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피해만 양산하는 ‘사업장 변경 제한’- 이주노동자의 생생한 증언이 울려 퍼지다 – 정영섭

피해만 양산하는 ‘사업장 변경 제한’- 이주노동자의 생생한 증언이 울려 퍼지다

‘고용허가제(E-9비자)는 2004년부터 실시된 외국인력제도이다. 그 전의 ‘산업연수생제’는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는 연수생 신분으로 이주노동자를 데려와 숱한 인권유린 노동착취를 발생시켜 ‘노예연수제’로 규탄받았다. 정부는 고용허가제를 실시하면서, 노동법과 제반의 권리가 보장되는 제도라고 했고 몇 년 뒤에는 UN에서 주는 공공행정상까지 받았다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고용허가제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16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될 제도로 광범위하게 비판을 당하고 있다.

그 핵심에 ‘사업장 변경 제한’ 문제가 있다. 고용허가제는 원칙적으로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지 않고 예외적으로만 가능하게 하고 있다. 우선 사업주가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근로계약이 만료되고 갱신을 하지 않는 경우에 가능하다. 즉 계약해지와 계약갱신은 사업주만 할 수 있고 노동자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준을 위반한 기숙사 제공, 사업주의 근로조건이나 부당한 처우 등 이주노동자의 책임이 아닌 경우에 사업주 허락 없이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이주노동자가 이를 증명해야 하므로 정말 어렵다. 사업주의 근로조건 위반에 해당하는 사유는 노동부장관 고시에 정해져 있다. 즉 월 임금 30퍼센트 이상을 2개월 이상 지급하지 않거나 지연해서 지급한 경우, 월 임금 10퍼센트 이상을 4개월 이상 지급하지 않거나 지연해서 지급한 경우, 최저임금에 미달해서 지급한 경우, 폭행, 성폭력, 불합리한 차별대우 등의 경우이다. 이것들을 증명하는 것은 까다롭고 오래 걸린다. 고용센터에서는 근거자료를 요구하기 때문에, 예컨대 임금문제의 경우 체불임금확인서를 근로감독관에게서 받아야 하는데 그 과정도 쉽지 않고 기간도 짧지 않다. 그리고 일단 이러한 사유들로 고용센터에 변경 신청을 해서 사업주가 알게 되면 그때부터 노동자는 사업장 내에서 모진 압박과 시련을 견뎌야 한다. 대부분의 사업주는 노동자가 다른 사업장으로 옮겨 가는 것을 싫어하고, 근로조건 위반 사유로 기록에 남으면 나중에 이주노동자 채용에 감점 요소가 되기 때문에 이주노동자가 주장하는 사유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 또 차일피일 시간을 끌게 된다. 그러면 노동자는 지치게 되고 사업주는 ‘상호합의에 의한 계약해지’를 요구한다. 사업장에서 빨리 벗어나 다른 데서 일하고 싶은 노동자는 사업주의 근로조건 위반이 아니라 상호합의 사유로 기록을 남기는 데 동의하게 된다. 그러니 한 해 전체 사업장 변경 건수 중에 ‘근로계약해지 및 계약만료’로 기록되는 사유가 80%를 넘게 되는 것이다.

사업장 변경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것은 노동자가 사업주에게 철저하게 종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런 무기가 없는 노동자가, 사표라도 내겠다고 할 수 있어야 사업주가 조금이라도 노동조건 개선을 하게 만드는 협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인데 이주노동자에게는 아무런 수단이 없는 것이다. 부당한 처우에 대해서 항의하면 돌아오는 것은 “너네 나라로 돌려 보내겠다”, “불법체류자로 만들어버리겠다” 등의 협박이다.

그래서 이주노동자 단체들은 공익변호사들과 함께 올해 3월에 사업장 변경제한에 대해 위헌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거대 로펌 ‘율촌’을 대리인으로 해서 반박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하였다. 위헌소송 결과가 언제 어떻게 나올지 예상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든 현행 고용허가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정부에 맞서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내고 생생한 피해사례들을 드러내고자 단체들이 연대하고 있는 ‘고용허가제 헌법소원 추진모임’에서는 10월 18일에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강제노동 피해 증언대회’를 열었다.

수 많은 사례들이 취합되었고 증언되었다. 어느 제조업 베트남 노동자는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한 질병 때문에 사업주에게 사업장 변경을 요청하였는데, 사업주는 노동자를 코로나 환자로 몰아서 창고방에 가두고 못 나오게 하고 전혀 사실이 아닌 내용의 서약서를 강요했다. 나중에는 폭행에 협박까지 했다. 어업에서 일하는 한 동티모르 노동자는 계약서와 달리 사업주의 강요로 여러 사업장에서 일해야 했고 최저임금 미만 장시간 노동에 통장까지 사업주가 압수하고 있었다.

밀양 깻잎밭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여성노동자들은 하루 종일 10시간 넘는 노동을 하는데도 근로계약서에 휴식시간을 2-3시간으로 사업주가 기재해 놓는 꼼수에 시달렸다.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했고 수시로 다른 농장에 가서 일해야 했다.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작업 때문에 허리병이 생겨 사업장 변경 요청을 했더니 사업주가 이탈신고를 해버려 비자를 잃게 되어 고통받고 우여곡절 끝에 겨우 회복한 방글라데시 노동자 사례도 있었다. 어느 스리랑카 노동자는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폭발사고로 동료 노동자가 사망하여 트라우마에 시달렸는데 사측이 사업장 변경에 동의해주지 않아서 6개월이나 고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적지 않은 사업주들이 사업장 변경 신고를 해주는 대가로 많은 돈을 노동자에게 요구하기도 했다. 세상에! 사표를 내고 다른 데 가서 일하기 위해 사업주에게 수 백 만원을 줘야 한다는 것이 믿겨지는가.
(증언대회 자료집 참조 http://nodong.org/data_paper/7792962 )

위헌소송 대리인단의 정진아 변호사는 “현행 고용허가제도는 국제노동기준이 정한 강제근로 금지 원칙에도 위반하며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평등권, 신체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근로의 권리를 침해합니다.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하는 현행 고용허가제의 사업장변경 제한은 반드시 사라져야 할 제도입니다.”라고 결론 지었다.

예전에 이 문제에 대해 관련 노동부 공무원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노동할 수 있는 다른 체류비자를 가진 이주민들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않는데, 왜 유독 고용허가제 노동자만 사업장 이동을 제한하느냐고 말이다. 대표적으로, 중국과 구(舊)소련지역 출신 한국계 노동자인 방문취업제(H-2비자)에 대해서는 사업장 이동 제한이 없다. 그는 방문취업제 노동자도 원래는 사업장 변경을 자유롭게 해서는 안되었다는 식으로 답했다. 한 푼이라도 돈을 더 주는 곳으로 노동자들이 옮기게 되어 열악한 사업장의 인력난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도 말이 안되는데, 왜냐하면 고용허가제든 방문취업제든 그걸 허가받은 사업장에서만 노동자들이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부의 생각은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1)이주노동자 사이에 위계와 차별을 만들어 서로 분리시킨다. 2)가장 하층의 동남아·서남아 출신 이주노동자는 제일 열악한 일을 감내하도록 철저히 사업주에게 종속시킨다. 3)무권리 상태를 유지시켜 정착을 방지한다.

그러나 정부와 사업주 중심으로만 설계된 고용허가제도가 지속될 수는 없고 그럴 근거도 부실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계속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이주노동자의 인권·노동권을 촉구하고 목소리를 더 모아 연대하면 하나하나 바꿔갈 수 있을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생생한 증언을 더 크게 울려 퍼지게 하자.

글 | 정영섭 (민주노총미조직전략 조직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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