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수요법률살롱] 제4화.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 마한얼 변호사

[‘친구’의 수요법률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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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왠지 어렵고, 복잡하다는 생각은 이제 그만.
이럴 때 법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곳이 없어 답답했다면
이제 ‘친구’의 수요법률살롱을 찾아오세요.

격주 수요일 <이주민센터 친구> 변호사들이 이주민에게 꼭 필요한 법률 지식을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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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아주 먼 옛날, 백발 성성한 노인이 부인이 말리는데도 기어코 귀신에 홀린 듯 강에 들어가 죽자 슬픔에 빠진 부인이 부른 공무도하가라는 시가 있다.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그예 물을 건너시네. 물에 휩쓸려 돌아가시니. 가신 임을 어이할꼬.” 라는 짧은 시인데, 한국에서 현재까지 전해지는 제일 오래된 시라고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하면, 한국에서 제일 오래된 시는 남겨진 사람의 슬픔을 노래한 시이다. 그리고 수천 년이 흐른 지난 금요일 이주민센터 친구에서도 진한 슬픔을 삼켜야 했다.

 

지난 주 금요일 그녀의 형제들로부터 “소액 체당금”이 입금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녀가 그토록 입금되길 바라며 몇 번이고 확인하던 그 돈이 드디어 들어왔는데, 안타깝게도 이제 그녀는 이 세상에 없다. 며칠 전, 그녀는 이 돈을 기다리다가 갑자기 뇌출혈로 “그예 물을 건너”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받지 못한 급여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견뎌야 했는데, 그 스트레스가 사망의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와서 받은 돈 몇 푼은 누구에게도 기쁨이나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 돈을 일찍 받았다면 건강을 회복했을까 하는 상상은 오히려 분노만 돋울 뿐이고, 다른 생각을 해도 그저 황망하고 허무하다.

외국인인 그녀는 단기체류 자격인 C-3비자로 한국에 입국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김치 공장에서 일했다. 마침 한국은 김장철이라 절인 배추 주문이 폭증하던 시기였고, 그녀는 72일동안 쉬는 날 없이 하루에 12시간 이상 절인 배추를 포장하는 일을 했다. 그녀는 녹슨 기계처럼 빡빡한 업무 가운데서도 다정함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함께 한국에 입국한 청각 장애인 동료와 가족처럼 서로 의지하며 지냈다. 그 동료가 병가를 낼 만큼 아팠던 날은 퇴근 후 격무에 시달린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밤 늦게까지 간호해 주기도 하였다. 그녀는 기계처럼 일을 하면서도 인간됨을 포기하지 않았던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와 동료가 김장철이 끝나 귀국할 때가 되자 이상한 일이 생겼다. 72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12시간씩 근무했는데, 손에 쥘 그녀 몫의 급여는 410만원이 전부였다. 한 겨울에 컨테이너에서 생활한 숙박비, 커터 칼날이 발견된 김치에 대한 배상액이 다 빠진 금액이라는 것이 공장 측의 설명이었다. 심지어 공장은 그마저도 주지 않고, 그녀와 동료 둘이 합쳐 50만원이 든 봉투 하나만 주어 서울로 올려 보냈다. 서울에서 이 소식을 들은 그녀의 친구가 이주민센터 친구에 알렸다. 센터에서 전화하자 공장은 각각 100만원씩 더 보내주며, 남은 급여 280여 만원은 나중에 수금하여 갚겠다고 했다. 체류기간이 끝난 그녀와 동료는 일단 이 돈만 가지고 고향에 돌아가고 이후의 처리는 센터에 의뢰했다.

그 후 센터에서 독촉전화를 하면 공장은 먼저 갚아야 할 자재 값도 있고, 받아야 할 돈도 많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사장님이 제일 먼저 갚아야 할 돈은 노동자의 임금이라고 외쳐도 허공에 대고 짖는 꼴이었다. 그마저도 몇 주 안가 사장님과 담당자는 전화를 안 받기 시작했다.

더 기다릴 것 없이 고용노동청에 밀린 임금을 신고하는 “임금체불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고용노동청을 통해 같은 공장에서 그녀처럼 임금을 받지 못해 진정한 사람들이 예닐곱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김치 공장은 상습적이었다. 포기하고 귀국한 외국인도 있을 터였다. 혹시라도 김치 공장 사장이 미수금을 받으면 급여부터 입금할 것이라고 기대한 것이 얼마나 순진한 기대였는지 후회가 되었다. 그래도 고용노동청은 김치 공장 사장이 곧 돈을 마련하겠다고 하니 한 달만 더 기다려보자고 하는데, 속이 점점 더 타 들어갔다.

처음 말한 한 달에 다시 한 달이 지난 5월이 되어서야 공장에서 그녀에게 임금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체불 임금 등 사업주 확인서”가 발급되었다. 그 기간 동안에도 공장은 돌아가고 있었지만 센터에서 거는 전화는 받지 않았다. 곧바로 “체불 임금 등 사업주 확인서”를 가지고 임금을 지급하라고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한 시간을 지나 8월에 드디어 법원으로부터 “이행권고 결정”을 받았다. “이행권고 결정”은 금액이 작은 사건 중 법원이 상대방에게 원고가 청구한대로 돈을 지급하라고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상대방이 이 결정을 받고 2주 안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이행권고 결정”은 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다. 이러한 “이행권고 결정”을 가지고 근로복지공단에 “소액 체당금”을 신청할 수 있는데, “소액 체당금”은 국가에서 사업주를 대신해 체불 임금 피해 근로자에게 400만원 한도에서 체불된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장장 9개월을 기다린 임금이 곧 송금 될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전화기 건너편에는 그녀가 아닌 그녀의 형제들이 있었다. 들뜬 분위기는 이내 가라앉았고, 그녀를 위해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자책했다. 한번만 더 공장에 가서 사장에게 돈을 달라고 해볼걸, 고용노동청에 전화를 한번이라도 더 해볼걸, 하루라도 빨리 소장을 제출할걸. 남겨진 사람은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게 남는 법이다.

 

다시 시를 읊어 본다.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이미 물 건너편으로 건너가 다시 돌아올 리 없는 그녀를 한번 더 떠올려 본다. 마지막으로 자료를 정리하며 증거로 받은 사진 속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니, 이런 분노와 슬픔을 동력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라고 나무라는 것 같다. 72일동안 12시간씩 근무하는 강행군 속에서도 씩씩했던 것처럼, 9개월 동안 아픈 사실도 숨기고 좋은 소식을 기다린 것처럼, 절망은 빠지거나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인내하고 넘어서야 할 것이라고 말이다. 슬픔을 넘어서 그녀와 같은 일로 또 다시 슬퍼할 일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남겨진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글 | 마한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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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다면
이주민센터 친구 이메일(friend79law@gmail.com)로 보내주시면

그 중에 한 가지를 선별하여 법률살롱에서 자세히 설명해 드릴게요.

<이주민센터 친구>는 평화·인권·공존의 가치를 바탕으로 한국에 머무는 다양한 이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생활하고 있는 비영리단체입니다. 2012년 영등포구 대림동 단칸방에서 첫 발을 내딛은 이후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주민을 위한 법률지원, 생활 자립지원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재미나게 해오고 있습니다.

Homepage : http://www.chingun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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