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용왕궁의 소망,《용왕궁의 기억》

VOM이 만난 이달의 영화 | 재일교포 2세인 아들이 제주 4.3 사건 당시 일본으로 건너온 어머니의 모습을 기록한 사적 다큐멘터리 <용왕궁의 기억>을 소개합니다. 2016 DMZ 영화제와 2017 인디다큐페스티발 올해의 초점에서 상영된 작품입니다.

용왕궁의 소망

《용왕궁의 기억》

글. 살구

<용왕궁의 기억> 스틸 컷 (사진출처_ DMZ국제다큐영화제 홈페이지 dmzdocs.com)

 

영화   용왕궁의 기억

감독   김임만

작품정보   2016 | 100min 21sec | 컬러+흑백

 

  

장면 #어머니와 아들

나이든 아들과 늙은 어머니는 결론이 나지 않는 대화, 말이 되지 않는 말을 한다.

아들은 언제부터인지 어머니에게 제주에 가자고 한다. 어머니는 싫다고 하셨다.

아들은 다시 말한다. 제주에 가자고.

어머니가 식사하는 틈을 타 반복되는 아들과 어머니의 말들.

  

헛웃음이 나온다. 어머니가 싫다는 걸 자꾸 하자는 아들을 보는 것이 편하지 않다. 문득 나와 내 어머니의 대화들이 떠오른다. 내 이야기에 관심 갖길 원하며 이야기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야 어머니에게도 하고픈 이야기가 있을 거란 걸 깨달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각자 자기 얘기만 하는거 같다. 우린 이미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장면 #제주와 4·3

영화감독 임만은 성인이 되고 말이 통하지 않은 제주에 다녀온다.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이야기하던 제주의 할배를 잊지 못한다.

임만은 가족들을 촬영하고 제주를 다니면서 부모의 이주는 4·3과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제주에 남아있는 친척들에게 4.3에 대해 묻는다.

  

나는 4.3을 제주에서 일어난 국가에 의한 민간인 학살 정도로 알고 있다. 이 영화를 보기 일주일 전쯤 다큐멘터리 <다른 세계>의 상영회에 다녀왔었다. 한국 청년 두명이 평화기행을 하며 제작한 다큐멘터리였는데, 대만, 오키나와, 제주, 밀양 등을 거친 여행기다. 반전, 반핵의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다큐에서도 청년들은 제주에서 강정마을만이 아니라 4.3평화공원도 방문한다. 그리고 <용왕궁의 기억>을 보고 와 이글을 쓰는 동안 4월 3일을 만난다. 가슴 근처가 먹먹하고 쓰린다.

<용왕궁의 기억> 스틸 컷 (사진출처_ DMZ국제다큐영화제 홈페이지 dmzdocs.com)

  

장면 #용왕궁과 요도가와강

임만의 어머니는 자신보다 먼저 떠난 남편을 따라 제주에서 오사카로 이주했다. 제주에서도 오사카에서도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일본말도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들에게도 자꾸 제주말을 하신다.

일본에서 태어나 대학을 갈 때까지 일본인으로만 살았던 아들과의 의사소통은 쉽지 않다. 아들은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어머니의 기도와 굿이 낯설고 두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요도가와강에 용왕궁이 있었다. 1930년대부터 오사카로 이주한 제주 출신들의 굿당이다. 일본의 버블시대인 7,80년대 활황기에는 신방(무당)들도 많은 기도를 해주었을 것이다. 일본경제의 쇠락과 함께 용왕궁도 사라져야 할 것이 되고 만다. 용왕궁에 있는 무당 역시 임만의 어머니와 다를 바 없다. 그녀는 그곳에서 고향을 떠나 이주했던 많은 이들의 소망과 복을 빌어주고 액을 물리치며 살아왔다.

  

오사카를 여행하는 중에 친구의 자전거를 빌려타고 도시의 북쪽으로 달려 요도가와 강을 만난적이 있다. 그 때는 그 강이 요도가와 강인지도 몰랐다. 이 영화를 보면서 어딘가 익숙한 강의 모습에 지도를 찾아보니 내가 본 그 강이다. 그 강변을 한참을 동으로 달렸었다. 무심코 바라본 강둑에 텐트를 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용왕궁은 철거된 뒤였겠지만 그 강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 때 천막텐트들이 궁금했지만 강 건너편이라 인기척이라도 있으면 손이라도 흔들어 볼까하여 그저 한참 바라만 보다가 돌아섰던 기억이 있다. 여전히 요도가와강에는 천막텐트와 사람들이 있을지 궁금하다.

<용왕궁의 기억> 스틸 컷 (사진출처_ DMZ국제다큐영화제 홈페이지 dmzdocs.com)

  

장면 #이주와 우리

임만의 부모는 4·3을 피해 배를 숨어타고 오사카로 이주한 경우다. 그 때 제주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몇몇은 그렇게 도망에 성공했을 것이다. 성공이라는 말을 쓰기에는 그들의 오사카 생활은 처참했을지도 모른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힘든 노동을 견디며 살아내야 했다.

  

태어난 곳에서 평화롭게 살지 못하고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이 그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금 더 잘 사는 나라로, 취직이 될지도 모르는 도시로 무리해서 떠나는 사람들. 여전히 힘들고, 지치고, 외로울 타지 생활일 것을 알고도 독한 마음을 먹고 하는 것이 이주다.

나는 지금보다 조금 어릴때 이주의 로망이 있었다. 언어의 장벽이나 불안정한 거주와 노동 등 어려움을 알아가며 살포시 저 뒤로 던져버린 로망이다. 그렇지만 요즘 한국의 공기를 마시다 보면 어디건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그런데 타고난 자리에서 떠나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것이어야만 하는지, 왜 차별받을까 두려워해야 하는 일이 되버린 건지 모르겠다. 우리는 지구상의 어디에서 살아가든 행복할 권리가 있다. 너와 나 우리 모두다 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용왕궁의 기억’이라는 제목은 잊고 있었다. 나는 용왕궁보다는 아들과 어머니에 꽂혀 헤맸다. 아들은 무엇을 찾고 싶었을까. 제주에서 오사카로 온 그녀의 기억, 고향, 제주, 그것을 찾아 헤매는 과정이다.

돌아나와 한참만에 용왕궁을 떠올린다.

용왕궁의 기억이라니, 용왕궁에 모여든 이들은 무엇을 기억하는 것일까. 용왕궁은 함께 제주를 기억하며 이곳 새로운 땅에서 무사함을 기원하는 그런 곳이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용왕궁은 이제 없다. 어쩌면 굿이 중요한 세대가 늙어가고 죽어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들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그 곳에 모였던 여인들의 바램이 무엇이었을지 더욱 궁금해진다.

나는 용왕궁의 기억들보다는 용왕궁의 기도와 소망이 더 궁금하다. 그들은 어떤 꿈을 이루고 어떤 미래를 만들고 싶었을지 말이다. 그래서 조금은 행복해졌는지 말이다.

<용왕궁의 기억> 스틸 컷 (사진출처_ DMZ국제다큐영화제 홈페이지 dmzdocs.com)

  

감독과의 추억

한국말 못하는 그와 일본어 못하는 우리 일행이 오사카에서 만난 밤. 우리와 맥주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막차를 타려고 그가 먼저 가야했는데, 허우적 허우적 걷는 것 같으면서도 힘이 잔뜩 들어간 그의 뒷모습이 아직도 가끔 떠오른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크게 웃고 어깨를 토닥이며 정이 들었었나보다. 쭉 늘어난 면티에 구멍이 뽕뽕 나 있다. 어머니가 자꾸 옷타박 하실만 했다. 그때 굴다리 속으로 걸어가던 그의 뒷모습에서 엄청 커다란 사람을 보았었다. 그리고 눈물이 좀 날 뻔했었다.

 

살구 | 이주민방송 MWTV 자원활동가

조금 게으르지만 마음은 바쁩니다. 최근 기억에 남는 노랫말이 있습니다.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 더 이상 치열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슌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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