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ce of MWTV] 이주민영화제 10년을 돌아보며 – 박수현 이주민영화제 집행위원

이주민영화제 10년을 돌아보며

박수현 이주민영화제 집행위원

 

▲ 지난 10월 22일 이주민영화제 사전행사로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동아시아 국제포럼의 3부 <이주민영화제 10년 역사의 의미와 향후 방향 모색>의 진행을 맡은 박수현 MWTV 전 대표(왼쪽)와 패널로 참가한 이주민 영화 제작자들

외국에서 온 사람들을 이주민이라는 말로 부르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80년대 후반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일하러 온 이주노동자들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부터가 아닐까요? 그리고 2004년 고용허가제에 반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명동성당 농성 이후 외국인이 아닌 이주노동자, 이주민이라는 계층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논의가 뜨거워졌던 걸로 기억됩니다.

2004년 12월 이주노동자의방송MWTV가 만들어진 배경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더불어 농성에 참여했던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국 사회에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케이블방송인 시민방송을 통해 제작한 프로그램은 이주민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이주민과 한국인에게 알리는 역할을 했고 자연스럽게 영상이 갖는 문화적 파급력에 대한 자각과 고민이 영화와 영화제에 대한 필요성으로 연결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고민의 결과 MWTV는 2006년 1회 이주노동자영화제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2007년 이주민방송에서 시사프로그램 작가로 처음 일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영화제를 처음 시작할 때의 구체적 논의에는 참여하지 못했고 2008년 공동대표로 그리고 다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이주민방송의 대표직을 맡아 영화제 집행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보고 느꼈던 점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최근 한국에는 수많은 영화제가 있습니다. 대규모로 개최되는 국제영화제뿐 아니라 영화제를 기획하고 주관하는 주체에 따라 다양한 성격의 영화제가 언제 어디서나 열리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문화적인 소통의 장이 되었습니다. 이주민영화제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재정 확보가 가능했던 것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이주민에 대한 관심을 영화제로 집중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이주민영화제는 한국 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만들어진 평균 30편 내외의 이주 관련 장편, 단편 작품을 서울의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한편 지역의 이주민공동체 또는 관심 있는 선주민 단체 등을 찾아다니는 지역상영전이 함께 진행되어 외형적으로 결코 작지 않은 영화제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주민영화제의 성격과 영화 선정 문제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주민 관객에게 자국의 보고 싶은 영화와 현실 문제를 제시하는 영화, 선주민에게 이주민 출신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영화와 주류 미디어에서는 볼 수 없는 이주민의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 등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주목할 점은 미디어교육 등을 통해 배출된 이주민 감독들이 직접 만든 영화를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주민 감독들이 한국 생활에서 보고 느낀 점들을 영화로 만들어 이주민 뿐 아니라 한국의 선주민과도 공감하는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9회 영화제부터 사전제작 지원을 통해 이주민 감독들의 영화 제작을 지원하게 된 점은 무엇보다 큰 성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주민영화제는 보다 많은 이주민 관객이 참여할 수 있도록 1회 영화제부터 지역상영전을 많게는 10곳까지 전국을 순회하며 꾸준히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장소 선정부터 홍보, 프로그램, 장비운반 등 준비와 상영을 몇 달 동안 계속 진행하면서 결국 영화제에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지역에서 많은 관객을 만나고 이주민영화제를 알릴 수 있다는 긍정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순회상영의 횟수와 방식을 새롭게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10년 동안 이주 관련된 다양한 영화제가 생겨나고 있어 이주민영화제의 차별성에 대한 새로운 모색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10년 동안 이주민영화제는 크고 작은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두 가지 큰 변화를 꼽자면 첫째로 2011년 명칭을 이주노동자의방송에서 이주민방송으로 변경하면서 영화제도 6회부터 이주노동자영화제에서 이주민영화제로 명칭이 변경 되었습니다. 이미 영화제는 2007년 2회부터 이주와 노동, 이주와 여성, 이주와 아동 등의 섹션으로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었고 명칭 변경을 통해 이주민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를 다루는 영화제로써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라는 계층이 갖는 분명한 사회적 문제인식이 영화제의 이름과 더 잘 맞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두 번째 변화는 2012년 7회까지 이어온 이주민 집행위원장 중심의 체계가 중단된 후 2013년 영화제가 개최되지 못하는 위기를 맞이했고 2014년 8회 영화제부터 집행위원장 없이 영화제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1회부터 7회까지 영화제를 책임졌던 이주민 집행위원장들이 더 이상 영화제에 참여하지 않거나 못하는 상황이 되면서 8회부터 이주민방송 사무국과 집행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영화제가 개최되고 있습니다. 이는 이주민영화제의 가장 아쉬운 점이며 집행부 뿐 아니라 영화제를 담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계속 바뀌면서 영화제가 성장하고 발전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영화제가 안정적으로 지속되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아쉬운 점도 부족한 점도 많지만 이주민영화제가 10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힘은 무엇보다 이주민이라는 우리 사회의 알려지지 않은 이면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주민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많은 분들의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0회를 맞이하면서 가장 기억나고 또 아쉬운 점은 영화제를 위해 애썼던 많은 분들입니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영화제 실무를 뛰며 1회부터 애썼던 스텝분들과 자원활동가분들이 아니었으면 영화제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특히 다양한 국가의 이주민들과 함께 하는 영화제인 만큼 언어 문제 뿐 아니라 문화적인 소통이 몇 배는 힘들고 할 일도 몇 배로 많다는 걸 영화제를 실제로 발로 뛰면서 알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10회를 맞은 이주민영화제가 지난 10년 동안의 많은 시행착오와 경험들을 바탕으로 앞으로 10년 후에는 이주민과 한국사회를 연결하는 의미있는 통로로 뿌리내리고 많은 이주민 출신 감독들이 영화제의 주인공이 되는 사랑받는 영화제가 되길 기원합니다.

박수현 이주민영화제 집행위원

2007년 이주민방송에서 시사프로그램 작가로 참여하기 시작해, 2008년 공동대표를, 다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이주민방송의 대표직을 맡았고, 현재 이주민방송 운영위원 겸 이주민영화제 집행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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