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종적․민족적 편견이 불러낸 탁월한 상상력 – 외국인 선원 이해를 위한 한국인 선원 가이드북 어선편

인종적․민족적 편견이 불러낸 탁월한 상상력 

– 외국인 선원 이해를 위한 한국인 선원 가이드북 어선편

이한숙 (이주와 인권연구소 소장)

지난 5월 17해양수산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이 외국인 선원 이해를 위한 한국인 선원 가이드북 어선편’(이하 가이드북)을 발간했다다음날 새벽 이 가이드북이 외국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조장하는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뉴스1)가 인터넷에 올라왔고조간신문에도 실렸다. “다국적 선원 간 화목한 선내생활을 위한 지침서가 되기를 기대하며 발간된 가이드북은 바로 그 날 폐기가 결정되었다.2)

가이드북은 페스카마15호 선상살인사건에서 교훈을 찾으며 서두를 시작했다이 사건은 1996년 중국동포 선원 6명이 한국인 선원 11명을 살해한 비극적인 선상반란사건이었다페스카마호의 선원 이주노동자들은 살이 터지고 이가 부서지는 일상적인 폭행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학대와 모욕고된 노동과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중도하선을 요구했다그러나 선장은 중도하선하면 조업 손실비는 물론이고 중도하선지까지 가는 경비를 물리겠다중도하선지에서 구류를 살게 하고 그 체류비도 물리겠다는 등 협박했다중국동포 선원들은 거액의 송출비용을 물고 배를 탔고월급 대부분을 담보 잡힌 채 일했었다때문에 이미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었는데 이제 자손대대로 갚아도 갚을 수 없을 만큼 빚이 불어나게 됐다는 절망이 이들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았다.

그런데 가이드북에 따르면 페스카마호 사건은 한국선장 및 간부선원들이 평생 사회주의 국가에서 살아온 조선족 선원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서 조선족 1명의 어깨를 후려쳤고선장이 사과한 후에는 오히려 인도네시아 선원들을 역차별해서 지휘통제권을 상실한 탓에 일어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페스카마호의 한국선장 및 간부선원들은 이해하지 못했던 그 문화를 가이드북을 만든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인도네시아 선원들은 몰라도 잘 묻지 않는 성향이 있어 업무를 지시할 때는 상세하고 구체적이어야” 하고, “일반적으로 순진하지만쉽게 흥분하고 반발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특별한 주의가 요망되며(28), “승선근무 중 가장 답답한 사항은 한창 일이 바쁜데 자기한테 주어진 일에만 몰두하고능동적으로 바쁘고 급한 일부터 처리하는 센스가 부족하다는 점”(31)이다.

베트남 선원들은 아직까지 농경생활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 경향이 있고, “일반적으로 한국인은 쉽게 화내고 빨리 잊어버리지만베트남인은 상대방이 화내고 욕하는 말을 마음에 담아두는 경향이 있으며 감정이 복받치면 다른 동남아시아인들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거친 행동을 나타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33)

중국 선원들은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의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지시한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바쁘고 급한 일부터 처리하는 센스가 부족하며”, “남방선원들과 마찬가지로 자진해서 일을 하는 경향이 없으니” “한국선원들이 솔선수범해야 한다.(41)

필리핀 선원들은 질문하는 행동을 부끄러운 행동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지시사항을 잘 모르면서도 이해하는 척하는 경향이 있어 실수를 해서 위험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45) “인내가 부족한 편이고 시키지 않는 일은 하지 않고 미루는 편이며 자존심이 강해 자신의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중도덕이 부족한 편이다.(47)

가이드북이 하루 만에 그렇게 쉽게 폐기되어 버린 것은 좀 아깝다.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의 국민들“, ”남방선원들“, ”동남아시아인들에 대한 인종적․민족적 편견이 얼마나 풍부한 상상력을 불러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에 이보다 더 좋은 사례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통역지원이 없어서 지시사항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주어진 일만 해도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고된 노동일상적인 폭언․폭행인권침해에 대한 분노와 반발을 어떻게 문화 차이로 둔갑시킬 수 있는지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이드북이 이 놀라운 상상력의 원조는 아니다가이드북은 선원 관리업체나 수협을 비롯한 선주단체들의 교육자료에서 익히 보았던 내용을 종합하고선원이주노동자 고용으로 이득을 보는 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이야기를 받아썼을 뿐이다때문에 가이드북은 어떤 목적에서라도 욕설기합구타폭행 등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반복해 강조하고 있지만사실은 이런 인간들을 욕하고 때리지 않고 어떻게 일을 시키겠느냐는 변명이 짙게 녹아 있다놀라운 것은 정부기관이 세금을 들여 이런 변명을 받아 적게 했다는 것이다.

비극적인 사고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재발을 막을 수 없다안타깝게도 한국사회는 페스카마호 선상반란사건의 원인과 정면으로 대면하지 못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구조적 원인은 질기게 살아남았고선원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은 크게 개선되지 못했다당연히 비극은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다그 원인을 뻔히 알면서도 갖가지 이해관계를 지키려고 모른 척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가이드북을 만든 사람들그들이 속한 해양수산부는 애초에 그 원인을 파악할 능력이 없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1) 한국일보 2016.05.18, “중국 선원은 불결하고 필리핀 선원은 인내 부족?”

2) 한국일보 2016.05.18, [뒤끝뉴스] ‘가이드북 사고로 드러난 정부의 무신경

▲5월 17일 해양수산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이 발간한 ‘외국인 선원 이해를 위한 한국인 선원 가이드북 어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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