다. 한국인으로서가 아니라 외국인으로서 말이다. 미등록 부모 밑에서 태어난 자녀는 이렇게 신분이 대물림된다.
이에 대해 안 국장은 단순히 ‘미등록(불법)체류자 적정 인원’을 맞추기 위해 사람을 추방하는 방식으로 집행되는 정부 정책을 소모적이고 근시안적이라며 비판했다. 이주 아동들은 기본적으로 다국어, 다국적 환경에서 자라서 사고도 열려있고 언어도 3~4개씩 구사한다. 이 아이들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한국에 대한 사랑이 굉장히 강한 편이다. 게다가 자기 뿌리에 대한 역사문화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아이들이 한국에서 대학과정까지 거치게 되면, 국제적인 한류를 실천할 수 있는 민간외교관으로 성장할 수 있다.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근본적 대안으로도 볼 수 있는 열린 시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은주 : 우리가 이주노동자 필요하니까 불러들인 거잖아요. 인간을 쓰고 버리는 식으로 인간을 수단화하는 게 아니라, 큰 그림으로 볼 필요가 있어요. 정말 정말 소중한 자원이고 인재거든요. 지금보다 우리 사고가 오픈되고 기회가 열리면 중요한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장기적으로 봐서 이주아동 기본권리보장법이 통과 되어서 아이들이 국적도 없이 내버려두는 일은 없었으면 해요. 한국은 유엔인권이사회의 이사국입니다. 말로만 말고 제대로 하면 세계인권을 주도하는 나라가 될 수도 있는 기회예요. 이주아동 권리 보장을 위해 희망센터에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정은 선생님이 중요한 역할하고 계시고,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면 좋겠어요.
<다음 ②편에 계속>

인터뷰 취재·정리 | 숲씨 웹진 VOM 편집장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과 생명 아닌 것들의 벗이 되고자 합니다. 악의 평범성, 폭력의 내재화를 끊어내는 일을 나와 내 이웃으로부터 실천하고자 합니다. 평화에 물들고 평화를 물들이는 삶을 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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