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통신] 넓게, 가까이, 함께 ‘이주’를 마주한 시간_이주와 개발에 관한 국제포럼(2016 GFMD)에 다녀와서

넓게, 가까이, 함께 ‘이주’를 마주한 시간
이주와 개발에 관한 국제포럼(2016 GFMD)에 다녀와서
 
이정은 | 아시아인권문화연대
 
▲ 방글라데시에서 열린 2016 이주와 개발에 관한 세계 포럼(GFMD)에서 세계 각국에서 모인 시민사회 활동가들과 함께
 

  2016 GFMD에 가다

▲ 방글라데시에서 열린 2016 이주와 개발에 관한 세계 포럼(GFMD)

  2006년 유엔 총회는 국제 이주와 개발에 관해 유엔회원국 정부와 장관들이 참여하는 고위급 회담을 개최한 바 있다. 그 결과, 유엔사무총장의 제안으로 ‘이주와 개발에 관한 세계포럼(Global Forum on Migrants and Development, 이하 GFMD)’을 창설하였다. 그렇게 2007년부터 시작된 GFMD는 유엔 시스템 밖에서 전 세계의 정부와 시민사회가 전지구적 핵심과제인 이주와 개발에 관해 논의하는 자리이다. GFMD는 그 구성상 크게 시민사회 프로그램과 정부 프로그램으로 구분되는데 매년 ‘시민사회의날’ 회의가 정부간 회의에 앞서 열린다. ‘시민사회의날’에 앞서 ‘국제민중행동’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각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모여 각 지역, 국가에서 이루어지는 이주와 관련한 다양한 이슈에 대해 논의한다. 그리고 ‘시민사회의날’ 회의가 끝나고 정부간 회의가 진행됨에 앞서 시민사회대표들과 정부대표들이 만날 수 있는 ‘공동의 장’이 주어진다. 용어부터 진행방식까지 여러모로 낯선 자리에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희(이하 외노협) 소속 회원단체 활동가 일곱 명이 GFMD 일정(2016년 12월 3~10일)에 참여하게 되었다. 

▲ ‘2016 이주와 개발에 관한 세계 포럼(GFMD)’에 참여한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희 소속 회원단체 활동가들

 

  개최국 방글라데시, 아시아를 이야기하다

  GFMD는 보통의 세계포럼이 그러하듯, 해마다 개최국이 달라진다. 2016년에는 방글라데시에서 열렸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2008년 필리핀에 이어서 두 번째 개최국이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의미가 컸다. 무려 8년만의 일이다. 이는 이주를 둘러싼 보편적인 문제를 포함하여 아시아적 특수성을 이해하는데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 지역 각국의 시민단체활동가, 인권변호사 등 관련 분야 전문가 뿐 아니라, 대다수는 이주당사자들이 참여했다. 외노협 활동가 일곱 명이 참여한 것도 여기에 이유가 있다. 특히, 인접국가인 네팔에서는 시민단체 뿐 아니라, 이주노동 당사자와 그 가족들 1백 여 명이 참여하여 아시아 지역에서 이주, 특히 이주노동 이슈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몸소 깨달을 수 있었다. 공식일정에 앞서 별도로 마련된 ‘아시아시민사회의날’ 회의에서는 ‘아시아에서의 이주 현황과 과제 : 이주민의 정의, 권리, 평등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아시아시민사회의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참여자들이 토론과 발표를 통해 의견을 모았다. 네팔, 방글라데시 출신으로 중동 지역에서 가사노동자로 일하다 귀환한 여성들의 증언은 여성이주노동자의 위치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이주노동 당시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강한 어조로 이주노동자, 여성이주노동자의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주의 여성화’가 이론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이주노동의 주체로서 여성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모이고 움직이는: 이주민이 세상을 바꾼다

  지금은 행동할 때

 
▲ 국제민중행동 폐막식 무대에서 소고춤 공연 후 ‘바위처럼’ 율동을 함께한 외노협팀

  GFMD에서는 능동적인 주체로서의 이주민, 고질적인 이주 문제의 고리를 풀기 위하여 다양한 영역의 관심과 연대를 도모하기 위한 논의가 매 시간 이어졌다. ‘Mobilized On The Move: Migrants Changing The World라는 주제로 12월 6~7일 양일 간 진행된 ‘국제민중행동’에서는 △국제이주거버넌스 △혼합이주와 송출개혁 △노동이주 △외국인혐오주의와 인종차별 등 각 세션별로 토론과 발표를 진행하였다. 주제별로 핵심과제를 선정하고, 각 주체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모색하는 시간을 이어나갔다. 

▲ GFMD에서는 능동적인 주체로서의 이주민, 고질적인 이주 문제의 고리를 풀기 위하여 다양한 영역의 관심과 연대를 도모하기 위한 논의가 매 시간 이어졌다. 사진은 식사시간까지 쪼개어 가며 열중한 소그룹 토의 중인 모습.
 

  8~9일에는 ‘Time to Action이라는 주제로 ‘시민사회의날‘ 회의가 진행되었다. 주요 내용으로는 지난해 시민사회의 성과를 포함하여 안전한 이주와 이주과정에 있는 아동을 포함한 강제 이주자 및 기타 이주자 보호 문제가 논의되었다. 또한 권리에 기반을 둔 송출 개혁과 이주민들의 노동조건 개혁, 이주민과 난민들에게 적합한 새로운 지속가능발전 목표를 수립하는 것의 중요성, 이주민 디아스포라의 역할과 인식 등의 주제가 다루어졌다. ‘국제민중행동’과 마찬가지로 세션별로 진행되는 ‘시민사회의날’ 회의는 총 4개 트랙, 8개 워킹 세션으로 구분하여 진행되었다. 올해 특히 주목할 것은, 인종차별에 대한 주제가 처음으로 논의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노동이주를 둘러싼 다양한 개혁의제만큼 출신국가, 피부색, 종교 등에 따른 이주민에 대한 유입국(목적국)의 인종차별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부각되는 인종차별과 그 대응책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기회였다. 

▲ ‘Time to Action’이라는 주제로 열린 ‘2016 GFMD 시민사회의 날’ 회의

  12월 10일에는 세계인권의날을 기념하여 집회도 진행되었다. 각국의 이주문제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행진하며 참여하는 집회는 본래 국제민중행동‘의 일환으로 연대하는 장(場)이 마련되곤 하는데 방글라데시 정부가 이를 허가하지 않아 진행이 어렵게 되었다. 대신 방글라데시 현지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하는 ‘세계인권의날’ 집회에 힘을 모았다. GFMD의 공식행사는 아니었지만 외노협팀은 방글라데시 로컬팀들과 연대하여 집회에 참여하였다.

  방글라데시, 또 다른 이야기: 인연 그리고 만남

오로지 영어로만 전달되는 회의 내용을 잘 파악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실내 회의장에만 주로 있으니 문득문득 ‘우리가 과연 방글라데시에 왔나?’ 의심할 정도였다. 회의장을 오가며 차창 밖으로 거리에 빼곡한 사람들과 릭샤 행렬을 보며 방글라데시에서 온 것을 실감할 뿐이었다.(아! 맛난 현지 음식을 먹을 때도 ‘방글라데시’를 옴팡 느꼈구나.) 그런데 GFMD를 다녀온 이후, 한동안 방글라데시 향수병에 걸렸었다. 도대체 왜? 바로 사람들 덕분이다. 시기는 서로 다르지만 한국에 이주노동자로 살다가 본국에 재정착한 방글라데시 귀환이주노동자 분들과 함께 보낸 시간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이다.

아시아인권문화연대는 2015년에 미얀마 양곤에서 ‘사회발전을 위해 일하는 귀환이주노동자 워크숍: 링크업’을 진행했었다. 한국사회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시민사회단체를 설립하여 모국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분(네팔, 미얀마 방글라데시)들이 함께 모여 워크숍을 통해 활동사례를 공유하고 교류하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서로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힘을 얻었다. 이들 중에는 한국정부의 무자비한 단속과 강제추방으로 어쩔 수 없이 한국을 떠나야 했던 경우도 있었다. 모든 일정이 끝난 후, 헤어지면서 ‘(한국은 안되니) 우리 다음은 방글라데시? 네팔?에서 만나자’고 약속했었다.

▲ 환영부터 작별까지 함께 해준 귀환이주노동자 분들

  이런 연유로 GFMD 회의도 중요했지만 방글라데시에 간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였다. 워크숍에서 만난 인연과 재회할 수 있다니. 새롭게 만난 분들도 있었다. 입출국시기와 체류기간은 각기 달랐지만, 이주노동자로 살면서 한국사회에 헌신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청년기를 한국에서 보내고, 모국사회로 돌아와 다시 적응하는 일은 분명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가족관계도 마찬가지다. 두 살 난 아이와 생이별을 하고 십대 소녀로 다시 만난 딸은 올해 대학에 입학한다고 했다. 훌쩍 커버린 딸과는 둘이 있으면 여전히 어색하다며 웃어 보이는 얼굴에는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세월이 담겨 있었다. 이제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 귀환이주노동자들은 이제 이주노동을 꿈꾸는 후배들이 공식 절차를 통해 안전하게 이주할 것과 계획성 있는 경제생활을 할 것을 강조하며 직·간접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대화를 나누며 이주노동자로서 최선을 다해 일하던 나라에서 강제추방을 당했던 비극적인 경험도 들을 수 있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변함없이 차별하고 억압하는 한국의 현실이 부끄러웠다. 눈 앞에 앉아 있는 선배 활동가들이 제도에 맞서 투쟁한 덕분에 그래도 이만큼 변할 수 있었다. 다시 꺼내기 힘든 순간을 돌이키며 사회운동하며 만났던 좋은 동지들을 언급했다. ‘투쟁하지 않았다면 좋은 한국사람들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다.’고…. 이야기를 듣는 동안 점점 고개가 떨구어졌다. 뭉클함이 밀려왔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나라’에서 온 후배 활동가들을 진심으로 반겨준 것도 선배들과의 우정 때문이리라. 정해진 일정을 쫓아다니느라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다시 만나자.’는 기약 없는 약속을 반복하며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방글라데시를 떠나는 날,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애써 눈을 피하며 ‘건강하게 지내라’고 인사하는 샘과 악수를 하며 결국 나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뜨겁게 나누어 준 연대의 정을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 방글라데시를 떠나기 전 호텔에서 찍은 단체 사진

  ‘이주’에 대해 좀 더 넓게, 그리고 함께 고민하며, 가까이서 이주 당사자들을 만날 수 있었던 방글라데시에서의 GFMD! 남겨진 과제가 크다. 방글라데시에서 몸소 배우고 느낀 것들을 감상에 그치지 않고, 내가 발을 딛고 있는 현장과 연결하여 실천해야 하는 일말이다. ‘사람’ 중심의 이주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 지 더 고민해야 한다. ‘한명의 사람’, ‘하나의 삶’ 이라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이주’는 결국 삶의 전과정에 연결되는 문제이다. 모든 이주노동자는 이주노동하는 당시 뿐 아니라, 모국을 떠나 목적국에 정착하고 다시 모국으로 귀환할 때까지 일련의 전 과정에 걸쳐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주체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노동력으로 불러놓고, 한 사람이 아니라 일하는 존재로서만 치부했다. ‘기한이 지났으니 이제 떠나라’며 매몰차게 내쫓기까지 한다. 한국사회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진 빚이 크다. 귀환 후 모국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서, 그리고 예비이주노동자 후배들을 위해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귀환이주노동자들에게서 배울 것 또한  참 많다. 이제는 이주노동자의 목적국으로의 사회통합 뿐 아니라 귀환이주노동자의 모국으로의 재통합을 위해서 양국 사회가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활동가로서 나는 전보다 이주노동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Migrants Rights are Human Rights! No One is Illegal, Stop Crackdown

이 글을 마무리할 즘, 경남 김해에 있는 한 공단식당에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이 무단으로 침입하여 식사중인 이주노동자들을 밖으로 끌고 나가 신분확인을 했다는 보도 영상을 접했다. 손에 힘이 쫙 빠지는 순간이다. 옆에서 한국인 동료가 “가더라도 밥은 먹고 가야 하지 않겠냐?”고 물으니, 출입국 직원은 “식사 다 줄 겁니다. 신분확인만 하면 다 드립니다.” 한다. 보다 못한 동료가 이에 항의를 하며, 관등성명을 요청하자 공무집행방해가 될 수 있다며 출입국사무소에 정식적으로 이의를 제기를 하라는 말만 반복한다. 식당 주인의 거센 항의로 영상은 종료되었다. 정부가 미등록이주노동자 단속 강화방침을 밝힌 이래, 곳곳에서 무리한 단속이 빗발치고 있다. 무자비한 단속이 고된 노동 후 따뜻한 밥 한 끼 먹는 식당 안에서까지 행해지다니! 제주에서 경찰이 ‘외국인 체류정보 조회시스템’로 미등록이주자를 검거했다는 뉴스가 보도된 지 보름만이다. 지난 2월 11일은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10주기였다. 보호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 구금되어있던 이주노동자들이 철창문에 갇혀 화재를 피하지 못하고 10명이 죽음으로 내몰렸던 대참사였다. 지난해 12월 18일 ‘세계이주민의 날’에 ‘우리는 이 땅에 죽으러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외치던 이주노동자의 발언도 떠오른다. 더 이상 이주노동자들이 정부정책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를, 다시는 억울한 죽음이 일어나지를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방글라데시에서 이주민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했다면 이제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꿰뚫고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누구나 자기가 가진 배경에 의해 차별받지 않고 모두가 공존하는 삶을 위한 책임은 이 땅의 정부, 시민사회, 이주민당사자 모두의 몫이다.

▲ 일정 내내 외노협 활동가들이 등에 붙이고 다니던 미니플래카드 (“저기, 등 좀 찍어도 되니?”라는 질문을 숱하게 들었다.) 

 

이정은 |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며 일하는 사람. 갈수록 배울 것도 할 것도 늘어나 걱정근심도 많다. 그래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며 즐겁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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