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M칼럼] 꼭 떠야 되는 영화 <부력> – 동남아시아 인신매매와 강제노동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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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떠야 되는 영화 <부력>
– 동남아시아 인신매매와 강제노동에 대하여

육지에서 바다로

“매일 죽어라 일하면 뭐해요, 돈을 못 버는데.”

14살 소년 차크라(삼행)는 아버지에게 대거리를 한다. 죽어라 농장에서 일하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을 부양한 대가는 없고, 친구를 만날 수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아들의 불평에 “먹여 주고 재워 주잖아.”라고 아버지가 대답한다. 형은 유난 떤다고 치부하고, 어머니는 침묵한다. 나아지기는커녕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오히려 더 많은 노동이, 미래가 없는 고된 현실이 예고되어 있을 뿐이다.

차크라(삼행)는 농장에서 하루 종일 일하지만, 궁핍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출처: 영화 <부력> 스틸컷)

그래서 나섰다. 차크라는 취업 알선 소개비가 없어도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따라 무작정 집을 가출했다. 하지만 그 말을 믿은 대가는 가혹했다. 도시 노동자로 일할 줄 알고 집을 뛰쳐나와 태국으로 향했는데, 알고 보니 망망대해에서 일해야 하는 선원 신세였다. 이른바 취업사기. 농장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14살 소년은 그렇게 바다로 강제로 향하게 됐다.

차크라만 그런 게 아니라, 케아(모니로스)도 그러했다. 취업 알선 소개비가 전혀 없었던 차크라, 반대로 소개비가 조금 모자랐던 케아도 예상했던 육지 공장이 아니라, 바다 위로 향하게 된다. 케아는 가기 싫다고 대거리를 했지만 돌아오는 건 취업 중개인의 구타였다. 도망칠 수 없는 상황. 속았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바다 한복판 위였다. 그렇게 오른 배 위에서 차크라와 케아는 롬 란(타나웃 카스로)을 만난다.

롬 란은 원양어선 선장이다. 22시간 동안 일을 시키지만 밥을 제대로 주지 않고, 사람을 부리려고만 한다. 주는 밥도 흰쌀밥에 바닷물이 전부인데, 선원들은 이마저도 양이 적어 못 먹을 때가 있다. 잠자리도 딱 한 사람만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이 다다. 하루 24시간에서 오직 잘 때만이 유일한 휴식시간이다. 임금? 육지에 다다르면 준다고 약속하지만, 이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취업사기를 당한 차크라는 원양어선 선장 롬 란(타나웃 카스로, 가운데)을 만난다(출처: 영화 <부력> 스틸컷)

바다에서 더 깊은 바다로

버린다. 사람을 버리고 또 버린다. 롬 란은 선장이면서 동시에 대장이다. 강제노역 지시하는 것도 모자라 사람을 죽이는 선수다. 일하다가 아픈 사람이 보이면 치료를 해주고 휴식을 주는 대신, 바다 위로 던져 버린다. ‘제대로 일을 못하면 너도 이렇게 될 수 있다’라는 걸 다른 노동자들에게 보여주며, 버려진 빈 사람의 자리를 인신매매로 대신한다. 그렇게 롬 란은 바다 위에서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버리면서 거래한다.

“이렇게 하지 않아도 죽잖아요.”

고된 노동과 인권유린에 결국 노동자 케아가 선장 롬 란에게 반항한다. 이른바 선상 쿠데타. 하지만 롬 란은 늘 있던 일인 것 마냥, 강제노동을 견디다 못한 케아의 도발을 아주 손쉽게 응징한다. 동시에 저지른다. 쿠데타의 대가는 거열형(車裂, 사람의 팔과 다리를 말이나 소에 묶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리게 해, 사지를 찢는 형벌)이었다.

롬 란은 배에 케아를 밧줄로 묶은 뒤, 모터를 돌리며 바다 위를 달린다.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케아의 몸이 찢지고, 바닷속으로 영영 가라앉는다. 롬 란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거듭 반복한다. 케아한테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한밤중에 몰래 탈출을 시도하다가 붙잡힌 선원에게도 똑같이 자행한다. 선원의 몸에 돌덩이를 묶어 바다로 던져 버린다. 위로, 뜨려고 선원이 발버둥을 치지만,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아래로 밑으로만 향한다. 선장 롬 란에게 대든 모든 이들은 그렇게 침전한다.

원양어선 선장 롬 란은 사람을 죽이는 대장이기도 했다(출처: 영화 <부력> 스틸컷)

기시감(旣視感)

영화 <부력>은 고발한다. 차크라, 케아, 롬 란 세 사람의 모습과 말,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노동착취 분위기로 현재 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강제노동과 인신매매에 대해 꼬집는다. 픽션(fiction)이라는 영화적 속성을 고려해도 내용을 믿을까 말까였는데, 영화는 마지막에 고백한다. 엔딩 크레디트 자막이 올라갈 때, <부력>에서 다룬 이야기가 현재 동남아시아 바다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팩트(fact)라고, 이 일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화라는 점을 밝힌다.

기시감이 들었다. 영화를 보며, 낯선 배우들의 명품 연기를 감상하며, 갑자기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맞다. 그랬다. 영화 <부력>은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늘 문제가 됐던, 이주노동자 실태와 흡사했다.

MBC는 지난 5월 5일 보도했다. “하루 18시간 노역…병들어 숨지면 바다에 버려”라는 제목으로 중국 어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도네시아 선원들의 인권침해 실태를 고발했다. 1년 넘게 바다 위에서 중국인과 일하다가 숨진 ‘아리’ 씨의 사연을 다뤘다. 사망한 당일 바다에 수장(水漿)되는 실태를 공개했다.

중국 어선 측은 배 위에서 일하다 사망할 경우 화장(火葬) 해줄 것을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아리 씨를 포함 3명의 선원들이 다리에 마비가 오고, 붓고, 숨쉬기 힘들었지만, 치료는 없었다. 중국 선원은 생수를 마셨지만, 인도네시아 선원들은 바닷물을 걸러 마셨다. 하루 18시간 일하고, 30시간 연속해서 일할 때도 있었다. 13개월을 그렇게 일하고 받은 임금은 우리나라 돈으로 14만 원이 전부였다.

2020년 5월 5일 MBC “하루 18시간 노역…병들어 숨지면 바다에 버려” 보도 내용 중 일부.

그래서 영화 <부력>은 현실을 매우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캄보디아, 미얀마, 태국이라는 영화 속 무대는 중국으로 바뀌어 오늘도 반복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인신매매, 인권유린, 노동착취를 겪고 있다. 운명(殞命)을 달리하는데, 시신을 찾을 수도, 가족의 품으로 돌려줄 수도 없다.

부력(Buoyancy)

“넌 이곳에서 벌어 날 수 없다.”

라는 롬 란 선장의 말에 차크라는 자극을 받는다. 노동이 착취되는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려면 오히려 인간성을 버려야 해방될 수 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인간성을 지키려고 저항과 탈출을 하려다 죽임을 당한 다른 이주노동자의 방법이 틀렸고, 역설적으로 비인간적이어야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차크라는 노동착취라는 지옥 같은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해 비인간적으로 변모한다(출처: 영화 <부력> 스틸컷)

이것은 의미한다. 이주노동자들이 살아남아 생환하더라도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그래서 지금 우리 사회를 비롯,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노동착취가 매우 끔찍한 범죄임을 고발한다. 특히, 차크라가 선장과 항해사, 기관사를 죽이고, 받아야 될 임금을 챙겨 고향으로 왔지만, 자신이 일했던 농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모습이 그러하다. 차크라가 지척에 있는 아버지를 보고도 발걸음을 돌리는 영화 속 장면이 이를 강하게 뒷받침한다.

영화 <부력>은 사람이 먹고살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죽이는 사회적 모순을 꼬집는다. 이 믿기 힘든 이야기가 정말 ‘리얼(real)’임을 고스란히 입증하는 영화이며, 비현실적인 스토리가 엄연한 현실임을 강조하는 팩션(faction, fact와 fiction의 합성어)이다. 나아가 <부력>은 인간이 저지르는 비인간성을 말하며, 지금 당장 수면 위로 떠올라야 하는 이주노동의 실태를 말하는 진실에 가장 가까운 영화다.

 

 

글 | 정현환 (이주민방송MWTV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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