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인종차별에 관한 역사를 다룬 에세이 다큐멘터리-이 땅을 몰아내다(Purge This Land)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인종차별에 관한 역사를 다룬 에세이 다큐멘터리(Essay Documentary)

‘이 땅을 몰아내다(Purge This Land)’

 

올해 19회를 맞은 전주국제영화제(Jeonju International Film Festival)에 다녀왔다. 전주국제영화제는 5월 3일에서 12일까지 열리는 영화인들과 관객들을 위한 축제이다. 영화제는 새롭고 실험적인 작품들이나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들이 국내외 작품들로 채워지고 전주객사를 중심으로 짧은 기간이지만 오로지 영화만을 위해 축제를 벌인다. 이주민방송MWTV는 매년 10월이면 서울에서 열리는 이주민영화제(Migrant’s Film Festival)에 상영할 만한 영화를 찾기 위해서 5월 9일부는터 11일까지 잠시 다녀왔다. 그 중 꼭 함께 이야기를 나눌만한 영화 세편을 골랐다. 그 중의 첫번째가 바로 오늘 소개할 영화 ‘이 땅을 내몰다(Purge This Land)’이다.

이 영화는 백인인 존 브라운(John Brown)이라고 하는 사람의 노예해방운동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미국사회에서 현재까지 벌어지고 있는 인종차별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는 에세이 다큐멘터리이다.

막상 영화가 시작되었을 때 스크린을 바라보며 기대한 것과는 달리 검은 화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한글 자막 뿐이었다. 사실 자막이 없었다면, 검은 화면을 통해 들리는 것은 이 영화를 만든 리안느 슈미트(Lee Anne Shumit) 감독의 나래이션 뿐이었을 것이다. 이후 이 영화는 풍경과 나래이션만을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우거진 수풀에서 노예폐지론자 존 브라운의 역사적이지만 전혀 보존되지 않은 낡은 나무 팻말의 모습과 노예해방운동의 역사적 흔적이 있는 장소를 추적한다.이미 폐허가 되었거나 더 이상 사람의 모습을 찾을 수 없는 건물과 주거지 그리고 교회 들을 보여주면서 벽화와 포스터 그리고 그래피티 등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흑인들을 위해 싸운 한 사람의 영웅적인 서사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의 백인들의 노예제도의 부당함과 폭력성 그리고 해방운동의 과정에서 일어난 서로를 향한 학살을 솔직하게 보여주면서 최근까지 일어난 흑인들의 이유 없는 죽음과 법의 부당한 집행 그리고 L.A 폭동과 트럼프의 당선 이후 미국사회 곳곳에 일어나는 인종차별에 관해 이야기하는 에세이다. 거기에 감독은 슬며시 자신의 이야기를 삽입한다. 그녀와 뮤직아티스트인 남편 그리고 그 사이에 태어난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넣음으로써 이야기에 현재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든 이유가 남편 때문이 아님을 프론트 라인(관객과의 만남을 위한 세션)에서 말한다. 이미 결혼하기 전부터 존 브라운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만들어진 이 영화는 바로 오마바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그 시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 낡아버린 건물 벽 밑으로 떨어져 있는 포스터와 함께 ‘오마바는 백인이다’라는 그래피티가 한 쪽 벽면에 쓰여 있다.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 집회의 현장이나 선정적인 장면 하나 없이도 이러한 문구 하나가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감독의 나래이션은 흑인 해방운동사를 텍스트로 보는 것 마냥 단어 하나 하나가 놓칠 수 없는 문장이 되어 자막으로 전달되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 서거 50주년인 올해 미국의 인종차별의 문제는 트럼프 당선 이후 새로운 국면을 맞아 악화일로 중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이주민을 향한 인종차별은 대중적 인식 속에 감지 되지도 않고 있다. 최근 인종차별철폐협약(CERD)에 관한 정부보고서가 제출된 이후 이에 대한 시민사회반박보고서가 준비중이다. 한국에서 인종차별은 차별배제적인 다문화 정책으로 인해 수면 아래서 제대로 된 논의조차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과거 2009년 보노짓 후세인 사건이 이슈되었던 그 지점으로부터 한발도 진전된 것이 없는 인종차별금지법 제정 노력은 UN의 각 종 관련 기구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발의 조차 시도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인종차별금지법만으로 포괄할 수 없는 이주민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서, 지금 우리가 이주와 장애와 여성과 남성 그리고 성소수자 등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연대를 통해 해야 할 것은 바로 차별금지법제정이다. 하지만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폐기되고 있는 지역의 인권조례 현장들이다.

끝나지 않은 식민지 그리고 인종차별의 문제, 그 과거와 현재를 다룬 영화를 보면서 내가 본 것은 오늘도 노동의 현장에서 삶의 장소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민들이었다. 프론트 라인이라는 자리를 빌어 감독과의 대화에 참여한 관객을 향해 내가 할 수 있었던 이야기는 이 영화의 현실이 미국의 현실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이었다.

글·사진 | 정혜실 (mwtv@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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