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여성, 이주노동자, 농업, 그리고 그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주여성 농업노동자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 보고회

여성, 이주노동자, 농업, 그리고 그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주여성 농업노동자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 보고회 

지난 12월 14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주관하고 김삼화(국민의당), 정춘숙(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주최하는 이주여성 농업노동자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 보고회가 열렸다. “열악한 노동조건, 성폭력을 덮다!”를 부제로 열린 보고회에서는 지난 1년간 공감과 이주여성인권센터가 김지혜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 및 김정혜 고려대 법학대학원 교수와 함께 이주여성 농업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와 심층면접의 결과를 발표하고,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대표와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의 강성의 센터장,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연구의 의의에 대해 토론하였다.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본격적인 실태조사 결과 발표에 앞서 영상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가 상영되었다. 이 영상은 국내 이주여성 농업노동자들이 직접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을 김이찬 지구인의 정류장 대표가 편집해 만든 것으로, 여성노동자들이 놓인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거주하는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의 열악한 상황 뿐 아니라, 고용주의 폭언과 협박, 과도한 노동과 사생활 침해의 모습까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핸드폰 카메라를 들 수 밖에 없었던 당사자들의 생생한 고발 앞에 장내에는 무거운 탄식이 흘렀다.

 ▶여성농업이주노동자의 집과 성폭력 실태를 담은 영상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제작: 지구인의정류장)

현재 국내 농업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이주노동자는 1만 5천명으로, 전체 외국인 취업자 중 33.7%를 차지하는 여성 중에서도 5% 가량이다. 적은 숫자라고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농업이주노동 환경의 특수성과 취약성이 이주여성노동자들을 성폭력에 노출시키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기에 문제의 해결이 쉽지 않다는 데에 있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농업이주여성은 주로 20-30대로, 고용허가제를 통해 E-9 비전문취업 비자를 가지고 체류하며, 한국어를 잘 구사하지 못했다. 절반이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을 일하고 있었으며, 2일 이내의 월 평균 휴일, 130만 원 이하의 월 평균 소득을 가지고 있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도 불구하고 휴식 없이 강도높은 노동에 시달렸으며, 고용주들은 폭언과 폭행, 신분증의 강제보관 등 불법을 자행하기도 하였다. 

고립과 침해의 공간, 숙소

가장 심각한 문제로 드러난 것은 노동자들의 주거환경, 즉 숙소의 문제였다. 고용주가 주거를 제공하는 경우가 80% 이상이었으나, 절반이 넘는 응답자들이 컨테이너 혹은 비닐하우스에서 살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주거지역에서 떨어진 외딴 농장에 거주하는 이주여성노동자들은 공포와 불편함 속에 살아야 했으며, 시공간적인 일과 휴식의 분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데도, 오히려 고용주들은 터무니 없는 숙소비를 가져가고 있었다. 특히 침실에 남녀 분리가 없거나, 침실과 욕실에 잠금장치가 없고, 고용주가 마음대로 숙소에 드나드는 환경 속에서 숙소는 일이 끝나고 쉬어야 할 공간이 아니라 언제나 긴장하고 있어야 하는 불안한 공간이 되어 있었다.  

피해자로 나설 수 없는 농업이주여성노동자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농업이주여성노동자들의 성폭력 피해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는 점이 큰 문제로 지적되었다. 설문대상이 된 이주여성노동자 중 넓은 의미의 성폭력을 경험한 여성들 12.4%였고, 다른 사람의 피해를 들은 적이 있는 사람이 36.2%나 되었다. 발표를 맡은 고려대 김정혜 교수는 직접 피해를 당하지 않더라도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다른 여성들의 피해 경험을 듣는 것 역시 일상의 공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하였다. 가해자는 한국인 고용주 혹은 관리자인 경우가 60% 이상이었으며, 근로시간 뿐 아니라 휴식시간, 행사 중에, 또한 농장과 숙소 등 일상 전반에서 성폭력이 발생하고 있었다. 이 때 가해자들은 이주노동자라는 여성들의 신분을 이용하여 사업장 변경, 직장에서의 불이익, 출입국관리사무소 신고를 무기로 위협하며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그러나 피해 여성의 대부분은 피해 대응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고, 언어실력과 정보 부족으로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도움을 청할 만한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았고, 피해가 이루어진 지 오래 지나서야 겨우 알리게 된 적도 많았다. 그 결과 성폭력 피해 이후에도 일터를 옮기지 못하고 계속 일하는 경우가 절반 가량 되었다. 변경 신청이 허가된다 하더라도 성폭력을 이유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고용주의 허락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소수의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자 지원서비스를 이용하지만, 그마저도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경찰과 상담센터, 법률지원서비스 간의 연계가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 등으로 적절하게 제공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노동환경과 주거환경의 개선과 피해자지원서비스의 결합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에 관해, 먼저 농업이주여성노동자들의 취약성을 낳는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의 시급성이 제기되었다. 특히 농어촌 지역 노동자들에 대해 근로시간과 휴식, 휴일 등에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하는 근로기준법 63조 대신 노동시간과 휴일을 보장하는 ‘농축산업분야 표준근로계약서 작성 가이드라인’ 등이 실효적으로 사용되게 하는 등 농업노동에 대한 차별없는 근로기준법 적용의 필요성이 제안되었다. 또한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주거 환경의 보장, 성폭력 피해 예방교육 및 정보의 제공, 피해 신고 즉시 사업장 변경 보장, 차별 없는 성폭력 피해지원 체계의 마련, 통번역 확충 및 법률 지원 등을 통한 공정한 사법접근권의 보장이 제도 개선의 숙제로 지적되었다.

실태조사 결과 발표 후 보고내용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김선재 고용노동부 사무관은 성폭력 사전예방 차원에서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하였으나, 이주노동자의 입국 전 교육에는 관련 내용이 들어가 있지 않고, 입국 후 농협중앙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교육에 2013년부터 점차적으로 성폭력, 성희롱 교육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사업주 대상의 교육은 의무적이지 않고, 관련 내용 또한 없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점차 보완해야 할 점으로 들었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사업장 이동의 제한에 관해서는 엄격한 제도 운영을 인지하고 있지만, 영세사업주인 고용주의 입장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창행 여성가족부 권익정책과장은 여성가족부에서 제공하는 상담, 쉼터, 병원비 지원 등 이주여성 성폭력피해자 지원서비스를 소개하며 관련 제도의 홍보와 부서별 연계, 접근성을 강화해야 함을 지적하였다. 

이어서 강성의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장은, 성폭력 피해를 입은 이주여성노동자의 경우 경찰과 검찰을 거치며 여러차례 진술하는 단계마다 어려움을 겪는데, 만약 가해자에게 무혐의 처분이 내려질 경우 여성은 비자취소라는 이중부담을 지게 된다는 점을 밝혔다. 또한 이주여성노동자들에게 경제활동을 못하는 것은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이기에 쉼터보다는 사업장 변경을 지원할 수 있는 상담이 필요하며, 신뢰할 수 있는 통역, 경찰에서 법률조력인제도의 소개를 보장하는 등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누가 가해자인가? 피해구도를 넘어선 접근의 필요

마지막으로 연세대 문화인류학과의 김현미 교수는 피해자 담론을 넘어, 누가 농업여성이주노동자 성폭력의 가해구도 안에 들어와 있는지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였다. 결국 농업이주여성 성폭력의 문제는 결국 주인과 노예처럼 작동하는 한국인 고용주와 이주노동자 사이의 권력관계 속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농촌의 위기 속에서 스스로 피해자라는 관점을 가진 고용주들은, 고용허가제가 사업주에게 부여하는 상대적 우월성을 업고 여성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준사법적, 혹은 탈사법적 권력을 최대한으로 휘두르면서도, 스스로 가해자의 위치에 선다는 자체를 부정하고 있고, 심정적으로 고용주의 입장에 서서 이주노동력을 ‘거래하는’ 동네 주민들 역시 인권침해를 묵인하는 당사자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피해자 구제, 피해자 보호에서 나아가 고용허가제, 근로감독관, 한국인 고용주, 동네 주민들, 농협중앙회가 합작해서 만들어내는 가해구도를 밝히는 것이다. 또한 조사결과로 밝혀진 성폭력 피해의 일상성과 강도, 지속성을 지적하며, 숫자가 적다고 심각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근본적인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일터와 분리된 안전한 주거공간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토론 후 청중 질의응답 시간의 마지막 순서는 캄보디아 출신의 농업여성이주노동자의 발언이었다. 시간에 쫓겨 이야기하려던 내용이 모두 전달되지는 못했지만, 마지막 한 마디는 짧고 분명했다.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한 개선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농업분야의 여성이주노동자 성폭력의 문제가 법에 의해 문제될 것 없는 환경 속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소수 분야에 종사하는 특정 노동자의 이례적인 문제로 치부될 것이 아니라, 관계된 이주노동정책, 피해자 지원 서비스, 그리고 이주노동의 현장과 이주노동자들이 놓인 취약한 위치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사안으로 이해되어야 비로소 그가 요구한 문제 개선이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글 | 이다솜 MWTV 기자단 5기

이주를 만들어내는 조건 및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사람들의 경험을 해석하고 전달하는 데에 관심이 많다. 안산의 한 이주민센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dasomlee254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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