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회이주민영화제]“우리 역시 이주민일수 있음을 보여줬다…”- 내가 만난 이주민영화제

“우리 역시 이주민일수 있음을 보여줬다…”
– 내가 만난 이주민영화제

 

이번 10월 12일에서 14일까지 이주민방송(MWTV)이 주최한 제 12회 이주민영화제(MWFF)가 열렸다. ‘우리는 모두 이주민이다’라는 한글 슬로건과 IN&OUT이라는 영어 슬로건으로 해 진행된 영화제는 1,2일차에 미등록 이주 아동, 해외입양인, 중도입국청소년과 같이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고, 3일차에는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 워홀러(워킹홀리데이에 참여한 사람들을 이르는 말) 역시 등장했다.


– 투쟁의 기록, 앞으로의 대안, <아직도, 우리는 이주 노동자다>

지난 2003년, 이주노동자들은 ‘강제추방 저지! 미등록 이주 노동자 전면합법화!’를 요구하며 투쟁을 시작했다. 투쟁은 비록 패배했고 스스로 해단식을 하며 끝이 났지만 투쟁은 사람을 남겼다. 각자의 나라로 추방된 비두, 자히드 그리고 샤말은 연대를 배웠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나라에서 대안을 만들어가고 있다. 학교를 만들어 교육에 방점을 두기도, 협동조합을 만들기도 했다. 그들은 스스로 옳은 일을 했다고 확신했고, 그렇기에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온 것 아닐까. 영화 직후 이어진 GV세션에서 만이(최종만) 감독은 “과거보다는 현재에 더 중점을 두고 싶다.”며 영화가 말하는 대안에 주목했다. 대안이 없어 보이는 사회에 여전히 연대를 말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투쟁의 기록은 우리에게 대안을 귀띔해주고 있었다.

 

– 숨 가쁜 외침, 결혼이주여성의 현실, <바네사>, <숨비소리>

결혼 이주로 한국에 온 네팔 출신 결혼이주여성 바네사는 동네 시장에서 그림 교실 광고를 발견한다. 그림 교실에는 바네사와 비슷한 상황의 선주민 여성도 있었다. 가정에서 기회를 엿보다 ‘탈출’했다는 대사에서는 선주민 여성의 선택이 드러났다. 바네사 역시 그림 그리기를 선택했지만, 그 과정에서 남편과의 대화는 주종관계와 가까워 보였다. 그림 교실이 끝날 때쯤, 전시회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날짜가 시아버지 제사와 겹쳤다. 그러자 남편은 당연한 듯, ‘그럼 못가겠네’라고 말한다. 일찍 음식을 해두고 바네사는 전시회에 가려고 한다.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그림교실 동료에 비해, 바네사의 복장은 초라했다. 전시회 문 앞까지 갔던 바네사는 돌아온다. 돌아온 집에는 아들과 화가 난 남편이 있었다. 남편은 고함을 지르며 바네사를 타박한다. 바네사는 울며 네팔어로 남편에게 말한다. 남편은 알아듣지 못한다.

 


숨비소리의 주인공인 중국 출신의 팡민은 어린 나이에 제주도로 시집왔다. 하지만 남편을 바다에 잃는다. 같은 이유로 남편을 잃은 시어머니와 팡민은 그렇게 단둘이 살아가게 된다. 시어머니는 제주방언을 쓰는데, 팡민은 이를 알아듣기 어려워한다. 시어머니는 큰 목소리로 팡민을 계속 다그치고, 심지어 팡민을 미워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이 때 팡민은 어머니께 중국어로 이야기한다. 비록 시어머니가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 하지만, 팡민의 소심한 저항이 아닐까.
‘숨비소리’란 해녀가 물질을 마치고 물 밖으로 올라와 가쁘게 내쉬는 숨소리라는 뜻이다. 아이와 가정을 지키느라 ‘나’를 지키지 못하는 결혼여성의 현실과, 다른 것 하나 없지만 차별받는 이주민의 현실이 겹쳐져 바네사를 짓눌렀고 그렇기 때문에 바네사의 외침은 더 숨가빴고, 더 컸다. 팡민 역시 자신이 참았던 답답함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했고, 시어머니와의 갈등을 수면 위로 올리는 일이 된다.

 

– 신성하지 않은 노동, 쉴 수 없는 홀리데이, <홀리워킹데이>

지금도 워킹 홀리데이, 교환 학생을 꿈꾸는 학생들이 많다. 잠시 동안의 일탈, 해방을 꿈꾸는 사람도, 돈을 모으고 싶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우리에게 워킹홀리데이의 현실을 알려준다. 세컨비자라 불리는 호주에 워킹 홀리데이를 다시 올 수 있는 비자를 따기 위해, 최악의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모습은 정말 안타까웠다. 도시에서 일할 때는 돈도 잘 벌고 양호한 환경에서 일한다. 하지만 농장에서 워홀러들은 시급제가 아니라 능력제로 일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일해도 돈을 거의 벌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현지인들이 그들을 파티에 초청해서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사람들은 ‘호주에서 그런일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결국 그들은 세컨비자를 얻었다. 후에 한국에서 다시 만난 그들은 그렇게 빛날 수가 없었다. 영화 중 호주 어린이들이 주인공들에게 ‘Germy(세균투성이의)’라고 부르며 과자를 던졌다. 후에 주인공들은 “우리가 일하느라 초췌한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나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말한다. 이런 생활에서 그들의 노동은 신성하지도 않았고, 그들은 홀리데이를 즐길 수도 없었다. 그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농부였을 뿐이다.

 

– 우리는, 모두, 이주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주민을 타자로 여긴다. 하지만 영화제 3일차의 영화 구성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래서 이주민이 누군데?’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투쟁으로 시작해서, 결혼이주여성을 거쳐, 워킹 홀리데이를 떠난 한국 청년의 이야기로 끝난 하루의 일정은 우리 역시 이주민일수 있음을 보여줬다. 멀게만 느껴졌던 이야기를 바로 옆에 놓아뒀을 때, 영화제의 관객은 ‘나도 이주민일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주의 다양한 모습과 삶을 보여준 영화들은 여전히 공고한 이주민과 선주민의 경계를 조금이나마 허물지 않았을까.

영화제 도중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이렇게 우리가 모여서 영화를 보는 것은 정말 좋다. 하지만 이런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생각이 바뀌는 사람들) 이곳에 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 아닌가.’는 관객의 질문이 있었다. 무엇이 세상을 바꾸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고, 이주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게되어, 한명이라도 더 이주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역시 세상을 바꿀수 있는 움직임이지 않을까. 현장에서 영화제를 지켜보며 작은 희망을 본 사람들 역시 있지 않을까.

 

글 | 강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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