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M인터뷰]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것은 기쁨이에요.”, 이탈리아 출신, ‘안나의 집’ 김하종 신부를 만나다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것은 기쁨이에요.”,
이탈리아 출신, ‘안나의 집’ 김하종 신부를 만나다

2020년 11월 17일 오전 11시 37분. 성남 모란역 4번 출구를 나섰다. 약 20m를 걸어 33번 버스를 탔다. 목적지는 바로 ‘안나의 집’ 이주민이 운영하는 노숙인 급식소를 향해 발걸음을 잡았다.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을 지나 천주교 성남동 성당 앞에서 내렸다. ‘어떻게 가야 할까.’라는 생각에 정거장에서 곧바로 휴대전화 길 찾기 애플리케이션을 켰다.

하지만 이내 스마트폰을 껐다. 기우였다. 그 이유는 이러했다. 성당 담벼락 넘어 길거리에 흰쌀밥 냄새가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밥이 제대로 됐을 때 풍기는 향기가 코를 연신 자극했다. 그렇게 밥 냄새는 목적지를 안내하는 길도우미가 됐다. 11시 42분. 길거리와 골목 구석구석에 가득한 쌀밥 냄새를 좇아 22년간 한국에서 노숙인에게 밥을 나눠주는 ‘김하종’ 신부를 만나게 됐다.

경기 성남시 중원구 마지로 28. 김하종 신부는 사회복지법인 ‘안나의 집’에서 22년째 나눔의 삶을 이어오고 있다(사진: 정현환).
빈첸초 보르도와 김하종

한국 이름 김하종. 이주민인 그의 이탈리아 이름은 ‘빈첸초 보르도(Vincenzo Bordo)’다. 2015년에 귀화했다. 올해로 63세인 그는 1990년 오블라티 선교수도회 소속으로 한국에 왔다. 한국인 최초의 로마 가톨릭교회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성(姓)을 따, 자신의 성으로 삼았다. ‘하종’은 ‘하느님의 종’을 줄인 말. 김하종 신부는 1992년에 경기도 성남에 터전을 잡고, 빈민 사목을 시작했다.

안나의 집은 샤워실, 이발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민상담, 정신과 치료, 인문학 교실 등도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이주민인 김하종 신부가 가장 많이 애쓰는 사업은 ‘노숙인 무료 급식’이다. 안나의 집에서 사회복지사 50명과 함께 우리 사회 사각지대에 있는 노숙인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

김 신부는 이 급식소를 1993년부터 운영했다. 김 신부는 IMF 직후인 1998년엔 ‘안아주고 나눠주고 의지하는 집’을 의미하는 ‘안나의 집’을 열었다. 그 뒤로 일요일은 제외하고 명절에도 약 500여 명의 노숙인을 위한 저녁식사를 매일매일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가출 청소년도 함께 돌보며, 우리 사회 소외계층이 더 고립되지 않게 애를 쓰고 있다. 한국에 정착한 지 30년이 된, 이주민 김하종 신부는 누구이며 그는 우리 사회 약자를 위해 어떤 삶은 살아왔을까.

김하종 신부는 사제복 대신 앞치마를 두르고 노숙인 무료 급식과 가출 청소년 돌봄을 27년째 유지하고 있다(제공: 김하종 신부)
동양철학을 좋아했던 청년
한국 천주교에 깊은 감명을 받아

30년. 이주민 김하종 신부는 올해로 한국에 온 지 딱 30년이 됐다. 1990년 5월 이탈리아를 떠나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김 신부는 대학교 시절 이탈리아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했는데, 그 과정에서 한국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순교’로 대표되는 한국의 천주교 역사와 문화에 큰 감명을 받았다.”라고 과거를 회상, “나중에 한국에서 사역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라고 과거 한국에 오게 된 배경을 말했다.

그렇게 도착한 한국. 1991년 성남은 지금의 분당이 개발되기 전의 도시였다. 김하종 신부는 이탈리아에서 마음 먹은 대로, 당시 낙후된 성남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우리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람들이 만났다. 1992년에 빈민 사역을 시작으로, 1997년 IMF를 거치며 국가의 경제적 위기 속에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1998년 ‘안나의 집’을 열었다.

매일 ‘500개’의 도시락
사제복 대신 ‘앞치마’와 ‘위생모’

김하종 신부는 준비한다. 매일매일 오후 1시부터 저녁 무료 도시락을 꾸린다. 그런데 2020년엔 달라진 점이 있다. 코로나 19의 여파로 무료 급식을 ‘도시락’으로 갈음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매일 500여 명이 한 자리에 앉아서 다 같이 밥을 먹을 수 없어서였다. 코로나 19 전염병 전에 학생, 주부, 회사원 등이 자발적으로 모여 도시락을 준비했었는데, 전염병 확산 이후 이를 간소화했다.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무료로 제공되는 밥을 먹기 위해, 다양한 곳에서 사람들이 모여들 경우 코로나 19 감염과 전파의 위험이 높아질 수 있어서였다. 경기도 성남에 있는 안나의 집에서 노숙인들이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종종 줄을 길게 서는데, 지역 주민에게 피해를 줄 우려도 있었다. 그래서 바꿨다. ‘급식’을 ‘도시락’으로 바꿨다. 하지만,

“돈이 더 많이 듭니다.”

김하종 신부는 “코로나 19로 매주 약 3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도시락 포장 용기를 구매하는데 쓰이고 있다.”라고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일주일에 여섯 번을 포장하느라 과거와 다르게 무료로 음식을 나눔 하는데 불필요하게 지출이 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자원봉사자들의 품이 이전보다 더 많이 든다고 아쉬워했다. 300만 원 정도의 돈이 포장이 아니라 노숙자의 음식 재료비용으로 쓰였다면? 우리 사회 빈곤층이 더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는데, 배를 굶주리는 사람이 더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년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코로나 19는 노숙인의 밥상에도 영향을 줬다. 오후 3시 배식 시간이 다가올수록 김하종 신부는 더 분주하게 움직였다. 사제복 대신 앞치마를 둘러매고, 머리에 위생모를 쓰고 자원봉사자와 함께 밥을 퍼 용기에 담았다. 국을 떠 플라스틱 통에 담고, 새지 않게 뚜껑으로 꽉 막았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도시락은 무료로 사람들에게 나눠졌다. 노숙인뿐만 아니라, 독거노인, 1인 가구, 기초생활수급자 등 서울, 경기도, 수원 등지에서 찾아오는 우리 사회 빈곤층에게 전달됐다.

김하종 신부(맨 오른쪽 앞)는 자원봉사자들과 코로나 19 방역 수칙을 지키며, 노숙인을 위한 무료 도시락을 매일 500개씩 만들고 있었다(사진: 정현환)
오해와 편견, 그리고 따가운 시선
차별과 냉대, 갈등을 넘어 사랑으로

“노숙인이 싫어요.”

이주민 김하종 신부가 무료 급식을 하면서 가장 많이들은 말이다.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노숙인 500여 명이 매일매일 안나의 집을 방문하자, 지역주민들이 성남시에 민원을 넣었다. 안나의 집 관계자에게도 항의, 노숙인을 대상으로 한 무료 급식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 신부는 지역주민들이 “노숙인이 병을 옮긴다.”, “노숙인 때문에 못 살겠다.”, “노숙인이 싫다.”라고 말했던 점을 기억하며, 무료 급식소에 대한 지역사회 반발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찌 된 영문일까. 불편함을 호소하는 세간의 반발 속에 김하종 신부는 “지역주민이 심정을 이해한다.”라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나아가 “어디를 가든, 어느 누구든지 자기 집 옆에 노숙인 시설이 들어온다고 하면 반기지 않을 거.”라고 현재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김 신부는 이야기했다. “지역 주민이 걱정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라고 언급, “갈등 대신 공존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그동안 고민이 많았다.”라고 자신이 그동안 해 온 노력을 설명했다. 김 신부는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는 것과 다르게 노숙인을 대상으로 무료 급식을 27년 동안 하면서 “노숙인이 문제를 일으킨 점이 없다.”라고 거듭 강조, 조금만 너그러운 시선으로 노숙인과 우리 사회 약자를 바라봐 줬으면 하는 소망을 드러냈다.

말에 머무르지 않았다. 소망하는 바람을 갖는데 국한되지 않았다. 김하종 신부는 실제로 단순 의견 제시를 넘어 실질적인 행동으로 보여줬다. 그 스스로 먼저 옮겼다. 지역 주민의 걱정을 충분히 공감하며, 이를 해결하고자 안나의 집에서 하던 무료 급식을 천주교 성남동 성당 안으로 최근 이동시켰다. 무료 급식과 도시락을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선 노숙인인을 안으로 들여, 주민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바를 없애고자 했다.

그래서 옮겨졌다.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동안 노숙인이 무료 도시락을 받기 위해 안나의 집 주변에 길게 늘어섰던 줄은 성당 안으로, 도시락을 받고 동네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광경도 함께 성당 내부로 이동했다. 김 신부가 지역 주민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반영했기에 가능한 일. 안나의 집 사회복지사에 따르면, “최근 그동안 이어져 오던 민원과 항의가 이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라고 설명했다.

천주교 성남동 성당에서 김하종 신부(가운데) 신부는 자원봉사자들과 같이 날마다 500명 분의 도시락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었다(사진: 정현환)
도시락은 사랑을 싣고
나눔은 또 다른 나눔으로

이주민 김하종 신부의 진심이 통했을까. 김 신부는 27년째 자원봉사자와 무료 도시락 나눔을 함고 있다. 이 날은 22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했다. 김 신부와 매일 무료 도시락을 준비하는 안나의 집 조리장은 “매일매일 평균적으로 약 20여 명의 봉사자들이 천주교 성남동 성당과 안나의 집을 방문하고 있다.”라고 설명, 코로나 19 위기 속에 우리 사회 온정과 배려를 설명했다.

지OO(28) 씨도 그런 경우다. 천주교 세례명 ‘안젤라’ 그녀는 현재 대학원생이다. 그녀는 “2017년 12월 KBS 1TV <인간극장>에 나온 김 신부를 보고 안나의 집을 오게 됐다.”라고 말했다. 비정기적으로 자주는 아니지만 집 근처인 청명역에서 출발, 천주교 성남동 성당까지 약 48분 거리, 왕복 약 2시간의 거리를 틈틈이 찾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졸업 후에도 하고 싶어요.”

대학원생 지 씨는 “대학원 졸업 이후에도 이 봉사를 하고 싶다.”라고 말하며, 처음에 노숙인을 만났을 때 당황했던 점을 기억해 냈다. 아직 한 낮인데, 노숙인이 술에 취한 채 도시락을 받으면서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른 과거 봉사활동 경험을 떠올렸다. 무료 도시락을 건넬 때, 늘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오히려 차갑게 반응 사람들을 보며, “처음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고민이 많았다.”라고 지난 3년여의 봉사활동을 회상했다.

자원봉사자 지 씨는 무료 도시락을 받으며 다정하게 대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가끔 퉁명스럽게 반응하는 사람들을 보며 “고민을 많이 했다.”라고 설명, 처음엔 ‘날 싫어하나?’라고 상황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았지만, 도시락을 받아가 길거리에서 앉아서 밥을 먹는 노숙인을 보면서, 이들이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했고,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이 이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그래서 다시 그런 상황이 오면 무엇을 하면 좋을지 봉사활동을 할 때 늘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지 씨는 덧붙였다. ‘복지’라는 학문을 전공하는 학생은 아니지만, 현재 관련 분야를 배우는 대학원생으로서 졸업 후에도 이 나눔을 지속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 신부의 지난 노력과 헌신이 통했을까. 지 씨는 그동안의 경험과 배움을 살려, 김하종 신부와 다른 자원봉사자처럼 앞으로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전달하는 전문적인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김 신부의 나눔이 또 다른 나눔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지OO 씨는 2017년 KBS <인간극장>을 보고 ‘안나의 집’을 방문, 김하종 신부와 함께 노숙인에게 무료 도시락을 나눠 주고 있었다(사진: 정현환)
위기를 기회로

걱정이 앞선다. 현재 김하종 신부는 코로나 19의 위기가 나날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무료 나눔이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이 컸다. 김 신부는 오후 3시부터 저녁 도시락 나눔이 시작되는데, 최소 1시간 전인 2시부터 노숙인이 와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앞으로 무료 도시락 나눔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이 많다고 했다.

동시에 김 신부는 고민의 답은 이미 찾았다고 설명, “코로나 19 위기 속에 약 2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거의 매일 도움을 주고 있다.”고 강조, “앞으로 어떤 위기가 닥치더라도, 이 나눔을 멈추지 않을 거”라고, 오히려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더 열심히 할 거”라고 의지를 다졌다.

현재 김 신부는 요리 경력 32년의 조리장과 노숙인의 음식을 만들고 있다. 50여 명의 사회복지사와 함께 이 일을 할 수 있는 순간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일주일에 6일을 무료 나눔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2020년은 전 세계적인 경제적 어려움에 코로나 19가 덮쳐 다른 어느 때보다 가혹했다. 여기에 한국 사회는 기록적인 불볕더위와 장마, 폭우라는 이상기후로 힘든 시간을 겪었다. 그래서 남다르다. 이 엄중한 시기에 위기 속에서 희망을 찾는, 어려운 시절에 더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찾는 우리 이웃의 모습은 남달랐다. 오후 5시 34분. 그렇게 500인 분의 무료 도시락 나눔이 끝이 났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이어질 봉사활동이 종료됐다. 이 나눔은 계속돼야 하지 않을까.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것은 기쁨이에요.”라는 김하종 신부의 말은 코로나 19 위기로 모두가 힘든 시절에 더 남다르게 다가왔다.

경기도 성남시 천주교 성남동 안. 김하종 신부는 노숙인과 독거노인, 쪽방촌 주민 등을 대상으로 매일 약 500인 분의 무료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다(사진: 정현환)

사진•글 | 정현환 (이주민방송MWTV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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