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UGEE STORIES] 내쫓긴 자들의 삶: 난민으로서, 그리고 이주 노동자로서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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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최근 10년 동안, 이주와 이주민에 관련된, 특히 난민에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나타난 이미지는 두 가지 층위를 가진다. 하나는 오직 경제적 측면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이주한 이주민과 그 가족 및 주변인의 이미지이다. 다른 한편, 수용국에서의 이주민은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만들고 이는 이주민이 최선이 아니라는 이미지를 만든다. 이는 메시지의 나머지 스펙트럼은 아니더라도, 미디어를 형성하고, 특정 정치 풍조를 위해 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해 난민이나 이주민을 지역의 정치적 갈등의 “요소”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이주민을 떠올릴 때 혼란스럽고, 어둡다는 이미지가 형성되는 이유이다. 그와 동시에 이주민에 대한 첫 번째 이미지, 돈만 벌러 온 이주민이라는 이미지의 경우 시민으로서, 그리고 종종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주민과 난민의 삶이 어떤지, 그리고 어떤 어려움을 마주하고 있는지를 보기 위해서 우리는 경기 북부에 거주하는 이집트 난민 M.A를 만났다.

30대 중반의 청년 M.A씨의 집으로 향하는 동안 우리는 이곳이 충분히 여유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확신했다. 우리는 M.A씨와 그의 가족을 적절한 환경에서 만날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굉장히 긍정적이었으나, 우리가 보고 들은 현실은 우리의 기대와는 완전히 달랐다.

M.A씨는 알-아자르 대학 학생인 현재의 그를 있게 만들고 그의 인생을 형성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면서 자신과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는 어릴 적 이집트의 시골 지역에서 자랐는데 학교를 어린 나이에 그만두어야 했고, 일하는 아이가 되어 기계를 다루는 직업을 추구해야 했다.

그와 인생을 함께하고, 결혼하고 그의 생업을  이어갔던 것은 오직 그와 그의 부인 둘이었다. 첫째 아이를 잃고, 둘째 아이가 2015년에 태어날 때까지 부부 둘 뿐이었다.

그는 그의 삶에 대해 아주 화려한 수식어를 즐겨 사용하면서 말했다. 아마도 그가 알 아자르에서 언어학,종교학, 여러 과학 등을 포함한 수십 개의 과목을 들으면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집트에서의 어려운 경제적 환경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는 선반 제작 기술도 배웠지만, 1월 25일 이집트 혁명 이후에 대부분 사람들이 직면했던 어려움들로 인해 그 기술로는 더 이상 먹고 살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는 요르단에 가서 같은 그 기술을 가지고 우물을 시공하고, 유지 보수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MA씨에게 그와 그의 가족이 모든 자산을 처분하고 한국으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하지만 그는 이 사안에 대해서는 단 하나도 자세히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의 망명과 그가 이집트에서 겪었던 문제를 말하는 순간 그와 그의 가족들이 위험해 질 것으로 생각하여,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제가 말할 수 없다는 것 뿐입니다. 이 부분은 매우 위험해요”라고 말했다.

M.A.씨는 그가 한국에 도착한 이후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서 말을 이었다. 그의 세 살배기 딸의 발이 골절되어 그가 치료비를 부담하기 위해 일을 해야만 했다.  그 일은 “농업용 트랙터를 유지 보수”하는 일이었는데, 제대로 된 근로 계약을 쓰지도 않았고, 주거 시설은 “컨테이너”라 불리는 주석 깡통에 지나지 않았다고 M.A.씨는 말했다. 그와 가족들이 여름 동안 머물렀을 때, 그 곳은 “전자레인지”같았다.  하지만 그의 고용주는 농번기가 지나고 겨울이 되자, 그가 그 곳에서 더 이상 일할 수 없을 것이라 통보했다

M.A씨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직장을 찾아서 옮기게 된 “케이터링 업체”에서 그와 그의 아내는 한동안 일하며 그 이전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들은 잘한 일이고 이제부터 고통은 없을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한국 정부가 난민 신청을 기각했다”는 통보를 받으면서 또다시 문제가 시작되었다.

그는 그 때부터 그의 망명 사례를 인정받기 위해 법정 소송을 시작해야 했다. 그는 회사 상사에게 휴일을 달라고 요청해야 했고, 이 때문에 그는 “망명신청자”가 한국에서 가장 심각한 인종 차별에 노출되어 있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상사에게 그가 망명 신청자라는 사실을 밝혀야 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시작하면서 생긴 변화때문에 그와 아내와 함께 고용계약서에 써있는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일자리에서 쫓겨났다. 그는 우선 인간으로서의 그의 권리가 침해당했고, 또한 다른 회사 동료가 그의 딸을 조롱해서 노동자로서의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 이상을 견디기 어렵다고 느꼈다. 

 뿐만 아니라 한번은 딸이 업체에 있던 커다란 냉장고에 갇혀, 오랜 시간 동안 M.A.씨가 찾을 수 없었던 일도 있었다. 결국 그가 나중에 찾았지만, 그동안 저온으로 인해 딸에게 큰일이 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이런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MA씨는 자신이 그 직장에 있을 동안 겪었던 폭력과 차별에 항의하고, 그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 소송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비록 변호사들이 그의 법적 상태가 ‘좋음’ 이상이라고 장담했지만, 그는 언어의 차이 때문에 시스템을 알 수 없어서 한국의 시스템이 그를 도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MA씨는 의류 제조 공장에서 새로운 직업을 얻었고, 그동안 겪은 것들을 잠시나마 잊고 그의 삶을 다시 복원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아래쪽 허리에 심각한 고통을 느꼈고, 일터를 떠나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 의사는 그가  염증, 연골액의 돌출을 수반한 침식성 척추 질환을 앓고 있다고 했다. 장시간의 고강도 노동으로 인한 질병이었고, 그는 여러 번 수술실로 향해야 했다. 약 3개월간 입원해 있었고, 수술비, 약값, 입원 비용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고용주에게 그의 치료에 필요한 산업재해에 대해 문의를 하니, 그는 100만 원을 주는 대신, 상해와 회사가 전혀 상관이 없다는 문서에 서명하라고 했다. 그런 일이 실제로 그에게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M.A.씨는 출입국관리사무소가 그가 아플 때 어떻게 대했는지에 대해서 말했다. 출입국사무소는 병원이 그가 거주지 갱신을 위해서 방문할 수 없다는 문서를 보냈음에도 수용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고통스러운 몸을 이끌고 아내와 함께 출입국 사무소를 방문해야 했다. 이는 결국 그의 병을 더욱 악화시켰다.

M.A씨의 집에서 한 시간쯤 머물다 보니, 한국 가정보다 이집트 가정에 더 가까운 곳에서 우리는 익숙함을 느꼈다. 우리는 집에 왜 그의 부인이 없는지, 그리고 그의 딸이 왜 학교에 가지 않는지에 대해서 더 물었다. 그러자 그는 그의 부인은 새로 태어난 아들을 돌보기 위해서 병원에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이해한 대로라면 아들은 몇 주 전 선천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상급 의료 기관의 치료를 해야 하며, 그의 부인 역시 병원에 장기적으로 입원해야 했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난 그의 자녀에 관한 출생 등록 서류를 얻기가 힘들다는 것 역시 언급했다. 모든 사람이 거부하고, 출입국 사무소는 ‘아이 여권은 어디 있느냐’는 단 한가지 질문 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난민인데 어떻게 여권을 만들어요? 라고 MA씨는 물었다. 그렇게 한 존재로서 아이를 출생등록하기 위한 아버지의 노력은 끝나버렸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주노동자로서, 그리고 난민으로서 한국과 같은 나라에 사는 것에 대한 그의 시각을 물었다. 질문은 ‘당신에게 이런 모든 일이 일어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였다.

그의 반응은 확신에 차있었으며, 굉장히 놀라웠다. 그는 답했다. “나와 우리 가족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우리가 직장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출입국사무소 같은 정부기관에서도 적절한 존중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답했다. “우리가 정치적 망명자라는 이유로, G-1 비자로 체류 자격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아무에게도 존중받지 못한다.  G-1 비자를 가진 것은 그 소유자가 인종 차별, 억압, 고립, 착취에 언제든지 노출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더욱이 이 나라에 모든 곳에서 이런 것이 알려져 있고 그런 관행이 행해지고 있다. 심지어 통신사에서도 비자 종류 때문에 서비스를 제공하기를 거절한다.”

이에 대한 해결책을 가진 것은 정부, 바로 한국 정부와 법무부라고 그는 즉답했다.  “그곳에서부터 우리를 존중한다면, 나머지 모든 곳들도 우리를 존중할 것이며, 가치 있고 존중받을 만한 비자를 준다면, 또는 지금 우리의 비자를 바꾸기만 한다고 해도, 모든 사람은 우리를 존중할 것이며 홈리스나 정의에서 벗어난  범죄자들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일터에서 하는 노력과 숙련도 역시, 우리가 가진 외국인 신분증이 가진 상징을 벗어나 진가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기자 | Ibrahim Abdalla/이브라  기자 (이주민방송MWTV)

사진 기자| Darwish Musab/무열 기자 (이주민방송MWTV)

번역 | 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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