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수요법률살롱] 제17화. 우리는 이상한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 박상능 변호사

[‘친구’의 수요법률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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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왠지 어렵고, 복잡하다는 생각은 이제 그만.
이럴 때 법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곳이 없어 답답했다면
이제 ‘친구’의 수요법률살롱을 찾아오세요.

격주 수요일 <이주민센터 친구> 변호사들이 이주민에게 꼭 필요한 법률 지식을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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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상한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로스쿨에 다니던 시절의 일입니다.
수강과목들 중에 현역 경찰관 한 분이 직접 수업을 진행하시는 ‘경찰실무’라는 강의가 있었습니다. 수사권을 둘러싸고 검찰과 경찰의 힘겨루기가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던 시절이었고, 개인적으로도 날것의 사건들과 처음 대면하게 되는 경찰수사 단계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설레는 마음으로 수강신청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아마 첫 수업이었을 겁니다.
교수님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녹음 파일을 재생시키는 순간 스피커를 통해 납치된 여성이 도움을 요청하는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여자가 숨어 있는 공간으로 누군가가 거칠게 난입하는 소리, 테이프를 잡아 뜯는 소리, 몸에 테이프를 감는 소리, 애원하는 피해자의 목소리, 공포에 질리고, 흐느끼는 작고 나약한 소리들이 교실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강의실은 항거 불능의 거대한 폭력 앞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내동댕이쳐진 한 인간의 압도적인 불행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들의 무력함과 슬픔으로 까맣게 죽어버렸습니다.

그것이 그저 잘 만들어진 실감나는 스릴러 영화 한 토막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지만, 불행하게도 아니었습니다. 녹음 파일은 112 콜센터에 접수되었던 특정 사건 피해자의 육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진짜 음성 클립이었고, 이후 미흡한 초동대응과 골든타임을 놓친 경찰수사가 맞물려 피해자는 13시간 만에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해체된 채 발견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세간에 일명 ‘오원춘 사건’으로 잘 알려진 수원연쇄토막살인 사건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아실지 모르겠지만 오원춘 사건이 그렇게나 악명 높았던 것은 그것이 단순히 납치성폭행과 연관되어 있다거나 잔인하게 사람을 토막살인 했다는 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명백히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인육이 공급되고 소비되는 시스템 어딘가에 오원춘이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의구심이 사건을 더욱 기괴하고 공포스럽게 만들었던 거죠. 오원춘에 의해 자행된 납치 살해가 인육시장에 인육을 공급하기 위한 작업일 수도 있다는 점이 실제 재판에서 논의되기도 했습니다.

이 즈음에서 부끄러운 자기 고백을 하나 하자면, 저는 머릿속에서 사건을 재구성해 나가면서 점점 더 무서워졌습니다.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고, 직관적인 공포와 혐오에 조금씩 잠식되고 있었다는 것이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그러고 보니 나, 며칠 전에도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시고 친구들과 헤어져 혼자 흥얼거리며 모세혈관 같은 골목을 걸어 올라갔었는데… 그 때 혹시 나, 조금 위험했던거 아냐?’라던지 ‘우리 집과 가까운 놀이터 근처에 중국인이나 조선족들이 꽤 많이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정말 괜찮은 걸까’ 따위의 생각들이 두서없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했습니다. 제 머릿속에서는 범죄자 오원춘의 자리에서 오원춘이 끌어내려지는 대신 오원춘이 가지고 있었던 수많은 정체성들 중 가장 낯선 ‘조선족’이라는 정체성이 그 자리를 대체해 버렸습니다. 여러모로 기괴하기 짝이 없는 사건이었고,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음’에서 오는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저는 이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함을 익숙지 않은 정체성인 ‘이주민’ 혹은 ‘조선족’이라는 관념과 연결시켜 치워버렸던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과정을 비단 저만 겪은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실제로 오원춘 사건 이후 ‘조선족은 불순하고 위험하다’는 주홍글씨가 자연스레 사회 전면으로 급부상하였고, 조선족 출신 이주민들은 여러 매체를 통해 그 당시, 자신들이 얼마나 조심스럽고 불유쾌한 삶을 살아야 했는지 술회하고 있습니다. 새로 살 집을 구하거나 일할 곳을 찾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고, 조선족이 모임이라도 가지려 치면 마치 목줄을 매지 않고 울타리 밖으로 나온 위험한 동물을 보는 것만 같은 주위 시선에 서럽고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잠재적 범죄자집단 혹은 위험집단으로 간주하면서 곁을 주기는커녕 냉대하고 불편해하는 시선에 상처받기 일쑤였습니다. 매체를 통해 시작된 혐오가 끊임없이 생산, 재생산되고 확대, 강화되면서 일상을 영위하는 다양한 공간에서 ‘조선족’ 혹은 ‘이주민’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역전된 공포와 폭력 아래 노출되었습니다. 혐오의 시대였던 겁니다.

어느 사회, 어느 집단을 막론하고 익숙하지 않은 자, 나와 문화적 DNA를 공유하지 않는 자, 유입된 자, ‘타자화하기 좋은’ 타자에 대한 ‘낯섦’은 막연한 공포와 연결되고, 이는 곧 비이성적 혐오와 직결됩니다. 타자를 향한 이러한 혐오의 정서는 평상시에는 이른바 ‘문명사회의 근엄한 자기검열기제’ 아래 희석되거나 공공연하게 드러나지 않고, 비밀스럽고 은밀한 경로를 통해 수면 아래에서 활동하지만, 오원춘 사건과 같이 사회 구성원 전체의 공분을 살만한 사건이 발생하는 순간,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노도와도 같이, 일종의 광기처럼 전 방위적으로 분출되기 시작합니다. 내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내 세금을 낭비하는 부외자라는 꼬리표는 치안을 어지럽히고, 강력범죄를 자행하는 통제 불능의 불순한 존재라는 주홍글씨로 강화됩니다. 오원춘은 단지 오원춘에 불과하지만 혐오의 논리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혐오는 광기와 닮아있고, 혐오의 대상은 집단적 혐오 아래에서 숨죽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소수자, 부외자들이 존재합니다. 맥락도, 결도 다르지만 타자화 되어 ‘우리’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데 활용됩니다. 여성이 그렇고, 성소수자가 그렇습니다. 이들 집단에 비해 이주민 정체성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만큼은 활발하게 논의되고 성토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속도감으로 난민, 이민자, 이주민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고, 그들을 대상으로 한, 이 집단적 혐오의 실체와 현주소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한 순간은 다른 어느 때도 아닌 ‘지금, 이 순간’입니다.

 

그리고 깨닫게 될지 모릅니다. 우리가 어떤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말입니다.

우리는 이상한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글 | 박상능 변호사(법무법인 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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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다면
이주민센터 친구 이메일(friend79law@gmail.com)로 보내주시면

그 중에 한 가지를 선별하여 법률살롱에서 자세히 설명해 드릴게요.

<이주민센터 친구>는 평화·인권·공존의 가치를 바탕으로 한국에 머무는 다양한 이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생활하고 있는 비영리단체입니다. 2012년 영등포구 대림동 단칸방에서 첫 발을 내딛은 이후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주민을 위한 법률지원, 생활 자립지원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재미나게 해오고 있습니다.

Homepage : http://www.chingun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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