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M커버스토리]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의 체류권을 인정한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의 의미 – 이탁건 변호사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의 체류권을 인정한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의 의미

이주민의 ‘머무를 권리’
사람이 계속 한 곳에 “머무를 권리”는 어떻게 부여되는가? 미국의 사회학자 Joseph Carens는 자신의 저서 “Immigrants and the Right to Stay”에서 직관적인 사고실험을 제안한다. 유아기에 영국으로 이주하여 미등록 상태로 계속 거주한 80세의 노인은 추방되어야 할까?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반대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영국에서만 살아온 노인을 이제 와서 이민법 위반으로 쫒아낸다는 것은 너무 가혹하기 때문이다. 이 노인은 장기간의 체류로 인해 ‘미등록 체류 사실’이 더 이상 문제되지 않는, ‘사회적 성원권’(social membership)이 인정되는 시점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이 시점은 언제일까? 유아기부터 계속 거주하여 60세가 되었을 때? 40세가 되었을 때? 저자는 ‘다수의 통념’을 근거로, 5년-10년 사이의 기간 동안 체류하였으면 ‘사회적 성원권’이 형성되고, 특히 유아기에 입국하여 정체성이 형성되는 청소년기에 계속 체류한 이주민에게는 체류할 권리를 인정할 필요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다른 법학자들과 사회학자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체류권’을 구성하기 위한 논증을 시도해 왔다. 이들은 국가가 미등록 체류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추방하지 않았다는 사실, 공교육 등 국가의 강제적인 법, 제도 및 기관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 사실, 송환되면 상당한 피해를 입을 것이 명백한 사실 등에서 미등록 이주민의 체류할 권리를 도출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민법을 위반하였더라도 어느 시점이 지나면 법 위반 사실을 문제 삼으면 안된다는 주장은 한편으로는 급진적이다. 어떠한 국가도 출입국정책 – 외국인을 받고 내쫓는 국가행위 – 에 대한 국가의 권능을 포기하지 않고, ‘불법’은 이에 상응하는 처벌이 필요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면제’는 보편적이다. 많은 국가들은 정책적 필요에 따라 일회, 또는 수회의 대대적인 정규화(regularization) 프로그램을 통해 미등록 이주민들에게 별도 심사 없이 체류자격을 부여하였다. 다수의 국가들은 장기간 체류한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심사를 통해 체류자격을 부여한다. 한국의 엄격한 출입국정책도 때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예외를 허용한다. 최근 화재현장에서 헌신적으로 이웃을 도왔던 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체류자격을 부여 받았고, 현재 법무부가 시행중인 한시적인 자진출국 제도는 미등록 체류자에게 (출국만 한다면) 어떠한 불이익도 주지 않을 것임을 공언하고 있다.

가뭄에 콩나듯이긴 하지만, 법원도 간혹 외국인의 편에서 서기도 한다. 출입국 처분에 대한 최초의 행정소송이었던 1971년의 강제퇴거명령 취소소송에서, 대법원은 반공법 위반으로 형사처벌되었다는 이유로 추방될 위기에 처한 재한화교의 손을 들어주며 한국에서 태어나 계속 거주한 사실, 한국 국적 배우자가 있는 사실, “평소 사상도 반공적이어서 몸에 반공항아라는 문신까지 새”긴 사실 등을 고려하였다(71누202). 다른 판결들에서는 “오랜 기간 한국에 거주하면서 쌓아 온 일체의 기득권과 […] 가족과의 결합을 포함한 행복추구권”, “내국인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구축”한 점 등이 고려되기도 하였다. 2018년 청주지방법원은 한국에서 태어나 18세로 성장한 미등록 상태의 외국 국적 원고에 대한 강제퇴거명령을 취소하며, “대한민국에서 출생하여 현재까지 사실상 오직 대한민국만을 그 지역적 사회적 터전으로 삼아 살아온 사람을 무작정 다른 나라로 나가라고 내쫓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고 생존권을 보장하여야 할 문명국가의 헌법정신에 어긋난다”고 판시하였다 (2017구합2276).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국가인권위원회 결정(19진정0703100)도 위 판결과 같은 맥락에서, 한국에서 장기간 체류한 미등록 이주아동이 체류자격을 취득할 경로가 없는 현행 법•제도가 인권침해적이라고 판단하였다. 피해자들은 한국에서 출생하여 거의 평생을 한국에서 살았다. 본국과는 아무런 교류가 없고 본국어를 아예 구사하지 못하였으며, 반대로 한국에서 공교육을 이수하고 성장하며 한국사회의 자장 하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유대관계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법무부의 내부 지침에 따라 초중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강제퇴거가 유예되었으나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강제퇴거될 운명에 처한 아동들이었다. 인권위 결정은 이들이 처한 현실은 인권침해라고 보았다. 결정의 주문은 다음과 같다.

1. 피진정인에게, 피해자들과 같은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무조건적인 강제퇴거를 중단하되, 이들이 국내에 지속적인 체류를 원할 시 직접 체류자격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아동 최상의 이익을 고려한 구체적이고 공개적인 심사기준에 따라 적정한 체류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할 것을 권고한다.

2. 피진정인에게, 해당 제도 마련 이전에라도 피해자들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아동 최상의 이익을 고려하여 현행 법·제도 하에서 가용한 모든 절차를 활용하여 체류자격 부여 여부를 적극적으로 심사하되,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강제퇴거에 대한 두려움을 최소화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다.

 

국제인권기구와 지역인권기구의 판단
국가인권위원회는 결정의 법적 근거 중 하나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자유권규약)을 인용하였다. 자유권규약 제12조 제4항은 ‘본국에 입국할 권리’를 규정하고 있는데,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이 조항을 확대해석하여 “어느 국가와의 특별한 관계 또는 권리로 인해 일반적인 외국인으로 볼 수 없는 사람”까지 이 조항에 따라 그 국가에 입국할 권리가 보호될 여지가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자유권규약위원회 일반논평 제27호). 동 규약 제23조 제1항은 가족생활에 대한 권리를 규정하고 있는데, 강제퇴거되는 외국인이 이 조항에 따라 보호를 받을 수도 있다 (자유권규약위원회 일반논평 제15호). 캐나다에서 유년기부터 성년까지 계속 거주해 온 소말리아 국적 청구인에 대한 캐나다의 퇴거명령에 대해,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소말리아에서 태어났거나 거주하지 않았다는 사실, 캐나다에서 4세부터 거주하였다는 사실, 어머니와 형제가 캐나다에서 거주하고 있는 사실, 소말리아에 친인척이 없는 사실 등을 고려하여 청구인에 대한 추방은 자유권규약 제12조 제1항, 제23조 제1항 등의 위반이라고 결정 내렸다 (Warsame v. Canada, Communication No. 1959/2010).

2017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와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 위원회가 채택한 공동 일반논평도 인권위가 결정문에서 인용하였다. 공동논평은 이주아동과 그 가족의 강제추방이 가족 및 사생활에 대한 권리의 자의적 간섭에 해당되는 경우에도 보호되어야 하며, 특히 목적국에서 출생하거나 장기간 거주한 경우, 또는 부모의 출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동의 최선의 이익에 위배되는 경우에 자녀와 함께 비정규적 상황에서 거주하는 이주민들에게 정규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경로를 제공할 것을 각국에 권고하였다 (CMW/C/GC/4-CRC/C/GC/23).

유럽인권재판소는 일련의 결정을 통해 가족생활에 대한 권리에 터잡아 강제퇴거 명령의 위법성을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가족생활에 대한 권리가 문제되지 않는 사례에서도 ‘사생활에 대한 권리’의 관점으로 장기체류한 외국인의 ‘체류할 권리’를 간접적으로 인정하기도 하였다. 즉, (사생활에 대한 권리를 규정하고 있는) “유럽인권협약 제8조는 외부세계와 다른 사람과 관계를 설정하고 발전할 권리를 보호하며, 이는 개인의 사회적 정체성의 요소들을 포함할 수 있는 개념이므로, 정주화된 외국인과 그가 거주하고 있는 공동체 간의 사회적 관계의 총합도 협약 제8조가 규정하고 있는 ‘사생활’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Üner v. Netherlands ECHR 18 Oct 2006).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의 의미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의 의미를 주요한 쟁점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장기간 ‘불법체류’한 사실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가?

누구도 자신이 출생한 사실, 또는 유아기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질 수는 없다. 그런데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들에게 “장기간 불법체류하였으니 강제퇴거되어야 한다”라는 말하는 현행 정책의 논리구조를 따라가 보면, 결국은 유아기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요구에 다름 아니다. 미국 대법원은 1980년대 초 미등록 체류 사실을 이유로 이주아동의 교육권을 제한하는 정부 정책에 대해, 이는 개인은 자신의 행위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근대법의 근본적인 정의 관념에 반하고(자기책임원칙),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미등록 상태에서의) 출생 사실, 또는 유년기의 입국 사실 자체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불합리한 결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어 지극히 부당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Plyer v. Doe, 457 U.S. 202 (1982)). 국가인권위원회도 같은 맥락에서 “피해자들이 체류자격 없이 출생하고 성장한 배경과 사정은 각기 다를 것이나, 피해자들 모두 자신의 체류자격 부존재의 의미와 그에 따른 효과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연령이 아니었으므로, 미등록의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지 않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라고 판단하였다.

-국내에서 출생하였다는 이유로 배려가 필요한가?

속지주의를 택하고 있지 않은 한국은 국내 출생 사실만으로 어떠한 권리가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인권위 결정에서 고려된 피해자들은 모두 국내에서 출생하였으나, 이는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출생 여부와 무관하게, 유아기부터 한국에서 장기간 체류하며 공교육을 이수하고 정체성을 형성하였다는 사실이 핵심이다. 인권위는 “유아기부터 국내에 체류하면서 대한민국의 초·중·고등학교 교과과정을 이수하며 성장했고, 대한민국의 언어, 풍습, 문화, 생활환경 등에서 정체성을 형성해 왔으며, 대한민국에서 사회적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정을 주요하게 고려하였다.

-제도를 악용할 부모에 대한 우려는?

인권위 결정문에 따르면, 법무부는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체류자격을 부여하게 되면 부모가 자녀를 이용하여 체류하는 사례가 더욱 증가함으로써 국경관리 및 체류질서의 근간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였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인권위는 “현실화되지 않은 가정적 우려이기 때문에 이를 이유로 피해자들의 기본적 인권을 소홀히 할 수 없고, 그러한 우려는 출입국행정이나 법령 보완 등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고 답하였다. 타 국가 사례를 보더라도 미등록 체류자의 증가는 엄격한 이주정책의 부산물에 가깝고, 다수의 이주민들이 체류자격을 얻기 위해 18년 동안 미등록 상태를 감수하리라는 법무부의 주장은 선뜻 공감하기 힘들다. 또한 인권위에서 정확하게 지적한대로, 이주아동의 권리 및 인권은 부모의 체류자격 (또는 추단된 내심의 의사)과 분리해서 보장할 필요가 있으며, 후자를 이유로 전자를 제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가며: 지금 바로, ‘머무를 권리’를 위해
인권위는 법무부에 대해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무조건적인 강제퇴거를 중단하고, 이들이 국내에 지속적인 체류를 원할 시 직접 체류자격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할 것을 권고하였다 (주문 1항). 장기적으로 이주아동들의 체류자격 부여를 위한 심사제도를 만들라는 요청이다. 인권위는 또한 해당 제도 마련 이전에라도 피해자들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아동 최상의 이익을 고려하여 현행 법·제도 하에서 가용한 모든 절차를 활용하여 체류자격 부여 여부를 적극적으로 심사하되,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강제퇴거에 대한 두려움을 최소화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였다 (주문 2항). 미등록 이주아동들의 급박한 현실을 고려한 요청으로 해석된다. 이들은 지금도 한국에서 성장하고 있다. 이들의 숫자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수천명은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한국에서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공부하고 있지만, 한국에서의 미래는 섣불리 꿈꿀 수 없다. 법무부가 “사회적 합의”를 앞세우며 하루하루 늦장을 부릴수록, 이들이 한국에서 체류할 수 있는 날도 하루하루 줄어들고 있다. 이번에는 법무부가 인권위의 급박한 요청을 받아들여, 빠른 결정을 하길 희망한다.

 

 

글 | 이탁건 변호사 (재단법인 동천)
이탁건 변호사는 이주민, 난민 관련 활동에 주력하고 있으며, 아시아태평양난민권리네트워크 법률지원워킹그룹 의장,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난민이주외국인TF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사진 | Darwish Musab/무열 (이주민방송MW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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