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M컬쳐] 줌머족에 대하여

줌머족에 대하여

미얀마와 로힝야족의 갈등만 있는 줄 알았다. 2020년 난민영화제 다큐멘터리 <숨>을 보기 전까지 그러했다. 과거에 영국이 아시아에서 식민지를 원활히 통치하려고 시행했던 분할통치(divide and rule)의 수법은 ‘줌머족’에게서도 이뤄지고 있었다.

다큐 <숨>은 제국주의 식민통치가 끝나고, 소수부족은 독립했지만, 민족과 종교 그리고 언어 차이로 인한 학살과 차별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음을 드러냈다. 영국에서 미얀마로 그리고 방글라데시로 나라 이름만 바뀌었을 뿐, 인종 차별과 종교 박해는 2020년 현재도 진행형임을 알렸다.

또한, 말한다. 다큐 <숨>은 1970년대에 끝났어야 할 민족 갈등, 아니 아예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인권 침해의 현주소를 자세히 보여준다. 우리 주변에 분명히 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난민의 삶을 말했다. <숨>은 결혼을 하고, 가족과 이웃이 명절을 함께 보내고, 일터에서 노동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소수민족인 ‘줌머족’이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적응하며 살고 있는지 전달했다.

1994년부터 국내에 거주하고 있다는 줌머족의 수는 약 150명에 이른다. 적은 수다. 방글라데시에서도 소수였던 줌머족은 한국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우리 곁에 있는데, 잘 모르는 상황. 난민인 줌머족은 정확히 누구이며, 그동안 어떻게 우리 곁에서 살아왔을까.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다큐멘터리 숨(Breath) (출처: 난민영화제 Koreff Facebook 동영상 일부)
26년

줌머인(Jumma people)의 역사는 이렇다. 방글라데시 동남부, 치타공 산업지대(Chittagong Hill Tracts, CHT)이라는 지역에 차크마, 마르마 등의 11개 부족으로 이뤄진 민족이다. 역사적으로 인도, 파키스탄의 지배를 받아왔고, 1971년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에서 독립할 때, 방글라데시에 편입됐다.

방글라데시는 했다. 편입된 줌머인 지역에 1970년 후반부터 군대를 배치하고, 다른 민족인 벵골인을 이주시켰다. 그 뒤로 줌머인은 인종과 언어, 종교가 같지 않다는 이유로 방글라데시와 벵골인 모두에게 탄압을 받았다. 부당한 처우와 차별에 25년간 줌머인들은 저항했고, 1997년에 방글라데시와 ‘평화협정’을 맺었다.

방글라데시 치타공(Chittagong Hill Tracts, CHT) 지역 (출처: 위키백과, 치타공 구릉지대)

하지만 그 결과는? 협정 체결 이후 오히려 더 많은 줌머인들이 고문 및 살해를 당했다. 방글라데시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차별과 탄압, 방화와 약탈. 그리고 박해. 단어 하나하나가 무거운 의미를 갖고 있는 글자가 현실이 됐다. 완전자치를 요구하던 줌머인들은 방글라데시 정부와 이주민인 벵골인을 피해, 결국 전 세계로 망명을 시도했다.

줌머인은 유럽, 인도, 일본으로 흩어졌다. 한국에는 1994년에 입국했다. 그렇게 26년의 시간. 한국 정부로부터 난민 지위 인정을 받은 줌머인의 대부분은 현재 경기도 김포시 일대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의 대다수는 차크마 부족이다.

이주노동자

다큐 <숨>은 보여준다. 난민인 ‘줌머족’이 한국사회에서 이주노동자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음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남편 가나 스라마(Ghana Joti Srama), 전업주부이면서 가내수공업을 하는 아내 묵타 차크마(Mukta Chakma)의 일상을 전달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주민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다가왔다. 다큐 <숨>은 너무나 평범한 일상에서 이주민들이 어떻게 힘겹게 살고 있는지를 전달해, 이들의 고통과 어려움이 특별한 일이 아님을 보여줬다. 지나가다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우리 이웃의 이야기라는 점을 알려줬다.

“그럼 안 돼요.”라며, 돈이 없다는 핑계로 제대로 임금을 주지 않은 고용주에게 항의하는 아버지 가나 스라마의 모습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반복됐던 이주노동자의 저임금과 임금체불을 실태였다. “유치원에 가고 싶다.”는 딸의 목소리를 듣고, “나중에 보내줄게.”라는 엄마 묵타 차크마의 뒷모습엔 자식이 원하는 걸 제대로 해주지 못하는 부모의 안타까움과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했던 이주노동자 관련 사회적 논란과 갈등이 줌머인들에게도 예외가 아님을, 한 번쯤 지나쳐갈 뻔도 한데, 전혀 비껴가지 않았음을 담담하게 서술했다. 다큐 <숨>은 그렇게 이주민은 이들의 일상에 천착하며, 한국사회에서 이주민의 상황을 조명했다.

건설현장에 일하는 가나 스라마(Ghana Joti Srama)의 모습 (출처: 난민영화제 Koreff Facebook 동영상 일부)
저항

땀을 흘리며 노동을 한다. 명절에 다 같이 모여 음식을 같이 만든다. 다큐 <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을 제시한다. 민족과 인종, 언어를 넘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전한다. 동시에 강조한다. 핍박과 탄압을 피해 전 세계로 유랑했던 난민이 다시 길거리로 나서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약 70분의 시간 동안 그려냈다.

볼 수 있었다. “철수하라.”, “자유를 달라.”라며 방글라데시 대사관 앞에서 자신들의 고향에 군인과 군부대를 투입한 방글라데시 정부를 규탄하는 줌머인들의 모습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도 이행하지 않는 국가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저항 정신을 다큐 <숨>은 보여줬다.

나아가 고발했다. 2017년 4월 5일 줌머족 학생연합 지도자 로멜 차크마가 방글라데시 군대에 체포됐고 고문 끝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고문으로 한 청년의 목숨을 앗아간 것도 모자라 그 시신을 불태워 버린 끔찍한 만행을, 그래서 이 억울함 죽음의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는 간절한 외침을 전달했다.

언어

문맹(文盲)이다.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 온 부침의 역사 때문이었을까. 줌머인의 대다수는 제대로 언어를 배우지 못해 글을 쓰거나 읽을 줄 몰랐다. 입에서 입으로만 전했을 뿐, 자신들의 언어와 글자를 체계화하지 못했다. 같은 민족이지만 자음과 모음을 서로 다르게 알고 있었고, 그렇게 다른 의미로 의사를 전달하고 있었다.

그래서 배웠다. 배우고 있었다. 체계화된 언어체계를 갖고 있지 않은 줌머인은 자신들을 핍박하고 멸시했던 벵골어를 학교에서 배웠다. 고향과 삶의 터전을 빼앗긴 것도 서러운데, 피해자가 가해자의 언어를 익혀 일상생활에서 소통했다. 탄압받은 민족의 설움은 멀리에 있지 않고, 가장 대표적인 일상 수단인 언어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한국어보다 차크마 어(語)가 훨씬 더 어려워.”

민족과 인종 차별의 결과는 결국 ‘차이’로도 이어졌다. 다큐 <숨>에서 부모인 줌머인과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언어 사용을 비교해 볼 때 그러했다. 국내 거주하는 줌머인의 대부분이 차크마족인데 이들은 자신들의 언어가 정확히 없었다. 이 상황에서 대부분이 한국어를 익혔다. 그렇게 정립되지 않은 모국어에 한국어가 더해졌다.

그래서 두드러졌다. 한국에서 먹고 자라며 교육을 받은 줌머인 아이들과 그 부모들의 한국어 사용은 미묘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하나의 언어가 그리고 말과 글이 가치와 사상, 철학을 담고 있다는 관점에서 볼 때, 줌머인의 녹록지 않은 현실은 가까이에 있었다. 소통의 문제. 줌머인이 겪은 ‘차별’의 역사는 5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되풀이되고 있었고, 일상에서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다큐 <숨>은 ‘삶’이다. 1970년부터 이어져 온 소수민족과 난민의 차별이 2020년 지금에도 되풀이되고 있다는 현실을 잘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나아가 <숨>은 과거 제국주의가 끊으려고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자, 그럴 수 없다며 현재 저항하는 우리 주변 이웃의 목소리다. 많이 힘들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 길 위에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다큐다.

건설현장에 일하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가나 스라마(Ghana Joti Srama). (출처: 난민영화제 Koreff Facebook 동영상 일부)

 

글 | 정현환 (이주민방송MWTV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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