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이주민영화제 in 춘천] 우리는 누구여야 하지?

우리는 누구여야 하지? 찾아가는 이주민영화제 in 춘천

오랜만에 itx청춘 열차를 탔다. 올 해 첫 번째로 열리는 공동체상영 ‘찾아가는 이주민영화제 in 춘천’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번 공동체상영은 춘천에서 이주민인권신장을 위해 해마다 상영회와 문화활동을 해오고 있는 ‘더불어이주민+’와 함께 준비했다. 열차를 타본지도 오래됐고 코로나 때문에 서울 근교에만 있다가 외출해서인지 조금은 낯선 여행이었다. 열차에 올라 책을 읽을 요량으로 가방을 뒤적이는데 코로나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안내방송은 예방수칙과 함께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승객은 즉시 하차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도착한 곳은 ‘커먼즈필드 춘천’. 이주민방송 정혜실 대표가 먼저 도착해 있었고 연이어 상영작 <혜나, 라힐맘>의 로빈 감독과 주인공 혜나, 라힐이 도착했다. 전부터 알고 지내던 감독과 배우들이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혜나, 라힐맘>은 이주민영화제 사전제작지원작으로 방글라데시 출신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혜나’가 엄마가 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작품이다. 감독은 주인공 혜나의 남편으로 영화 속에서 질문자로 등장한다.

ⓒ 더불어이주민+
피부색과 외모에 대한 낙인, 그리고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왜 이 영화를 추천해주셨나요?’ 진행을 맡은 더불어이주민+ 김승희님의 첫 질문에 정혜실 대표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인종차별적인 발언과 시선은 사회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오는 이주여성들에 대한 성상품화는 정말 노골적이죠. 다문화 자녀들의 경우, 한 세대가 지나 그 아이들이 부모가 됐지만 여전히 이질적인 존재로 바라봅니다. 이주노동자는 일 하느라 한국말, 한국문화와 친숙해질 시간이 없고 결혼이주여성은 육아와 노동의 이중고로 시간이 나질 않습니다. 심지어 한국말을 잘하면 도망을 간다거나 대든다는 이유로 한국어를 못 배우게 하는 경우도 있어요. 실제로 이런 이유로 상당수의 이주민이 한국말을 못 배우고 어울리지 못하면서 경계를 강요받기도 합니다. 반대로 한국말이 너무 유창하면 왜 그렇게 한국말을 잘하는지 일일이 설명을 해야 하고요. 이 모든 게 피부색과 함께 고스란히 차별적인 질문으로 다가옵니다. <혜나, 라힐맘>은 앞서 말한 내용들을 다 담고 있어요. 이 자리에 감독님도 와계시지만 저희 이주민영화제 사전제작지원작이라서가 아니라 작품적으로도 훌륭하고요.(웃음)”

ⓒ 더불어이주민+
그게 얼마나 사람을 피곤하게 하고 무례한 행동인지 말하고 싶었어요.

로빈 감독은 <혜나, 라힐맘>을 만들게 된 동기에 대해 꼭 해보고 싶은 얘기였다며 목소리에 힘을 줬다.

“혜나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국적도 한국인데 왜 이방인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어느 나라에서 왔냐’는 질문을 평생 듣고 살았는데 이제 그 질문이 ‘라힐’에게까지 갈 것 같아요. 이걸 혜나의 입을 통해서 들려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게 얼마나 사람을 피곤하게 하고 무례한 행동인지 말하고 싶었어요.”

로빈 감독이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말할 때마다 웃음이 터져 나왔는데 중요한 대목을 말할 때는 모두 숙연해졌다. 그건 우리가 TV에서 익숙히 봐왔던 전시되는 고충, 하소연이 아니라 이야기의 주체가 능동적일 때 나타나는 무게감 같은 것이었다. 같은 내용이라도 말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결을 갖기 때문이다.

ⓒ 더불어이주민+
이주민 스스로 내는 목소리는 절대 외부에서 만들어지지 않아요.

로빈 감독의 말이 끝나자 내게 질문이 돌아왔다. 이주민당사자 영화제작과 이주민독립영화 인큐베이팅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이었다.

“이주민 스스로 내는 목소리는 절대 외부에서 만들어지지 않아요. 당장 TV만 봐도 그렇고 다문화 관련 지원프로그램도 정책의 일환으로 진행될 뿐입니다. 이 문제는 이주민영화감독군이 자리를 잡거나 이주민독립영화 제작기금이 조성되거나 지속가능한 시스템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지금은 그걸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런 노력들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지만 아직까지는 개별적이고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이것이 이주민영화제가 제작지원을 포기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건 대부분의 제작 지원처럼 체류자격과 한국국적을 전제로 해서는 안됩니다. 이주 문제를 다루는 작품들을 꼭 이주배경이 있는 사람이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당사자가 화자가 되서 능동적으로 만들어지는 작품은 앞서 로빈 감독의 작품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결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이런 이야기들이 주변부로 밀려나거나 배제되면 우린 주류 미디어가 만든 콘텐츠를 중계하는 역할밖에 할 수 없거든요. 이주민영화 사전제작지원과 이주민독립영화 인큐베이팅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방금 본 <혜나, 라힐맘>이 그렇게 만들어졌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함께 나누고 싶은 말이 있다면?

중간중간 더불어이주민+ 김승희님의 질문을 들고 있으면 그 질문들이 얼마나 많은 생각 뒤에 나온 것인지 알 수 있다. 그건 정보와 지식 차원이 아닌, 질문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태도 같은 것인데 이게 기사 몇 개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질문과 답이 오가다 정혜실 대표가 공동체 상영에 대한 소감을 말할 때는 나와 생각이 똑같아서 놀랐다.

“이주민 관련단체들이 참 많은데요. 최근에 코로나도 그렇고 많이들 힘들어 하세요. 저희도 그렇고요. 그런데 여기 춘천, ‘더불어이주민+’처럼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는 곳은 드물어요. 그런 점에서 저희들은 큰 자극을 받고 있어요. 영화제를 매년 개최하는 게 어려웠고 또 소외된 지역을 찾아간다고 마련한 공동체상영인데 거꾸로 더불어이주민+가 저희를 찾아와준 느낌이예요. 오히려 힘을 받고 갑니다.”

로빈 감독은 가족을 찍은 게 정말 힘들었고 영화 속에 담지 못한 이야기도 많았다며 관객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지 말고 ‘어디 살아요?’, ‘어느 동네 살아요?’ 이렇게 물었으면 좋겠어요. 사람이 처음 만나서 서로 알지도 못하는데 개인 신상, 가족관계, 국적, 수입 같은 걸 묻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친해지면 알게 되는데 만나자마자 전라도, 경상도 이런 거 알아서 뭐하겠어요. 이 영화를 보고 앞으로 외국사람을 만나면 꼭 그렇게 말했으면 좋겠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관객 한 분이 로빈 감독에게 질문을 했다.

“로빈 감독님은 어디 사세요?(웃음)”
“저요? 저는 인천에 살아요. 전에는 마석에서 살았는데 지금은 인천에 있어요.”

모두 한바탕 웃고, 나도 마지막 인사말을 드렸다.

ⓒ 더불어이주민+

“<혜나, 라힐맘>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혜나’는 피부색이 다른 한국국적의 사람이기도 하지만 엄마이고 앞으로 육아와 노동을 짊어지는 여성으로서의 삶이 이어질 거예요. 그래서 전 혜나를 지금 보여지는 모습으로 고정해서 바라보기보다 ‘변화하는 주체적인 한 여성’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코로나로 드러난 혐오적인 시선과 차별들이 많은데요, 이 문제에 대해서도 동료로서 이웃으로서 일상적인 대화들을 많이 나눴으면 좋겠어요.”

다들 한번 꺼내놓으면 끊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있어서 자리가 길어졌지만 2시간 훌쩍 넘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상영회가 끝나고 더불어이주민+’에서 직접 만든 앞치마를 하나씩 선물해주셨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단체사진이란 걸 찍었다.

올라오는 열차 안에서 코로나 안내방송을 다시 들으며 그동안 체류자격 때문에 마스크 하나 제대로 안내받지 못한 사람들이 떠올랐다. ‘우리는 누구여야 하지?’ 하고 물었던 혜나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내게로 돌아왔다.

소통 없는 거리두기란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

ⓒ 더불어이주민+

 

 

글 | 김은석 (이주민영화제 집행위원장)
사진 | 더불어이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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