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경을 떠도는 아이들_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영화 <르 아브르>

국경을 떠도는 아이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영화 <르 아브르>

엄마 찾아 삼만리의 21세기 버전

가족 결합을 위한 온 마을의 보살핌

이안 | MWFF 이주민영화제 프로그래머

▲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르 아브르>

컨테이너에 몸을 싣는 사람들 

밀입국한 아이, 프랑스 사회의 이슈가 되다 

가장 큰 규모로 사람이 오가고물자가 오가는 곳은아주아주 오랜 선사시대부터 지구촌 어디에든 하루 안에 갈 수 있을 만큼 빠른 비행기가 하늘을 누비는 21세기에 이르기까지어지간한 마을 크기 하나의 사람이며 물자를 통째로 태우고 옮길 수 있는 운송수단인 배가 드나들 수 있는 항구다프랑스 노르망디센 강 어귀에서 영국과 해협 하나를 사이에 둔 한 도시의 이름은 아예 항구, ‘르 아브르‘(Le Havre)한적한 어촌에 불과했던 이곳은 16세기 초제국주의가 뱃길로 세력을 뻗쳐 식민지를 개척하던 시대부터 미국·영국·아프리카를 향한 항로의 기점이 되어 르아브르 드 그라스‘, 그러니까 혜택받은 항구로 불리게 되어 지금까지 도시 이름 자체가 아예 항구가 되었다.

르 아브르 항에 가득 쌓여있는 컨테이너 사이를 순찰하던 경비원이 한 컨테이너 앞에 멈춰섰다그 안에서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 때문에컨테이너 안에 물건 대신 사람그렇다면 이건 분명 밀입국이다그래서 경찰이 몰려오고기자가 몰려와 지켜보는 가운데 컨테이너가 열리고아니나 다를까컨테이너 안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숨어있다한 노인이 소년과 눈빛을 주고받더니 소년이 밖으로 나선다밖에는 경찰들이 총을 겨누고 있다잠시 멈칫하던 소년이 냅다 컨테이너 사이로 달리기 시작한다.

한 경찰이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보기에도 좀 높은 듯한 사람이 막는다. “미쳤어아직 애잖아!”라며그래서 아이는 달아나고마침 둘러서 있던 기자들의 카메라에 찍혀 전국에 사진이 실리고사회적인 문제가 되어 버린다.

▲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르 아브르>

달아나는 아이, 쫓는 경감, 막는 주민, 신고하는 이웃

추적과 관용 사이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르 아브르>는 이렇게 시작한다달아난 소년은 가봉에서 건너온 이드리사(블로딘 미구엘), 아이를 쏘려던 총을 막은 대신 앞으로 장발장을 집요하게 뒤쫓던 자코뱅처럼 이드리사를 찾아낼 임무를 수행해야할 경찰은 모네 경감(피에르 다루생). 이 수색작전이 쉽게 성공하지 못하도록 이드리사와 모네 경감 사이에 끼어들게 되는 사람은 구두닦이 할아버지 마르셀 막스(앙드레 윌름).

어느 시대어느 나라고 어깨에 구두약과 솔이 든 상자와 고객이 앉을 의자를 둘러맨 것이 사업밑천 전부인 구두닦이의 형편이 변변할 리가 없으니마르셀 처지도 보잘 것이 없다남의 가게 앞에 자리 잡았다가 걸핏하면 쫓겨나고번잡한 항구 주변에 번듯하게 구두 신고 다니는 양복쟁이 고객보다는 일꾼들이 많고자기 말고 다른 구두닦이도 있고어쩌다 비라도 내리면 공치게 되고그래서 동네 빵집이나 식료품 가게에도 외상 지는 걸 당연하게 여기며아내 아를레티(카티 오우티엔)가 정성껏 차려내는 식사래야 바게뜨에 양파와 치즈 몇 조각 곁들이는 게 고작이건만 마르셀은 행복하다늘 천사처럼 자신을 지켜주는 아내밀린 외상값에 툴툴거리면서도 늘 속 깊게 서로를 챙기는 이웃들이 있기에.

▲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르 아브르>

마르셀이 경찰의 추적을 피하는 이드리사를 만나 작은 도움을 베풀고이드리사가 신세를 갚으러 마르셀을 찾아오고그 모습을 훔쳐본 이웃의 누군가가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되고그래서 모네 경감이 따라 붙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조마조마한 판이다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마르셀의 아내 아를레티가 병으로 쓰러져 입원하게 된다의사가 회복할 가망이 없다고 하자 아를레티는 남편에게 비밀로 해달란다자기가 없으면 삶의 희망을 잃을 정도로 서로에 대한 사랑과 의지가 깊은 까닭이다.

엄마 찾아 삼만리의 21세기 버전

가족의 결합을 위한 온 마을의 보살핌

아를레티가 홀로 병과 맞서는 동안마르셀은 이드리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 것인지를 알아내고그 일을 돕느라 바쁘다그 사이 아내가 세상을 떠날 지도 모른다는 것은 꿈에도 모르고아프리카 가봉에서 아버지와 살다가아버지가 죽자 런던에 돈 벌러 떠난 엄마를 찾아 나선 이드리사와 함께 왔던 할아버지는 항구에서 잡혀 수용소에 갇혀있다가봉으로 돌아가면 고아 신세런던으로 가려해도 불법체류자 신세인 이드리사를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도울 길이 없다.

그러니까 <르 아브르>는 19세기 말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남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엄마를 찾아 나섰던 마르코의 고단한 엄마 찾아 삼만리의 21세기 버전이다마르코가 엄마를 만나기까지 여러 고마운 사람들을 만났듯이드리사도 마르셀과 그 이웃들을 만나 도움을 받아야 엄마를 만날 수 있다그런데 불법 밀입국 문제가 심각한 프랑스에서 이드리사 사건은 점점 심각한 이슈가 되어가니 그 도움을 주는 것 자체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 위험을 무릅쓰고 누군가는 먹을 것을 챙겨주고누군가는 마르셀이 이드리사의 내력을 찾아 먼 길을 헤집고 다니는 동안 이드리사와 병원에 누워있는 아를레티를 보살피고누군가는 경찰을 따돌려주고누군가는 이드리사를 영국으로 몰래 보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자선연주회 무대에 선다그리고 심지어 모네 경감조차 한 소년이 엄마를 만나는 길을 막으려는 경찰로서의 자신과 싸워야한다그러니까 이드리사가 엄마를 만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사회 전체의 노력이다.

▲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르 아브르>

기적을 만드는 공모자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은 이 노력으로 사회가 변화하는 것을 기다릴 수 없다면 아예 모두를 공모자로 만들어버리자고 한다그런 공모는 노인들만 가득한 유럽에 젊은 동양인어린 아프리카 소년까지 받아들이도록 하고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면 도저히 생각하지도 못했던 기적이 이루어진다고 한다이 기적이 이루어지는 순간 마른 나무 가지에 얼마나 환하게 꽃이 피게 될지그래서 르 아브르 사람들과 관객들 모두가 웃음꽃을 피우게 될지를 보게 되는 것은 마치 감독의 전작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에서 죽었던 사람이 관에서 일어나 노래를 부르고선인장에서 데낄라가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즐거운 경험이다

※이 글은 미디어오늘에 실렸던 글을 저자의 동의를 얻어 다시 싣습니다.

 

이안  MWFF 이주민영화제 프로그래머

서울대학교에서 미학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상이론 및 영화를 전공했다.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사무국장 및 서울여성국제영화제, 세이브더칠드런 아동권리영화제 프로그래머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이주민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성공회대에 출강하며 각 매체에 영화 평론 및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이주 인권 해설

홀로코스트에서 만명의 아이를 구했던 영국의 환대의 정신, 되살아날 수 있을까

영국과 맞닿아있는 프랑스 해안도시 칼레에는 정글이라 불리는 난민캠프가 있다아프리카 대륙과 중동에서 건너온 난민들이 영국으로 가는 경유지다칼레항 인근 유로터널에서는 영국행 화물 열차에 올라타려는 목숨을 건 점프가 매일 끊이질 않는다칼레 시 정부에서는 올해 2월 무장경찰과 철거용역이 불도저를 앞세워 정글의 강제 철거를 강행했고 하룻동안 천막 20여채가 불에 타고 100개의 주거지가 철거된 것으로 전해졌다2011년에 제작된 영화 <르 아브르>에서 보여지는 칼레 난민 캠프를 철거하려는 정부나 영국에 밀입국하려는 난민들의 모습은 2016년인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지난 4유럽대륙에 도착한 시리아 난민들 가운데 부모와 함께 있지 않은 아동 3천명을 영국에 받아들이자는 이민법 개정안이 영국 의회에서 간발의 표차로 부결됐다영국은 1939년에 킨더트랜스포트(Kindertransport) 정책으로 유럽 내 보호자가 없는 17세 이하 유대인 어린이 약 1만명을 탈출시켜 영국 입양을 허가한 역사가 있다이를 통해 홀로코스트를 면한 아동 난민 출신의 노동당 원로이자 상원의원인 알프 더브스(83)는 아동수송작전으로 구조된 생존자들 중 노벨상 수상자 4명을 비롯해 수학자와 작곡가의사들이 나왔다.”며 이민법 개정안을 통해 부모없는 3천여명의 난민 어린이들이, 1939년 내가 영국에서 받았던 환대를 받을 수 있기를 희망”했지만결국 법안은 부결됐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의하면지난해 유럽대륙에서 난민 지위를 신청한 난민 가운데 고아들은 약 95천명으로 추정된다영국에서는 킨더트랜스포트의 인도주의적 정신을 이어받아 어린이 난민에 대한 각별한 구호가 필요하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위험에 처한 국경의 아이들은 인종, 종교, 태생을 불문하고 누구보다 먼저 구조될 권리, 교육과 보살핌을 받을 권리가 있다. 관용과 환대의 정신이 살아있는 국제사회가 되길 희망한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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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상원의원 “난민아동에 교육 제공” 촉구 (2016.5.20,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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