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M커버스토리] 이주 인권 운동의 전환점이 될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이주 인권 운동의 전환점이 될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이주민이라고 불리는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은 체류자격이나 사회적 범주에 따라 결혼이민자, 난민, 동포, 이주노동자, 유학생 등으로 나뉜다. 이 범주가 흔히 문제의 이주 정책을 논할 때 거론되는 대상이다. 하지만 여기에 빠진 이주민들은 상층계급일 수 있는 서구 유럽인 출신의 국제결혼가정, 투자비자 이주민, 정부 파견 외교관련 이주민, 스포츠 선수 이주민, 전문직 이주민 등으로 항상 우대 조치를 받는 대상들이다. 이러한 정책의 우대 조치는 사회적 메시지가 되어 차별적으로 이주민을 다르게 대하는 것을 마치 자연스럽고 타당한 일인 양 여기게 만든다. 그것이 오늘 이주 정책으로 인한 제도적 인종차별이 어떻게 일상의 차별로 이어지는 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그리고 그 단적인 모습 속에서 더 세밀하게 살펴 이주민 개개인이 인종, 성별, 성적지향, 출신국, 출신지역, 피부색, 학력, 직업 등에 따라 겪는 차별의 경험이 다르고, 복합적이고, 교차적임을 보아야 한다.

이주민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이주민들이 본격적으로 한국사회에 유입되기 시작한 90년대 말부터 지속되어 왔지만, 근본적으로 차별을 금지할 법이 없는 상태로 개별 사안들 각각이 투쟁의 힘을 쏟아야 하는 사안들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성명서 발표, 보도자료 배포, 기자회견, 집회 등을 이어갔던 이주민 당사자들과 활동가들은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개별 싸움에서 이긴다고 해도 전체 이주민의 인권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현장에서 선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한 인식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다문화교육, 문화다양성 교육, 인권 교육, 이주 이해 교육 등 다양하게 시도해 보지만 여전히 더디고 결정적일 때는 ‘국민이 우선이다!’라는 구호 속에 절망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주민에게 더더욱 필요할 수 밖에 없고, 2018년 이미 인종차별철폐위원회로부터 정부가 권고 받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필요를 논의하고자 한다.

 

– 포괄적 차별금지법으로 반복되는 고용상의 차별과 임금차별을 끊어내는 변화를!

이주노동자가 한국사회에 유입된 90년대 말 이주노동자정책은 ‘산업 연수제’라고 하는 차별적인 제도였다. 한국사회의 부족한 노동력을 확보하고자 도입한 산업 연수제는 한국인 노동자와 다른 임금체계를 세우기 위해 만든 제도였다. 한국인 임금의 40% 수준에서 노동자를 일을 시킴으로써 생산비용 절감과 노동력 확보한 사업주 또는 기업인들이 이익을 취하는 노동 착취의 전형적인 제도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임금체불을 통해 떼어먹기 일쑤였으며, 직장내 폭행과 폭언으로 인해 고통을 참다 못해 사업장을 탈출하는 일이 이주노동자 사이에서 비일비재 했다. 당시 이주노동자의 미등록체류자는 전체의 절반을 넘는 70% 이상 또는 80%이상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이탈의 근본적인 원인이 산업연수제의 본질적인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안 이주 인권 활동가들과 시민사회 그리고 이주민 당사자들이 2004년 그 추운 명동성당에서 노숙을 불사하며 집회와 시위를 이어가지 않았더라면 개선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그 대안으로 ‘고용허가제’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 그 제도 또한 수명을 다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과거의 산업 연수제에서 달라진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임금의 차별이나 고용상의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고, 최저임금을 위반하도록 각 종 예외들을 사업주에게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지난 산업연수제가 대놓고 임금차별이라면 지금의 고용허가제는 각종 편법을 통한 임금 차별이 가능하도록 사업주에게 유리한 구조를 계속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임금 차별의 행태는 근로시간 연장을 근로 시간에 포함하지 않는 방식, 급여에서 숙식비를 과도하게 제하는 것, 휴가와 휴게 시간의 예외 조항을 법적으로 만들어서 수당을 주지 않는 행위 등 이 전혀 나아지지 않는 임금 차별의 유형이다.

그런가 하면 고용상의 차별은 제도적 차이를 통해 차별하는 구조적 차별부터 회사내 규정에 의해서 하는 차별까지 다양하다. 기본적으로는 5인이하 사업장의 4대보험 의무 가입의 예외가 이주노동자의 건강이나 산재 발생시 불리하게 작동하는 지점이다. 그리고 직장내 승진에서 4년 10개월이라는 근무조건은 예외적인 대상으로 만들며, 단순노동이라는 이유로 이들의 경력은 무시되기 일쑤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시민적 권리 확보를 방해하기 위해 5년이상의 체류 연장을 막기 위한 고용 기간의 연속성을 끊어 4년 10개월을 상한으로 두고 다시 고용되더라도 다시 4년 10개월을 일하는 방식으로 제한하였다. 이제는 E-9이라는 비자에서 다른 비자로 변경할 수 없도록 제한까지 두고 있다. 이것은 유학생이 대학이든 대학원이든 마치고 취업 할 수 있는 기간과 취업 후 비자 변경이 가능하도록 허용되고 있는 것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그리고 사업장 변경도 쉽지 않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이 3개월 이내라고 볼 때 상당히 차별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이러한 이주노동자의 상황을 좀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물론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직접적으로 이주노동자에 관한 제도를 바꾸어 당장 평등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현행법의 개정을 필요로 할 때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위에 열거한 인종, 출신국, 출신지역, 피부색 등을 이유로 하는 차별들을 금지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되며, 차별사유에서 고용상의 차별을 이주노동자 고용제도에 반영하도록 할 수 있다. 그리고 피해자에 대한 구제조치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게 하는 기본법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사회의 시민 인식과 사업주와 기업인들에게 사고의 전환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 포괄적 차별금지법으로 가족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로!

국제결혼을 이야기 할 때 한국사회는 다문화와 글로벌이라는 용어적 범주로 아시아 또는 아프리카 출신의 결혼이민자와 서구 유럽국가 출신의 결혼이민자를 구분해서 말한다. 그것은 일종의 빈국과 부국의 가름이자, 인종적 위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앞선 시대에는 국제결혼 자체가 부끄러운 말이자, 성차별적인 괴롭힘의 용어이기도 했다. 소위 다문화가족이라는 가족적 범주가 법적 제도적으로 만들어지기 전 국제결혼은 한국여성이 미군과 결혼하는 것을 일컫는 것이었으며, 이는 직업의 신분과 상관없이 외국인 남자와 성적관계를 맺은 한국여성들의 섹슈얼리티를 문제 삼는 차별적 의미가 담긴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결혼이라는 형태가 결혼이민자여성을 국가가 주도적으로 한국 남성에게 연결하는 주체가 되자 언어적 순화를 위해 이러한 결혼을 통해 형성된 가족의 형태를 다문화가족이라고 명명하고 범주화 하기에 이르며, 각종 지원책을 쏟아내었다. 그것이 다문화가족지원법이고 한국건강가정진흥원 산하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설립이 200개가 넘는 현실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가족의 다양성을 반영하기 보다는 가족의 다름을 차이로 차별적인 구조를 만드는데 일조하는 법이 된다. 다문화가족의 다양성은 사라지고 가족 구성의 전제가 한국인 배우자가 반드시 포함 되어야 하는 혈통주의 국가주의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데다가, 난민이나, 이주노동자, 동포, 유학생 등을 배제함으로써 다문화가족을 편협한 범주에 가두어 두고 다른 가족의 다양성은 무시하는 제도가 된 것이다. 거기에 이혼이나 사별의 이유로 가족이 더 이상 소위 정상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 자녀가 없거나 국적이 없는 결혼이주민들은 체류자격지위 상실에 따른 추방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제도적 인종차별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사유 중 직접 차별의 문제인 분리, 구별, 제한, 배제, 거부,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그리고 다문화가족이나 그 구성원인 개인들 당사자에 대한 앞서 설명한 직접 차별과 함께 광고라는 매체를 통한 간접 차별도 이에 해당한다. 심지어 예를 들어 최근 공익광고협의회가 만든 광고에서 우리 사회가 다양한 이주민들과 살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오히려 다문화라는 범주 안에 특정 피부색과 외모의 두드러진 모습을 가진 이주민만 출연시키는 행위는 이주민의 가장 큰 비율이 중국이나, 일본, 베트남, 몽골 등 실상은 그 모습이 한국인과 잘 구별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은폐한다. 그래서 다문화의 개념을 특정 사람들을 대상화 하여 포함하는 것으로 협소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비판을 금할 길이 없다. 이것은 그래서 서구 유럽 백인을 제외한 사람들만 마치 다문화인이다 라는 고정관념을 재생산하고 있다. 이것이 광고행위에 있어서 간접차별임을 인식하지 못한 채 만들어지는 것이 한국사회의 인식 수준이라면, 사실은 이것이 왜 차별인가를 모르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결국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어떤 면에서 무엇이 차별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차별인지 특히 왜 인종차별로 볼 수 밖에 없는 요소들은 무엇인지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인종차별을 넘어 다문화라는 개념이 확장되면 한국사회내 한부모, 비혼 독신, 미혼 한부모 외 다양한 가족들을 어떻게 다양성으로 바라 볼 것인지가 확장되어갈 것이다. 그렇게 다양한 가족 구성원들 속의 개개인은 범주화된 집단으로 매몰되거나 그 범주화로 인한 차별을 겪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전북 익산 시장의 막말로 인해 그 차별을 실감한 결혼이주여성들이 분노하여 모여 싸웠던 일련의 과정들을 돌아보면, 결국 그래서 절실한 구호는 “차별금법지을 제정하라”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인 것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으로 국민을 넘어선 연대와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연대로!

국적을 취득한 소위 귀화자인 이주민들과 이 땅에 영구히 머물 수 있는 권리를 취득한 영주권자인 이주민들 그리고 합법적 체류자들인 이주민들은 미등록 이주민과 난민의 문제는 좀 다르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의 코로나 19 사태를 통해 깨닫는 것은 우리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재난이 닥쳐왔을 때 선주민도 이주민도 그 누구도 비껴 가지 않는다. 이 재난에서 지원을 선별적으로 할 경우 결국은 그러한 차별적 지원으로 인해 사회가 더 위험해 질 수 있음을 한국사회는 코로나 19사태로 분명하게 깨달았으며 그것이 국가인권위 조사에서 얻는 결과처럼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80%가 넘는 사람들이 찬성하는 이유다.

그런데 같은 이주민이지만 체류 자격에 따라 구별하며 “나는 저들과 다르다”는 위치에서 안심할 수 없다. 국민이 우선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귀화자인 이주민을 평등하게 대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다시 종교가 이슬람이어서 한국에서 같이 살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면서 테러방지법을 만드는 걸 지지했고,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슬람 아웃을 외치며 공약으로 내세우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난민 반대와 사유나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반대 사유로 이슬람을 혐오할 자유를 금지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고 있다.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특정 종교를 이유로 누군가를 차별하는 것은 엄연히 헌법에 위배된다. 이것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없어도 문제인 것이다.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와서 갖은 박해를 견디고 살아남아 다양한 분파를 이루며 하나의 커다란 종교 집단이 된 것은 종교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교회가 살아남기 위해 저지른 수많은 잘못과 악행이 또 많은 기록들을 통해 발견되고 있다. 그것은 믿는 자들의 불완전함 때문일 것이다. 기독교뿐 만 아니라 모든 종교가 그렇다. 그렇기에 이주 인권 운동 진영의 4대 종단 종교인들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앞장 서는 이유이다.

한편 어떤 이들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에서 성소수자들에게 해당되는 성별정체성이나 성적 지향과 같은 부분만 빠져도 동의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주민들 사이에는 이미 성소수자들이 있음을 말이다. 이주노동자뿐 아니라 난민의 사유의 박해 부분에서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난민인정을 받았던 난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차별 사유에서 성소수자 부분을 빼고 갈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장애 부분도 빼고 갈 수 없다. 산업재해를 통해 중도 장애인이 되는 이주노동자들이 어떠한 불이익과 차별 속에서 이 땅을 떠나고 있는 지 알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국사회의 차별문제를 해결하려는 한국사회의 시민들과 이주민들이 연대하여 함께 싸워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평등한 사회로 변화를!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누구보다 혜택들을 입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이주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주민은 홀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다. 선주민과 연애하거나, 결혼했거나, 동거 중이거나, 사실혼이거나, 동료이거나 친구이며, 이웃이자 공동체의 일원이다. 우리는 국민이라는 민족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틀에 갇힌 사고로는 한국사회에서 공동체를 만들기 어려운 현실에 직면해 있음을 정확히 안다. 공동체란 단일한 집단이나 개인의 모임이 아니다. 공동체는 가치를 지향하는 모임이다. 그 가치는 바로 ‘평등’을 지향하는 가치이다. 이는 민주주의적인 공동체를 만들고 삶의 질을 향상 시키고, 서로에 대한 연대와 협력으로 함께 공존하는 사회를 만드는 밑바탕이 되어야 할 이념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바로 이러한 평등을 지향 하는 사회로 가는 길에 필요한 안내 책자이다. 이는 또한 우리에게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지침서이다. 세상은 연결되어 있고, 한 나라의 국민으로만 살기에는 세상은 넓고 경계를 무한반복 넘어야 하는 온라인 시대를 살아가면서 동시에 오프라인의 장벽을 넘나들어야 하는 시대의 과제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나와 동등하게 바라보지 않고는 함께 살아갈 수가 없다. 다른 나라에서 재난이 발생하면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듯이, 우리 안에 사회적 소수자들을 외면하고 공동체 안의 약자들을 배제하고 소외시키며 차별해서는 우리도 안전한 삶을 살아갈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누구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 받아야 할 이유가 없듯이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출신국이 다르다는 이유로,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세상은 연결되어 있고, 사람도 연결되어 있으며, 문화도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이주 인권 운동도 전환점을 맞이 할 것이다. 기본법으로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내지 평등법을 기반으로 이주 정책을 바꾸어 내고 관련 법들을 바꾸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주민 당사자들과 가족 그리고 동료와 친구, 이웃과 공동체들은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글 | 정혜실 (이주민방송MW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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