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통신] 나는 환자이자 간병인_보호자 없이 첫 수술을 받은 이주노동자의 서러움

나는 환자이자 간병인

보호자 없이 첫 수술을 받은 이주노동자의 서러움

 

글 Imuhang Limbu / 번역 Dambar subba  

 

지난 12월 30일은 나에게 어두운 날이었다. 지난 16개월 전부터 나는 비염 때문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무척 지쳐있었다. 그날은 12시에 비염 수술을 하기로 병원 예약이 되어있었다. 회사 상사에게 오늘 수술이 있으니 보호자로 동행할 친구를 한 명 보내달라고 했으나 회사가 너무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수술은 내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무서웠다.

하지만 작년 겨울에 코가 막혀 심한 재채기, 콧물로 무척 고생한 것을 생각하며 이번에는 반드시 수술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11시경에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간호사선생님이 안내하는 대로 환자복으로 갈아 입고 환자용 침대에 누워 수액을 맞았다. 나는 4시간 동안 수액을 달고 기다려야만 했다. 의사가 전날 오후부터 물과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고 해서 아무 것도 먹지 않는 상태였다. 갈증과 배고픔으로 힘들었다. 그래도 참아야 했다. 

3시경에 수술실에 들어갔다. 수술실에서 한 간호사가 나에게 “누구랑 같이 왔냐”고 질문했다. 혼자 왔다고 대답했다. 간호사는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봤다. 나는 혼자 왔고 또 수술을 위해 마음의 준비가 다 되어있다고 말했다. 한국어가 서툴러서 알아들을지는 모르지만.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너무나도 무서웠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에 잠이 들었나 보다. 눈을 떠보니 다른 방에 있었다. 코에는 테이프가 부착되어 있었고, 코 안 구멍에는 무언가로 막혀 있었다. 코, 머리, 입 안에 많은 통증을 느꼈다. 입 안과 입술이 바짝 말라 있었다. 혓바닥으로 입술을 적시려고 했으나 혓바닥마저 말라 있었다. 간호사분에게 물 먹고 싶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간호사는 4시간 동안 물, 6시간 동안 음식을 먹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아픔과 배고픔보다 더 빨리 건강이 회복되길 빌면서 긍정적으로 마음을 먹었다.

나는 병원 오기 전에 건장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진짜 환자가 되어 있었다. 머리가 너무 많이 아파서 잠자려고 했는데 간호사가 와서 머리를 올려 주면서 2시간 동안 잠을 자면 안 된다고 했다. 물도 마시지 말라, 밥도 먹지 말라, 잠도 자지 말라 그 순간은 왠지 서운하고 혼자가 된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고국이 있는 가족이 보고 싶고, 부모님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때 ‘외국 땅에서 아프면 환자도 나, 간병인도 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많이 서러웠다. 눈물이 났다.

한 5시경에 나를 수술한 의사 선생님이 와서 코 안에 있는 물질을 빼주었다. 2시간 후에 의사 선생님이 퇴원해도 된다고 했다.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모든 친구들이 근무 중이었는지 한 명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서 퇴원하기로 결심했다. 옷 갈아입고 나오려고 했는데 머리, 코가 아프고, 어지럽고 서있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내 자신을 돕는 사람은 오직 나 밖에 없었다.

병동에서 나와 복도를 걸어 다닐 때 코에서 계속 피가 나와서 간호사 선생님이 휴지를 주셨는데 그것으로 계속 피를 닦았지만 부족했다. 코를 막으면 안 된다고 간호사 선생님이 당부를 하셨다. 또 간호사 선생님이 1층 원무과에 가서 병원비를 지불하고 오라고 했다. 1층까지 머리는 천장을 보면서 한 손에 병원 영수증을 들고 한 손으로 계속 코피를 닦으면서 다녔다. 코피 닦는 휴지가 부족해서 내가 두르고 있던 흰색 목도리로 코피를 닦았다. 흰 목도리가 빨간색으로 얼룩이 졌다.

복도에 있는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 봤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마치 내가 외계인 것처럼. 수술해서 부은 얼굴에다 테이프를 붙이고 하늘을 보면서 걷는 사람을 보면 이상할 수밖에 없겠지. 내가 봐도 그럴 것 같았다. 

약을 손에 들고 밖으로 나왔는데 아, 왜 이렇게 추운 건지. 택시를 잡으려고 하는데 오늘따라 빈 택시가 나와야 말이지. 버스나 전철 타고 갈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빈자리가 없으면 한 손에 약봉지를 들고 한 손으로 피를 닦으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택시가 하나 왔다. 그날 택시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나는 20개월 전에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와서 소요산에 있는 한 가죽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몸이 아파도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업주가 휴가를 내주지 않거나 동행할 보호자가 없어서 이주노동자들은 제때 병원 진료를 받기가 쉽지 않다. 나처럼 간단한 진료로도 좋아질 수 있는 질병인데도 방치하다가 수술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이주민이 자기 몸을 챙기는 일은 오로지 혼자 감당해야 하는 몫으로 남겨져 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이 건강해야 사업장 또는 한국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나처럼 이주민이 두려움 속에서 혼자 수술대에 오르는 일이 없도록 사업주와 정부의 세심한 관심과 배려를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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