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M컬쳐] “다문화주의자”를 읽고

* 매월 열리는 월례세미나에서 <다문화주의자>라는 소설을 읽고 이주여성분들이 자신들의 글을 공유해주셨습니다.

[다문화주의자]를 읽고

원 옥 금

독서세미나의 세 번째 선정도서인 류광호의 [다문화주의자]를 읽었다. 책이 3부로 나누는데 1부에는 다문화주의를 반대하는 송우석 교수와 한성주 이주활동가가 등장해 내가 관심을 갖고 고민하는 고용허가제와 이주민 수용 여부에 대해 격렬하게 토론해 아주 흥미진진했다. 그러나 2부부터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이주활동가 한성주씨가 실종되고 인종주의자 전민준에게 살해되었다. 내 마음이 극도로 불편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소설속에 그려지는 다문화주의자의 모습이 내가 알고 있는 현실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주인권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나로서는 마치 사람들 앞에서 모함당한 느낌이 들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이주활동가들이 이주민의 인권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주활동가들의 목적은 책에서 묘사한 것처럼 한국사회에서 이주민을 세력화하여 헤게모니를 장악해서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다. 한국사회의 필요에 따라 유입된 이주민이 처한 열악한 현실을 개선하고 보편적인 인권을 보장함으로써 한국사회를 보다 건강한 사회로 만들기 위한 활동이다. 그런데 작품속에서 작가는 이주활동가인 한성주씨를 위험하고 음모를 꾸미며 도덕적 타락자, 위선적인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한성주가 대표로 있던 더사만(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든 사람들)의 운영자금 중 일부가 화성의 한 공장에서 불법 체류자를 다수 고용했던 대표의 계좌로부터 나왔다는 것이다’ (p.171), ‘불법체류 채용 공장 대표로부터 활동 자금을 받는다는 것. 이주민 수용 확대 정책 도입되더라도 정권교체나 언론 변화에 따라 철회 역진방지책으로 이주민 세력 결집해 영주권 이상 권리를 얻어내는 방향으로 나가야하고 이를 위해 연대해야 할 세력은 진보정당뿐만 아니라 전경련 같은 보수 기득권 집단, 종교를 기반으로 한 이주노동자 인권 단체 등이 있으며 교묘하고 능란하게 이들 각 집단의 이해관계와 욕구의 기반해 접근해야 함.’, ‘전체 인구중 10% 이상을 이주민으로 채우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다. 그렇게 되면 그 이후부터는 더욱 공격적으로 정당정치 안으로 들어가 목소리를 내고 이익을 취할 수 있을 거라 한다. 물론 그 말은 이주민 대다수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주어지게 되는 것을 전제로 한 얘기다.’ (p.174).

반면에 반다문화주의자인 송우석은 과격한 폭력을 사용하는 전민준과 같은 인종주의자와 구분되는 합리적인 인물로 그리고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 다문화주의자와 반다문화주의자에 대한 선입견을 강요하고 있다.

다른 독자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참 궁금하다. 나는 이주민을 대표하는 한성주씨를 모함하면서 인종주의자에게 죽임을 당하도록 하는 이 책은 과연 좋은 의도, 즉 한국 사회를 좋게 만들기 위한 쓴 책이 맞는지 의문스럽다. 독자들이 이 책을 보면 분명히 좁게는 이주활동가에 대한 편견, 넓게는 이주민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될 것이고 경계와 두려움까지 갖게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마디로 이주민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그려놓고 일종의 경고를 던지는 책. 선주민에게는 ‘이주민이 위험한 존재다’라는 경고와 함께 이주활동가에게는 다문화주의를 주장하다 언제인가 처참한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것. 아주 위험하고 무서운 소설이다.


다문화주의자 소감

다키 유카리

이 책에는 현대인이 꼭 고민해야 할 중요한 문제들이 보인다. 직장 생활의 어려움, 연애에 대한 고민, 결혼, 출산 등 인생에 관한 문제와 살인 사건까지 어쩌면 어느 분야의 책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다. 그래서 다문화주의자를 넘어 심리학적인 책이라고 느꼈다.

우선 결혼에 대한 인식 변화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는 나이가 좀 있는 사람으로서 가정의 중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살아왔고, 결혼이 바로 고생이고 불행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 한다. 그러나 결혼하고 아이를 키운 사회 환경과 경제적인 무게가 커지면서 결혼과 출산이 아주 어려운 문제가 되어버렸다. 결혼해서 아이를 가짐으로써 얻은 행복과 부모가 되어서 자기 스스로가 성장도 하고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기쁨이 어느 세 가치가 떨어져 가는 거 같다.
인구 감소 문제가 다문화 사회와 외국인에 대한 여러 문제까지 연결될 때, 우선 사회 환경과 교육제도를 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에서 교육과 직업에 대한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전에 일본에서 살 때는 학력과 직업에 대한 차별은 느끼지 못했다. 자기가 선택한 것을 얼마나 성실하게 하고 살고 있는가의 가치를 보았다.

자기의 이익을 우선으로 살지 아니면 타인을 위해 살지, 어떤 것이 인간다운 삶인가에 대한 고민에 공감했다. 나는 이주여성을 위해 다문화 관련 활동을 해왔다. 그 일은 개인적으로 무슨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동생 같은 이주여성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해왔고, 동생들이 웃은 얼굴이 보면 힘이 났다. 그래서 종훈 기자가 말한 “순진한 사람이 더 많아질 필요가 있어”라는 말에 공감한다. 그러나 무슨 문제로 인해 오해를 받거나 억울함을 느낄 때 누구를 위해 활동을 하는지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개인은 전체를 위해, 전체는 개인을 위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는데, 박상동 목사가 말하는 것처럼 결국 사랑이 있는가가 문제인 것 같다. 나는 외국인 친구들을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일본 사람이라는 이름표를 떼고 싶을 때가 있다. 따라서 사람을 사람답게 보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심승우 가해자가 폭력적인 아버지와 사고, 경제적 불안으로 돈 때문에 살인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고 밝게 사는 사람이 많다. 이 책에 살인 사건이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타인의 상처를 무시할 수 있을까?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왜냐 하면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우선 자기를 보호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인의 마음을 공감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서로 같은 경험을 가진다면 쉽게 느끼고 공감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에게 필요 한 것은 서로의 마음을 공감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더 많이 배웠거나 더 많이 가졌다고 상대를 비판하기 바쁜 현대이고 코로나로 인한 재난의 시대이지만 마음의 변화가 있으면 좋겠다.

나에게 마음에 남는 말은 박상동 목사가 한 것으로 “사랑이란 다른 누군가를 향할 때만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있는 감정이다.“라는 부분이다. 결국 타인을 위해 행동하면 사랑이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나도 활동을 하면서 많이 느끼던 것이다. 그 돌아오는 사랑의 힘이 나의 활동의 원동력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소개한 안나 카레리나의 책 중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 하다.”는 이 굴을 보고 나의 가족은 어떨까 생각했다. 서로 닮았다고 웃고 있는지 아니면 불만이 가득한지 늘 보고 있으려고 한다. 가정뿐만 아니라 단체에게도 통하는 말 같다.

마지막으로 노동력이 필요하다면 노동 환경 조성과 노동자의 기본 권리 보장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외국인 고용 환경에 대한 심사, 단속 등 관련해서 정부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


<다문화주의자를 읽고>

나하늘

“다문화주의자” 책을 읽으면서 첫 생각은 내용과 제목이 참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일단 저자는 서로 상반되는 의견을 논쟁하는 형식으로 풀어 자세히 정리한 부분을 보면 다문화에 대해서 많이 공부했다는 점은 인정할만하다. 그리고 논쟁만으로 볼 때 둘 중의 누구에게 더 치우치는 감정은 들지 않았다.

나는 단체와 활동에 대한 부분을 잘 몰라서 단순히 독자의 입장으로 봤을 때 다문화주의자라는 주제를 더욱 심도 있는 사회문제로 다룰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보다는 요즘 한국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한 접근이 더 많았다. 예를 들어 주인공 박정훈은 기자인데 자신의 소신을 버리고 윗사람의 지시대로 기사를 써야 하는 현실을 이야기하거나, 여자 친구와의 결혼에 관해 관심을 보이지 않고 헤어지는 모습을 묘사한 것처럼 노동환경, 결혼 문제, 출산 기피, 자녀 양육, 난민 지원 등 말이다. 그래서 송유석과 한성주의 논쟁을 제외하고는 이 책의 대부분을 한국사회의 문제에 대한 작가의 의식을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책 내용 중에 박정훈이 조카들에 대해 하는 말로 “사랑받고 자란 아이들은 보통 다른 사람들에게 개방적이다.”라고 말한 부분에서는 정말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다. 반면 살인자 심승우는 가난하고 아버지의 폭력으로 시달리고 대학을 중도에 관두고 시작한 일터에서 조선족 출신 외국인노동자와 큰 다툼을 겪으면서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극심한 증오심을 가지게 됐고, 같은 학교 동 연배에 혼혈인데 왜 한성주와 자신이 이렇게 다른지 비교하며 증오를 키워가는 설정은 그가 왜 이천만 원에 한성주를 죽이는 살인자가 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애쓰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살인을 사주한 강한 5인조의 리더 전민준을 극좌에서 극우를 넘나드는 극단주의자로 묘사하고 있지만, 전도유망한 엘리트가 왜 극단주의자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책 속의 한 구절은 너무 마음에 와닿았다.

나는 이 소설을 “다문화주의자”가 아닌 “한국사회문제”로 보았다. 하지만 내가 이주노동자나 결혼이주여성을 위해 활동을 해본 적이 없어 다른 선배님들의 의견을 듣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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