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떤 국가 -《경계 위의 세 여자》

어떤 국가
《경계 위의 세 여자》
글. 살구

<경계 위의 세 여자> 이미지 (사진출처_ JIFF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

영화 경계 위의 세 여자

감독 클로에 로비쇼 (Chloe Robichaud)
작품정보 2016 | 98min | color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쓴다는 핑계로 전주 국제 영화제에 다녀왔습니다. 어느새 강렬한 태양이 몸과 거리를 덥게하는 날씨였습니다. 아침부터 기대하는 표정으로 상영관 앞에서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국제 영화제에 왔구나라고 느끼게 해줍니다.
영화제에 가기 전에 상영작 정보를 훓어 보고 마음에 두었던 영화는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주민과 관련한 영화였습니다. 애니메이션이 보고 싶었는데 마침 이민자 가족 이야기였지요. 그런데 그 영화는 예매하는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고른 영화가 ‘경계 위의 세 여자’였습니다. 배경으로 가상 국가를 설정한 것, 이야기를 끌어가는 인물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이 끌렸습니다.

  

#국가&정치

이 영화의 제목은 프랑스어로 Pays, 영어로 Boundaries 입니다. 한국어로 해석하면 보통 경계 또는 국경이지요.
영화의 배경은 ‘베스코’라는 가상국가입니다. 거대 국가 캐나다와 천연자원 개발 이슈를 가지고 협상해야만 하는 아주 작은 섬나라 베스코. 인구가 10만이 좀 넘는다고 나오니 우리나라로 치면 충청도의 공주나 경기도 여주, 경상도의 통영시 같은 작은 시 정도의 인구입니다. 어쩌면 섬이기 때문에 다행히 캐나다에 먹히지 않고 독립국으로 살아남았을지도 모를 그런 곳이지요.
베스코는 자국의 자원을 팔면서도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보호하고 국토의 황폐화를 막기 위해, 캐나다는 아마도 국가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싼 비용으로 계약하기 위한 협상에 임합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거대하고 강력한 국가들과 작고 약한 국가들의 수많은 협상 중 하나일 것입니다. 물론 베스코의 정치인들은 제가 상상하는 작고 약한 국가들의 정치인의 모습보다 훨씬 당당한 모습입니다. 서로 솔직하지 못한 만남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노골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위한 정치인들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결국 회의시간이 싸움으로 끝나기도 하지요.
자꾸 약자인 베스코의 주장에 감정이입이 됩니다. 당당하게 자국의 자원과 국민을 보호하려는 다니엘라의 모습에 마음이 쏠립니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가 세계정치 무대에서 강자가 아니라는 생각이나, 그저 의례히 있는 측은지심 때문입니다. 아프거나, 억울하거나, 외롭거나 괴로운 사람이 없을 나라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던 몇 년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저 협상의 결과에 따라 어떤 사람들이 불행해져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3년전쯤 국가가 무엇인지, 우리를 위한 국가가 어디에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국가를 만든다면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이미 속해있는 국가라는 공동체. 그 공동체를 인간답게, 인간이 살아갈 만하게 만드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워 보였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곳. 바로 이 국가를 올바르게 만드는 것에 대한 고민을 더 확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성&정치
여성 3인이 이 영화를 끌어갑니다. 영화는 이 여성들을 클로즈업한 화면으로 시작합니다. 영화에 대한 정보라고는 영화제 소개 정보에 있는 몇 줄이 전부였기 때문에 이 여성들의 얼굴만으로는 앞으로 어떤 일들을 겪게 될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베스코의 대통령 다니엘라, 캐나다의 정부대표단 소속 의회의원 펠릭스, 그리고 이 두집단의 협상을 이끌어갈 협상가 에밀리. 다니엘라는 50대, 펠릭스는 20대, 에밀리는 30대로 현재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세대별 여성을 적절히 보여줍니다. 다만 정치라는 영역에서 여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낯선 배치입니다. 대통령이 여자라니, 협상의 중재자도? 아니 20대 여자 정치인이라니. 제가 촌스러운 건지 한꺼번에 너무 많이 놀래고 기대하게 됩니다.
경험이 많아 보이고 나이가 꽤 있는 남성 정치인은 정치참여에 열정을 갖은 펠릭스에게 딱히 역할을 주려하지 않습니다. 에밀리는 직업상 잦은 출장으로 아이와 함께 있지 못하는 상황이 잦은데, 이 때문에 전남편에게 양육권을 빼앗길 상황이 벌어집니다. 다니엘라는 근무 중에 아이의 부상 소식을 받고 병원으로 갑니다. 아픈 아이가 있는 엄마와 국가의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 세 명의 역할이 남성이었다면 어땠을까요? 20대의 젊은 남성 정치인이었다면, 30대의 아이가 있는 이혼남이었다면, 50대의 남편이고 아버지인 대통령이었다면. 여성이기 때문에 뚫고 나가야 할 장애물이 더 크고 두꺼웠을 겁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무거워야만 했을 겁니다. 더 비난 받을까 두려웠을 겁니다. 이것을 다 이겨내고 나아가야만 했을 겁니다.
이 영화는 여성들이 이야기 했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었던 정치가 있습니다. 세 여성은 협상 기간 동안 겪게 되는 일상들을 서로 지켜보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하고 응원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래서 그녀들이 풀어갈 수 있는 정치가 있습니다.

                                                                

#음악&장면
음악 때문에 장면이 기억나는 영화입니다. 눈과 귀에 한방에 기억을 남긴 것이지요. 이야기가 대부분 일어나는 공간은 베스코의 학교입니다. 양국의 비밀 협상을 하는 곳입니다. 영화는 협상 장면과 학교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하키 경기의 모습을 교차 편집하면서 다양한 리듬의 음악을 배경으로 합니다. 협상이 지루하게 되다가 역동적으로 진행되는 느낌을 주고, 협상 장면들이 코믹하게 느껴지게도 합니다.
에밀리가 개인사로 너무 힘든 날 바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춥니다. 치어리더 출신인 에밀리의 춤은 흐르는 음악과 어찌 그리 잘 어울리는지 펠릭스조차도 움직이게 합니다. 영화의 색채는 전반적으로 차가운 느낌을 주는 것으로 채워집니다. 간간히 흐르는 배경음악들, 피아노 소리들은 이 분위기를 한층 더합니다. 영화내내 음악이 잘 결합되어 있어서 즐거움이 많았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게 집중하여 보았습니다. 국제경쟁 부분에 초대되었을 정도이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영화적 장치와 배치들이 흥미로웠고 감독을 비롯한 제작팀의 수고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거기다 젊은 여성 감독과 프로듀서의 감각과 시각이 훌륭하다고 느껴집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와서도 한동안 그녀들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빙하가 떠내려와 떨어지고 부숴지는 부근의 나라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살구 | 이주민방송 MWTV 자원활동가

조금 게으르지만 마음은 바쁩니다. 최근 기억에 남는 노랫말이 있습니다.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 더 이상 치열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슌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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