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종차별의 문제를 잔잔하고 유쾌하게 그려낸 영화《아프리칸 닥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바랍니다. (편집자)

인종차별의 문제를 잔잔하고 유쾌하게 그려낸 영화

줄리앙 람발디 감독의 《아프리칸 닥터》

김태형 | 성공회대 영어학과 재학

 

들어가며

2016년 10월 28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열리는 이주민영화제(MWFF, Migrant World Film Festival)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나의 선택은 줄리앙 람발디 감독의 《아프리칸 닥터 The African Doctor》였다. 이주민영화제라는 특성상, ‘인종차별’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장르는 드라마, 코미디였다. 그 순간, 미국 사회의 흑인차별 문제를 유쾌하게 그려낸 영화 《헬프 The Help》[1]가 떠올랐다. 그 때문일까? 오묘한 기대감과 식상할 것이라는 걱정이 내 마음 속에서 불협화음을 냈다. 좌석에 앉자 상영관의 불이 꺼졌고 신나는 파티의 한가운데 라는 인물이 클로즈업 되며 영화가 시작되었다. 1시간 40분이 흘렀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는 순간, 《아프리칸 닥터》만의 잔잔함과 유쾌함이 공존하는 분위기에서 헤어날 수 있었다. 지금부터 저예산 영화임에도 《아프리칸 닥터》가 풍기는 그것만의 분위기와 매력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1] 테이트 테일러 감독의 영화, 1960년대 미국사회에 퍼져 있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를 유쾌하게 그려낸 영화

폭력적으로 그려내지 않은 인종차별 문제

앞서 언급했듯이, 이 영화의 장르는 드라마, 코미디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대개 잔잔하고 유쾌했으며 때로는 감동의 울림을 주는 영상이 많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영화 초반부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은 사뭇 진지했다. 주인공 ‘세욜로’의 고향, 콩고를 담은 것 같았는데 잔잔한 배경음악과 함께 어두운 색으로 표현되어 《바더 마인호프 Der Baader-Meinhof Komplex》[2]에 나오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장면과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 때문에 어두운 사회의 모습과 고통 받는 주인공의 삶이 전개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내 세욜로의 삶으로 전환되면서 정반대의 분위기가 이어졌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흑인에 대한 차별’을 폭력적인 영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차별을 하는 말리 고몽 주민들을 ‘바보’와 같이 순수한 사람들로 그려냈다. 세욜로의 가족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엔 경멸이나 멸시보다 엉뚱하고 신기해하는 눈빛이 담겨있었다. 이들의 순수함이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세욜로가 마을의 술집을 찾아가 마을 사람들과 친해진 후의 장면이다. 심리적 거리가 좁혀진 마을 주민들은 그들의 신체적 고통을 무의식 중에 내뱉는다. 의사인 세욜로는 은근슬쩍 처방법을 알려주다가 “그럼 한번 진찰해 드릴테니 오세요.”라는 말을 전한다. 통증을 호소하는 인물은 무의식적으로 알겠다고 대답한다. 드디어 첫 진료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 장면에서, 감독은 세욜로의 얼굴을 클로즈업 하는 것이 아닌 ‘거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세욜로의 의미심장한 웃음을 영상에 담았다. 거울이란 매개체를 통한 미쟝센[3]은 더욱 강한 유쾌함과 성취감을 전달함과 동시에 말리 고몽 특유의 아기자기한 건물의 구조를 효과적으로 담아냈다.

가장 폭력적인 장면이라면, 세욜로가 방문 진찰을 하러 농장을 찾아 갔을 때 그를 향해 한 노인이 총을 겨누고 이내 총성이 울리는 장면뿐이다. 총성이 울리는 장면은 세욜로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롱샷[4]으로 나타내 오히려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냈다. 감독은 전체적으로 인종차별 문제를 폭력적인 영상으로 그려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메시지가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않았다. 오히려 희화화한 영상으로 담아냈기 때문에 영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거부감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유쾌한 분위기의 영상과 공존하는 잔잔한 영상들은 감독이 알려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전달해주었다. 감독은 위 문제에 대한 깊은 사고와 성찰은 관객의 몫으로 돌린 듯 했다.

[2] 울리 에델 감독의 영화, 제2차 세계 대전이후 서독에서 가장 활동적이고 유명했던 좌익 테러리스트 그룹 적군파(Rote Armee Fraktion, RAF)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3] 영화의 한 프레임 내에서 배우와 세트 디자인의 고정된 배열을 묘사하는 프랑스어

[4] 피사체로부터 카메라가 멀리 떨어지거나 광각렌즈를 사용해서 얻어지는 원경(遠景)을 롱샷이라 한다.

 

아이들을 통해 내놓은 폭력성의 증폭

어른들의 차별에는 폭력성이 드러나지 않지만, 오히려 아이들의 차별은 폭력적인 영상으로 표현했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은 세욜로의 아이들이 처음 학교에 입학한 날이다. 그들이 교장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롱샷으로 처리되고 이를 경직된 자세로 보고 있는 다른 아이들이 같이 화면에 담긴다. 이후 세욜로의 아이들이 어머니와 헤어지고 학교로 들어가는 장면에서는 다른 아이들의 괴기스런 웃음소리가 디제시스 사운드[5]로 깔리며 경멸조의 섬뜩한 웃음을 띤 아이들의 다양한 얼굴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주었다. 관객은 세욜로의 자녀의 시선에서 그들 한가운데에 들어가 빙글빙글 도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아이들의 순수함과 ‘인종차별’이라는 폭력적인 인식 간의 마찰로 인해 더욱 확장된 공포감이 조성되고 세욜로 아이들의 두려운 감정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인종차별’ 문제를 어른이 아닌 순수한 아이들을 통해 전달함으로써 관객들이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더욱 깊게 생각하도록 하는 감독의 의도는 놀라웠다.

[5] 영화 프레임 내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소리, 즉 배우들의 대사(dialogue), 음향(sound effect), 공간음(ambient sound) 등을 포함

이중적인 ‘소’를 나타낸 영상과 그 속의 의미

유독 이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 하나 있다. 바로 ‘소’다. ‘소’는 작품의 배경인 말리 고몽의 풍경에 가장 어울리는 동물이다. ‘프랑스’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고상하고 세련된, 자유로운 삶을 살고 예술을 즐기는 모습의 사람들이다. 반면 말리 고몽은 시골 냄새가 나는 촌스러운 동네이지만 프랑스 고유의 자유로운 개인의 삶을 즐기는 목가적인 삶의 공간이다. 하지만 이런 목가적이고 시골의 순수함을 가진 말리 고몽의 주민의 내면에는 낯설다는 이유로 인종차별 인식이 자리하고 세욜로와 그의 가족들에게 거리를 둔다. 즉 말리 고몽은 목가적인 삶 속의 순수함과 ‘새로움을 거부하는 차별인식’이 공존하는 이중적인 사회다. ‘소’는 이중적인 동물이다. 궂은 일을 묵묵히 수행하면서 느릿느릿 목가적인 삶을 살지만, 그 내면에는 엄청난 공격성이 담겨있다. 이것이 폭발하는 순간, 무엇도 쉽게 이 동물을 제어할 수 없다. 감독은 이러한 ‘소’를 하나의 장치로 이용했으며, 작품 중반부에 ‘소’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 영상이 있다.

위급한 상황에 세욜로의 도움을 받은 부부가 성공적인 출산을 하자 마을 사람들에게 드디어 ‘의사’로 인정받기 시작한 세욜로는 시장 자리를 노리는 ‘비건’의 정치적 활동의 희생양이 되어 그동안 일궈온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좌절감에 만취한 그는 방황을 하다가 한 농장에 들어간다. 뿌연 안개 속에서 ‘소’의 거친 숨과 함께 강렬한 빨간 눈빛이 클로즈업 된다. 자신의 영역에 침범한 세욜로를 향해 당장이라도 달려갈 듯한 험악한 ‘소’의 얼굴이 비춰진다. 두려움을 느낀 세욜로는 냅다 도망간다. 하지만 ‘소’는 그를 쫓아가지 않는다. 이내 카메라 속에는 강렬한 빨간 눈빛 대신 순수한 눈이, 만사태평한 ‘소’의 목가적인 모습이 담긴다. 이 장면은 세욜로의 우스꽝스러운 도망으로 인해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자아내는 역할을 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영화 전체를 본다면, 이 장면에서 두 가지 의미가 있음을 찾아낼 수 있다.

첫 번째 의미는, 말리 고몽에 가장 어울리는 동물인 ‘소’는 그 마을 주민들의 태도를 보여준다. 세욜로가 울타리를 넘어 자신의 영역에 발을 딛자 소는 경계태세를 취했다. 말리 고몽의 주민들 또한 같다. 이들은 자신의 마을에 다른 색을 가진 인종이 마을에 도착하자, 그와 그의 가족을 경계하고 배척한다. 그들은 세욜로가 흑인 의사라는 이유로, 굳이 옆 마을까지 발걸음을 옮겨 병원을 다닌다. 영화 속에서 세욜로가 도망치는 장면은 두 번이 나온다. ‘소’에게서 도망치는 세욜로, 방문 진찰을 하러 갔을 때 노인에게서 도망치는 세욜로. 말리 고몽의 주민들은 온순한 ‘소’처럼 순수하고 목가적인 삶을 살지만, 그들의 영역에 새로운 인물, 특히나 색이 다른 인종이 들어온 순간, 강렬한 눈빛을 뿜어내며 경계하는 ‘소’와 닮아 있다.

두 번째 의미는 ‘소’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세욜로와 그의 가족을 묘사한다. 세욜로가 의사 자격을 박탈 당하고 가장 먼저 돌본 동물은 마을에서 유일하게 그와 소통하는 노인의 농장에서 만난 ‘소’다. 세욜로는 ‘소’들에게 사료를 주고 변을 치워주며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그들을 돌본다. 하지만 그가 그들의 울타리로 들어가는 순간, 세욜로는 경계의 대상이 된다. 그토록 돌보던 ‘소’에게 배신을 당하며 아래에 위치하게 된다. 세욜로의 직업은 의사다. 그는 사람들의 일거리를 도와주었고 소소하게 나마 그들의 아픈 곳의 처방법을 알려주며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정작 사람들은 그를 ‘의사’로 인정하지 않는다. 가장 가깝다 느꼈던 바에서 만난 형제도 의사인 그를 부정하며 진찰료를 지불하지 않는다. 두 번째 장면은, 세욜로의 아내가 야채를 사러 간 장면에서 나온다. 야채 장수는 마치 아이를 대하듯, 이것은 ‘파’고, 이것은 ‘배추’라며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하지만 이것은 친절이 아니다. ‘흑인은 미개한 민족이며 당연히 이런 것들을 모른다’는 선입견이 내면에 들어있는 엄연한 차별의식이다. 결국 세욜로와 그의 가족은 말리 고몽 주민들에게 있어, 인간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며 때로는 ‘소’보다 못한 존재로 인식된다.

분위기의 생산과 숨겨진 비의 메시지

엄숙하거나 비극을 암시하는 분위기에 반복적으로 재현되는 영상 요소가 있다. 바로 비가 내린다는 것이다. 처음 세욜로의 가족들이 마을에 도착한 장면에서도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고 세계대전을 추모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모인 엄숙한 분위기의 장면에서도 비가 내렸다. 영화가 끝날 때쯤, 세욜로의 죽음을 암시하는 운전하는 장면에서도 역시나 비가 내렸다. 물론 비를 배경으로 하는 장면은 위에서 언급한 분위기를 내는데 효과적이다. 하지만 《아프리칸 닥터》에서 내리는 비는, 단순히 분위기를 내기 위한 역할만을 하지 않는다.

주인공 세욜로는 고향의 삶, 흑인의 삶을 부정한다. 그의 아이들에게 ‘흑인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공부만이 살 길’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며 딸이 취미와 특기인 축구를 엄격하게 제한하며 손에 펜을 쥐게 한다. 아이들의 순수함이 세욜로의 이러한 인식과 대립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차별을 받고 돌아온 아이들에게 세욜로는 평소처럼 ‘괜찮다며 공부 잘하면 해결된다’라는 뉘앙스의 말을 한다. 아이들이 어머니에게 투정하며 그들의 언어인 ‘링갈라어’를 쓰자, 세욜로는 ‘링갈라어’를 쓰지 말라고 윽박을 지른다. 위의 장면을 세욜로와 아이들의 얼굴을 교차로 영상에 담아내며 이들의 갈등은 더욱 확대되어 관객에게 전달된다. 옷차림부터 행실까지 아이들에게 ‘흑인의 요소’를 지우려 강요한다. 아이는 묻는다, “왜 흑인은 공부를 잘해야만 해요?” 세욜로는 아무런 대답을 못한다. 그저 공부를 잘하라고 말할 뿐이다.

다른 장면은 크리스마스 한가운데에서 나온다. 크리스마스를 즐기며 흥이 난 가족들은 교회에 가서 축복하자며 길을 나선다. 세욜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교회에 들어가 정적이고 경건한 분위기를 흑인 특유의 춤과 노래를 통한 ‘흥’을 보여주며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클로즈업 되는 세욜로의 얼굴은 웃음을 일으켰지만 그 속에는 무시무시한 의미가 숨어있다. 세욜로는 모든 흑인적인 요소를 없애려 한다. 그 범위는 언어와 흑인이기 때문에 정해지는 삶의 잣대, 심지어 종교의 자유까지 모든 것에 달한다. 그는 흑인의 색이 아닌 마을 사람들의 색을 입고 싶어 한다.

비는 얼룩과 먼지들을 씻어 낸다. 구조물에 얼룩이 묻어 있다면 세차게 내리는 비로 인해, 말끔히 지워질 것이다. 세욜로는 비를 통해 자신의 흑인적인 요소들이 지워지길 바랬을 것이다. 하지만 비는 새로운 색을 입히지 않는다. 그저 본래의 색, 본질을 더욱 드러낼 뿐이다. 결국 비로 인해, 세욜로의 흑인적인 요소는 더욱 드러날 것이다. 지우기 위해 아무리 많은 노력을 하더라도, 본질은 변하지 못한다. 초반부에 내린 비는 세욜로가 흑인적인 요소를 지워지길 소망하는 마음이 존재하는 비극적인 비다. 세욜로와 가족은 그들의 노력과 선행으로 마침내 말리 고몽의 구성원으로서 인정받는다. 더 이상 그들을 호기심이나 경멸의 눈빛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즉, 그들의 색을 바꾸지 않더라도, 그들의 색과 본질은 존중받는다는 뜻이다. 때문에 마지막 세욜로의 교통사고 직전에 내린 비는 세욜로를 본질의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희극적인 비일 것이다. 결국 《아프리칸 닥터》의 비는 단순히 분위기를 내기 위한 요소에 그친 것이 아니라, 본질을 더욱 드러내고 그것을 인정하자는 첫 번째 메시지와 당사자가 ‘차별인식’을 가짐으로써 더욱 큰 사고를 이끌어 낼 위험이 있다는 두 번째 메시지를 주는 역할을 한다.

필요하지만 담겨있지 않은 영상

《아프리칸 닥터》는 관객을 웃음 짓게 하는 영화다. 하지만 중요한 영상이 빠져있다. 초반부에 ‘세올료’가 의사자격증을 획득하고 지인과 통화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치의’를 하면 많은 봉급과 복지를 줄 것이라 제안하고 그것을 거절하는 장면은 오로지 제안을 하는 인물과 세욜로의 배경만이 교차컷[6]으로 재현되었다. 물론 이 영화는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주려는 명확한 목표가 있다. 하지만 세욜로의 거절은 영화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것으로 인해 아내와 심한 갈등을 겪으며 결국 이 선택으로 인해 말리 고몽에서의 험난한 삶이 시작된다. 거절의 이유로는 ‘부정부패가 많은 사람의 주치의가 될 수 없다’라는 세욜로의 대사로만 설명된다. 하지만 관객들이 단순히 그의 대사만으로 그의 선택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부정부패로 인한 그 사회의 모습이 어떠한지, 그것으로 인해 국민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묘사하는 영상이 필요했다. 전화를 하는 장면에서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인원들의 공간과 행동을 혹은 그러한 이유로 고난을 겪으며 비참한 모습의 콩고인들의 삶을 교차편집 했더라면? 위에서 언급했던 그가 고향의, 자신 본질의 모습대신 프랑스인들이 원하는 삶을 살려는 의도와 그토록 좋은 제안을 세욜로가 거절한 이유를 더 쉽게 이해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관객은 그의 따뜻한 마음과 정의로움에 더 깊은 감동의 울림을 느꼈을 것이며 ‘《아프리칸 닥터》는 인종차별 문제를 다룸과 동시에 제 3세계 국가의 비참함을 동시에 담아낸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6] 현재 진행중인 내용을 토대로 같은 시간대에 벌어지는 여러가지 장면을 교차하여 보여주는 기법

맺음말

《아프리칸 닥터》는 심오한 주제를 담은 메시지를 그만이 가진 특유의 유쾌하고 따뜻한 분위기로 효과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영상에서 묘사된 차별은 거부감을 느낄 정도의 폭력성을 담지 않았음에도 메시지는 명확하게 전달했다. 또한 ‘비’, ‘소’와 같은 장치를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관객은 더욱 큰 재미와 감동의 울림을 느꼈을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세욜로를 추모하기 위해 오는 수많은 조문객들이 롱샷으로 페이드아웃되면서 세욜로의 실제 가족사진과 함께 떠오르는 자막들은 가족의 현재와 결과를 알려줬음에도 깊은 여운을 남겼다. 감독은 이 영화를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인종차별 문제’를 첨예하고 신랄한 영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의도는 명확했으며 사회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또한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우리의 즉각적인 행동의 촉구를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저 유쾌하고 담백한, 따뜻한 분위기의 영상을 관객에게 전달했을 뿐이고 이 문제에 대한 사고와 성찰은 관객에게 쥐게 한 폭력적이지 않은 현실 비판 영화다. 동시에 《아프리칸 닥터》는 이주민영화제에 대한 나의 기존의 클리셰[7]를 깨 버린 작품이다.

[7]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쓰여 뻔하게 느껴지는 표현이나 캐릭터, 카메라 스타일 등을 포괄적으로 지칭

 

김태형 | 성공회대 영어학과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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