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M컬쳐] 9.11 이후 파키스탄 무슬림 이민자들의 상처를 다룬 책 <홈 파이어>를 읽다.

 9.11 이후 파키스탄 무슬림 이민자들의 상처를 다룬 책
<홈 파이어>를 읽다

전 세계를 향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게 된 이유가 되었던 끔찍한 참사였던 9.11 사태는 아랍국가들을 전쟁의 고통 속으로 밀어 넣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은 빈 라덴을 잡겠다는 명목하에 탈레반을 없앤다며 온갖 무기들로 그 땅을 초토화해버렸다. 이후 이라크의 대통령인 후세인을 몰아내며 전쟁을 일으켜 그 땅의 사람들을 종교적으로는 순니와 시아 그리고 민족적으로는 이라크와 쿠르드족으로 분열시키며 수많은 난민들을 만들어내었고, 오일을 위한 잇속을 챙긴 건 다국적 기업들이었다. 이후 아랍의 봄으로 불리던 혁명 이후 아프리카의 이집트나 예맨 등의 나라들이 내전에 휘말려 들었고, 그중 오랜 내전이 지속 되어 슬픔이 끝나지 않는 나라가 시리아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 온 세계가 코로나19로 전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공포의 시대를 살기 전까지 이란을 그다음 전쟁의 타깃으로 삼아 불안을 길어 올리는 미국의 행보를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와 같은 일련의 끔찍한 현실 속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영국 내 파키스탄 출신의 이민자인 소설가 카밀랴 샴지는 <홈 파이어>라는 장편 소설을 썼다.

파키스탄 이민자 가정으로 영국에서 살아가는 여성과 남성의 삶은 어떤 것일까? 흔히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여성억압을 상징하는 히잡을 쓰는 여성들로 피해자화 했다면, 남성들은 서구 유럽을 위협하는 테러리스트이거나 잠재적 테러리스트라는 가해자로서 간주했다. 그래서 이 책은 이미 이민자라는 사회적 위치가 주는 주변화된 삶 속에서 차별을 당함과 동시에 무슬림이라는 종교적 정체성이 불러오는 인종차별적 혐오를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빚어진 사건들이 결국 어떻게 젊은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육체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 보여준다. 그 상처는 백인 주류사회로부터의 소외만이 아니라 종교적으로는 이슬람근본주의자들로부터 강요된 것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용당하는 소모적 도구일 뿐임을 알게 되었을 때 죽음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남동생을 구하기 위해 분투한 여자 자매들은 남동생의 시신을 두고 벌어지는 귀속의 문제로 다시 상처를 입는다. 영국의 시민권자로서 귀속이냐 파키스탄 출신이라는 에스닉적 귀속이냐가 이들을 또 다른 고통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거기엔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는 이민자의 불안한 신분적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내었다. 그래서 귀화는 이민자의 귀속을 절대 보증하지 못하며 내셔널리즘(Nationalism)은 불온한 이민자를 언제나 내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영국 여자와 결혼해서 정치적으로 성공을 거둔 파키스탄 출신의 아버지를 둔 에이먼은 영국인으로 키워졌다. 하지만 남동생이 테러집단에 가입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을 목도 해야 했던 아니카는 파키스탄 이민자 가정의 자녀로서 영국으로 완전히 동화되지 않은 채 자랐다. 그래서 둘은 만났을 때 사랑으로도 좁혀질 수 없는 근원적인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한국여자와 결혼한 나의 남편을 바라본 파키스탄 남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를 떠올려 본다. 완전히 동화가 된 것은 아니지만 영국인으로서 살려는 모습을 통해 파키스탄 출신의 이민자 커뮤니티들과 다르게 살아가는 모습을 비난받아 온 에이먼의 아버지를 통해 나의 남편을 바라본다. 파키스탄 출신의 남편이 사업에만 매달리며 우리의 아이들을 비무슬림으로 키워낸 것에 대해 쑥덕거리는 소리를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은 나 때문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런데 나 또한 일방적으로 우리 아이들의 결혼 상대는 파키스탄 출신은 아니라고 단정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아이들은 주 양육자인 한국인 엄마인 나로부터 한국인이 되는 길로만 성장해왔다. 먼 친척들은 혈육이기만 할 뿐이었고, 우리는 그들에게 언제나 손님 이상은 아니었다. 그러한 생각이 미치자 남편의 외로움이 훅하고 다가왔다. 파키스탄 커뮤니티도 한국사회도 마음 편한 관계가 없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는 이곳에서 일구어낸 사업을 포기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으니 그가 무엇보다 집착하는 관계란 그의 혈육인 자식들뿐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돈을 향한 그의 욕망과 쉬는 날 없는 사업의 수입들은 오로지 자식에게로 그 쓰임이 향하고 있다.

아들이 4월 첫째 주에 군 제대를 했다. 혼혈을 군입대에서 배제해왔던 국방부는 병력의 부족을 이유로 소위 다문화 병사를 뽑아 충원하기로 하고 2011년부터 군에 입대시켰다. 오염된 혈통이라는 혼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묻어두고 출산율을 한껏 높여준 결혼이민자가정들의 자녀들을 국민으로 완전히 통합하듯 국방의 의무를 지우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나의 아들 또한 군대에 가게 되었다. 나의 불안은 여러 가지였다. 아버지가 파키스탄 출신이라 관심병사로 분류되지는 않을지, 보직에서 불이익을 받는 건 아닌지 여러모로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추측하기로 군사기밀을 다루는 일이나 항공 관련 일들에서는 왠지 배제될 것 같았다. 현재 아들은 헌병으로 제대했다. 처음 아들이 군입대를 위해 신병검사를 신청하고 바로 군대를 가고 싶다고 했을 때가 박근혜 정권이었다. 유오성 간첩 조작 사건으로 과거 박정희 시절에 있었던 온갖 간첩 조작 사건이 떠올랐던 나는 이 위험한 정권이 끝나면 가라고 설득했다. 반대세력을 향한 빨갱이로의 호명과 북한의 위협을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삼는 시절에 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그래서 탄핵 이후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후 아들은 군에 갔고, 군의 변화 속에서 아들은 안전하게 내 품으로 돌아왔다. 이슬람을 혐오의 대상으로 틈틈이 불러내며, 이제 간첩보다는 테러리스트라는 위협이 더 먹히는 시대에서 파키스탄 출신의 아버지를 둔 아들의 군입대는 나에게는 너무나 두려운 일이었다. 얼마나 담담하려고 애를 썼으며 무슨 일이든 일어나면 싸우리라는 마음으로 아들을 군대에 보냈는지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나는 아들의 육군 훈련소 입소 날 주차장 펜스에 붙은 군인권센터의 홍보용 전단지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저장했다.

이민자로 살아가게 된 배경에는 식민지 역사가 있다. 특히 영국 같은 유럽의 이민자들은 과거 제국주의자들에게 점령당한 사람들의 이민이 주를 이루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그 이민의 행렬에 합류한 과거의 조선인들이나 한국인들도 일본으로 하와이로 만주로 사할린으로 러시아연방 곳곳으로 남미로 북미로 유럽으로 쿠바로 흩어져 갔다. 지금 그들의 일부는 다시 돌아오는 중이며 본국으로 귀환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민자로 취급되고 있다. 이민자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살해는 국가와 사회 그리고 이웃과 모르는 개인인 타자로부터 자행되어왔다. 그럴 때 반격을 가하면 그들은 불온한 자들이 되고 추방의 대상이 된다. 이민자들이 살던 땅에서 강제이주를 당하는 일은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다행이었다. 제노사이드를 당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우리는 강대국의 약소국을 향한 침략과 테러 앞에서 침묵을 지키거나 동조하는 국가를 보며 두려움에 떤다. 그들은 언제든 위기 시에 국민을 집결시키고 단결을 도모할 희생양으로 쓸 이민자들을 골라내고 있음을 목도 해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난 2018년 예맨 난민 반대였으며, 국민이 우선이라는 말들이었다. 올해 21대 총선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 기독교자유당의 이슬람 혐오 현수막은 그 증거다. 홈파이어 속 이민자인 파키스탄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과 멀어 보이지만 작동되는 인종주의와 이민자의 생존전략을 통해 볼 것은 테러가 아니라 바로 지배세력의 제도적 운영과 이민자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그 삶이다.

 

글 | 정혜실 (이주민방송MW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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