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수요법률살롱] 제5화. 유령이 된 아이들 – 박상능 변호사

[‘친구’의 수요법률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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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왠지 어렵고, 복잡하다는 생각은 이제 그만.
이럴 때 법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곳이 없어 답답했다면
이제 ‘친구’의 수요법률살롱을 찾아오세요.

격주 수요일 <이주민센터 친구> 변호사들이 이주민에게 꼭 필요한 법률 지식을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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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이 된 아이들

 

모든 아이들은 출생 후 즉시 등록될 권리가 있습니다(유엔아동권리협약 제7조). 하지만 여기, 포착되지 않는 아이들, 유령으로 살기를 강요받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사실 ‘미등록 이주아동’에 관한 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직접당사자인 아이들이나 이해관계인일 수밖에 없는 이주민가족들은 물론이고, 이주민 인권에 대해 조금이라도 고민해본 경험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다시, 위 지면을 빌어 이런 케케묵은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관계당국에 문제제기하고 해결을 촉구해왔지만, 정작 달라진 것 하나 없이 표류하는 정책과 정책 사이에서, 죄 없는 아이들이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유령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언가가 바뀌지 않는 한 그만큼의 아이들이 또 다시 ‘미등록 이주아동’이라는 삭막하기 그지없는 꼬리표를 달고, 유령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올해 여름쯤이었을 겁니다. 생모에게는 버림받았으나 생모보다 더한 사랑으로 키워주는 여성 손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던 미등록 이주아동이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녹록치 않은 환경 속에서도 행복했던 여자와 아이의 삶은, 여자가 더 이상 자신이 암에 걸린 사실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면서 파국으로 치달았습니다. 당장 아이의 거취가 문제되었습니다. 여자와 아이에게 닥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작은 테이블 두 개를 붙여놓고 둘러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는 미등록 아동이었고, 베이비박스에 담겨 어딘가에 버려지지 않는 한, 현행법이‘행려자’에게 제공하는 것만큼의 보호조차 받을 수 없었습니다. 순간 누군가에게서 ‘아이가 차라리 행려자였다면…….’이라는 말이 자조와 뒤섞여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 기묘하고 처연한 장면이 아직도 이렇게나 생생한 건, ‘아이들’, 그러니까 제도 안으로 편입되는 것조차 완강히 거부당한 채 부외자로 주변을 서성거릴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무부는 2013년도부터 ‘이주아동의 학습권 보장’이라는 명목 하에 최장 15세 또는 중학교과정 수료 시까지 학생과 그 부모에 대한 강제퇴거집행을 유예한다는 지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최근 ‘아동분야사업 안내지침’을 통해 보호조치가 필요한 무국적 및 외국국적, 미등록 상태의 아동에 대해서도 적절한 보호를 하도록 규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직접적·외부적 구속력 없이 단지 행정당국의 내부적 업무처리를 위해 마련된 강제성 없는 지침에 불과하여,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습니다.

이러한 단순 보여주기 식의 선심행정은, 오로지 대한민국 국민의 출생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는 현행 가족관계등록법과 강제출국이라는 실질적 공포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수많은 (불법체류) 이주민가정의 현실과 맞물려 지금도 끊임없이 미등록 아동들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적자가 아닌 아동은 출생증명서가 없습니다. 신분증명이 불가능하니 이를 필요로 하는 모든 상황들로부터 철저히 배제됩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니 병원치료를 받는 것조차 요원합니다. 병원비가 무서운 부모 앞에서 아이들은 제대로 아플 수도 없습니다.

아이들이 맞닥뜨리는 부조리는 비단 위 상황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아이들은 체류자격 유무와는 무관하게 일단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전입 신청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미등록 이주아동은 법이 보장하고 있는 의무교육대상이 아니므로 이들에게는 취학통지서가 발부되지도, 취학이 독려되지도 않습니다. 초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거주지에 속한 학교장에게 입학 또는 전학을 신청할 수는 있지만 강제조항이 없어, 학교장이 아이들의 입학이나 전학을 거절하더라도 그뿐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고등교육을 밟는 것은 더더욱 드문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본적인 학교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한국인의 보증이 없으면 병원치료도 받기 어려우며,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사회복지사업법 등 그 태생이 사회적약자의 보호로부터 출발하는 각종 법령들에서조차 철저히 소외되고 있는 아이들은, 그러나 다른 무엇도 아니고, 그저 아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보호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국적이나 체류자격과 무관하게 아이들에게 이름이 있는 삶을, 학교를, 친구들을, 꿈과 가능성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보편적 출생신고가 필요한 지점이고, 보편적 출생신고 도입이 녹록치 않다면 보다 구속력 있는 법령의 제·개정을 통해 허공에 떠 있는 아이들이 단단하게 발 디딜 수 있는 현실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모든 아이들은 출생 후 즉시 등록될 권리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유령이 아닙니다.

글 | 박상능 변호사(법무법인 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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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다면
이주민센터 친구 이메일(friend79law@gmail.com)로 보내주시면

그 중에 한 가지를 선별하여 법률살롱에서 자세히 설명해 드릴게요.

<이주민센터 친구>는 평화·인권·공존의 가치를 바탕으로 한국에 머무는 다양한 이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생활하고 있는 비영리단체입니다. 2012년 영등포구 대림동 단칸방에서 첫 발을 내딛은 이후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주민을 위한 법률지원, 생활 자립지원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재미나게 해오고 있습니다.

Homepage : http://www.chingun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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