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2018년 제주 예멘 사태 이후의 이야기들 시리즈 두 번째 <혐오와 종교적 차이를 뛰어 넘는 난민 지원활동>

[2018년 제주 예멘 사태 이후의 이야기들 시리즈 두번째]

혐오와 종교적 차이를 뛰어 넘는 난민 지원활동

2018년 대한민국은 굉장이 뜨거웠다. 한쪽의 사람들은 “국민이 우선이다” 라고 외치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난민을 환영한다” 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러한 대립적인 갈등은 2018년 제주도에 도착한 500명 가량의 예멘 난민들이 법무부 출입국에 의해 ‘출도 제한’이 되면서 불필요한 논란의 시작이 그 원인이 되었다. 이후 혐오세력들의 발언들과 행동들은 예멘 난민이 제주도라는 섬을 벗어나 소위 육지로 오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오직 5명만이 인도적 사유로 제한 해제를 받았으며, 나머지 492명은 출도제한이 되었다. 난민심사 또한 대부분 인도적체류자 지위를 부여하는 것으로 끝났고, 극히 소수의 예멘 난민이 난민 인정자가 되었다. 이후 2020년 현재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예멘 난민은 마치 잊혀진 존재 마냥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 이주민방송MWTV의 웹진 VOM이 새삼 이들의 삶이 궁금해진 건 왜일까? 그 두번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카톨릭 성당 소속 나오미센터의 김상훈 사무국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오미센터 외부 전경 (사진:정혜실)

상관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한국의 이슬람에 대한 건 저 같은 경우는 고등학교 다닐 때도 별로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전혀 의식이 없었어요.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 했어요. 20년간 엔지니어로 살아왔기 때문에 사회문제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천주교에서 이렇게 2008년부터 일을 하게 되었는데, 저는 학교 다닐 때도 이슬람에 대한 것을 배워본 그런 기억이 없어요. 거의 없어요. 사회에 나와서 방송에서 어쩌다 술 마시다가 밤 12시 넘으면 거기서 무슨 이슬람문화 아니면 거의 12시가 넘어서 해요. 일반인에게 이슬람이 알려지는 거는 거의 전혀 없었다고 보시면 될 거 같애요. 그래서 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슬람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저는 매일 무슬림을 만나서 알게 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전혀 딴 세상의 사람들로 생각할 듯. 기껏 이슬람이 나왔던 것은 그 tv 뉴스시간에 미국과 대립하는 이슬람에 대해서만 생각할 거예요. 그래서 아마도 지금도 많이 남아있을 것 같고. 그런 생각이.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어요. 독특한 대한민국의 문화인 것 같아요. 그렇게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러다가 천주교에서 1년에 두 번 정도 200명에서 300명 정도가 모이는 모임이 있는데. 2박3일로 3월에는 공부를 하고, 10월에는 피정을 하고 그래요. 그렇게 2018년에 3월에도 만났어요. 그렇게 만남을 하는데, 그 때 한 세션이 있었어요. 그 MAP의 김영아 대표로부터 처음으로 난민에 관한 강의를 들었어요. 난민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죠. 사실 천주교 사람들은 교황님이 계시니까. 교황님이 항상 난민에 대한 관심이 많이 보이셔서 신문지상에서 보는 교황님의 말씀 그리고 또 교황님이 생각하시는 방향을 보면서도 그것은 유럽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었죠. 유럽의 스토리.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거라고 생각했죠. 근데 그때 20018년 3월달에 그렇게 거기서 강의를 듣고 명함만 주고 받고 와서 인터넷 서치를 해봤어요. ‘제주 난민’이라고요. 그랬더니 기사가 뜨는 거예요. 기사가 열 몇 개가 뜨는데 다 한가지 이야기예요. 즉 출입국에서 보도자료 뿌린 거예요. 그게 무엇이냐면, “2017년도에 제주 난민 신청이 하루에 한 명 꼴, 무슨 일이?” 이게 가장 선정적인 제목이었어요. 내용을 읽어보면 그거예요. 실제로 “320 여명이 신청을 했고. 2017년도에 그리고 대부분이 가짜 난민이다.” 라는 게 그 기사들의 논점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몰랐었으니까. 제주도에 온 난민들은 다 가짜 난민인가 보다. 사실은 가짜 난민에 대한 정의도 없었어요. 그냥 신문에서 이야기 하니까 다 가짜 난민인가 보다 했죠.

십자가를 찾아 온 난민들!

며칠 있다가 그 조직도 그 출입국청의 난민 담당 한사람이 있고, 팀장이 있고, 전화번호가 있어서 메모만 해두었어요. 메모만 해 둔 상태로 따른 일로 바쁘니까 밀쳐 두었죠. 그러다가 신강협씨로 부터 전화가 온 거예요. 육지에서 누가 내려오는데 난민과 관련한 그 사람이 내려오는데 만나 보자고 그래요. 그런데 저는 천주교 쪽에 소속이 되어 있어서 뭘 하려고 하면 당연히 허락을 받아야 되니까요. 언제냐 그러니까 근무시간 후라고 하더라구요. 그러면 개인적으로 나가겠다고 해서 나갔어요. 그래서 그 때 만난 활동가들이 우리 둘 하고 피난처 이호택 대표, 김성인 국장, UNHCR 채현영씨, 그리고 신문기자 그렇게 만나서 처음으로 제주도에 난민이 들어왔는데, 그 때 충격적으로 받아 들였던 게 출도제한이었어요. 저는 출도제한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출도 제한 이야기를 다루었고, 그게 전부 다였어요. 그리고 난 뒤 필리핀 여성이 전화를 했어요. 예맨 남자가 한 사람이 국장님 보고 싶어한다고. 그래서 아무 때나 오라고 해 그랬죠. 그래서 이제 만난 게 검단이라고 하는 멋진 친구를 만났죠. 제가 만난 아랍출신 친구 중에 처음인 거 같은데. 만나서 이야기를 해서 알게 된 사실이 예맨 난민이 굉장히 많이 들어와 있고, 상상외로 많이 들어와 있다. 그 친구는 한국에 들어왔기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했지요. 아마도 다른 이주민센터를 갔는데 거기서는 도움을 못 받았나 봐요. 그래서 우리 쪽으로 찾아오게 되었고. 그날 만나서 이야기를 했어요. 여기로 와라. 한국어를 가르쳐주겠다. 그대신 당신이 통역을 해라. 우리는 그때까지 아메드(시리아 출신의 상근활동가)의 존재를 몰랐어요. 그래서 알게 된 그 친구를 통해서 통역을 시작했죠. 영어를 잘하니까. 그 친구가 2~3일 안에 SNS에 정보를 알아 가지고 올려주고, 그걸 가지고 내부적(천주교)으로 보고서 한 장을 썼어요. 제주에 난민이 500여명 가까이 들어왔고, 그 사람들이 2~3주 지나면 돈이 떨어지고 노숙을 할 지경이다. 그래서 긴급구호가 필요하다는 것 까지만 해서 보고서를 올렸죠. 그래서 그게 승인이 난게 5월말에 났어요. 그래서 우리가 활동을 시작한 것이 6월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을 하게 되었죠.

그때는 4층만 쓰던 시절이고, 우리는 인터넷 홈페이지도 없고, 070 번호만 하나만 갖고 있는 그런 상태였어요. 그래서 며칠 안되어서 그 친구들이 찾아오면 궁금했어요. 신기해서 어떻게 찾아 왔는지 물어봤죠. 그래서 물어 보면은 그 친구들이 한 답중에 가장 기억이 남는게 그거예요. 자기들한테는 십자가를 찾아가야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십자가가 두 가지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어느 십자가를 가면 나가라고 하고, 어느 십자가는 되고. 그래서 그 친구들이 십자가가 있는 곳으로 가면 대부분이 거기에 미사나 예배시간표가 있잖아요. 그것을 보고 끝나고 나서 가면 이야기를 해서 연결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보면 알 수 있잖아요. 누가 목사인지 누가 신부인지. 그래서 우리도 그렇게 연결이 되어서 시작이 되었지요.

처음에 그냥 그 사람들 원했던 것은 “먹을 것 없어요, 잘 곳이 없어요, 아파요” 그 세가지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그 세가지를 위해 일을 시작했어요. 우리 천주교에서 지원하는 센터로서 나오미센터는 미사에 오는 사람들만을 위해서 지원하는 활동을 하니까 사실 예산도 별로 없고, 미사 끝나면 하는 카톨릭 의사와 약사들이 클리닉 지원해주고, 가끔 뭐 행사에서 위로해주고, 물놀이 하고, 체육대회를 하는 이런 것들이 전부였어요. 이주민을 위한 뭐 이런 개선보다는 찾아 온 사람들 도와주는 그런 정도였어요. 먹을 걸 달라고 하는데 돈도 없고 곳이어서 초기에는 굉장히 난감한 일이었죠. 크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이었어요.

본격적인 난민 지원과 쏟아 지는 후원금들!

그렇게 첫 번째로 주보(일요일마다 나오는 예배 순서와 공지사항이 적힌 종이)에다가 공지하는 게. 난민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생필품이 필요하다고 실었어요. 그때 우리도 무서워서 뭐라고 했냐면 가족들이 들어온다고 하니, 가족들만을 받아서 도와 줄 집을 봉헌하거나 방을 빌려줄 것으로 공지했어요. 우리도 집에 대해서는 한계를 그은 것이 애들이 있는 가족만 도와주기로 한 거죠. 열 한 가족만 있었어요. 제일 첫번째 활동이 인도적 차원에서 제주도에서 내 보내자는 것으로, 가족들을 면담을 해서 출입국에 가족 별 진정서를 제출하였어요. 그렇게 작성을 해서 제출을 했고, 열 한 가족 중에 한 가족은 아버지가 육지에 있어서 일주일 후에 허가를 내주었고, 나머지 가족은 여기 계속 남았어요. 그렇게 해서 시작을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해서 시작을 하고. 그리고 나니까 후원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통장을 하나 해서 후원을 하는데, 육지에서 많이 들어왔지요. 아까 무섭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죠. 무섭게 반대하는 중에 그만큼 후원금이 많이 들어왔어요.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그렇게 후원금이 들어오기 시작하니까 이제 집을 알아봐 주고, 먹을 것을 해줄 여유가 생기는 거죠. 그래서 우리 천주교에서 제일 먼저 공소 옛날 성당, 지금은 안 쓰는 곳. 규모는 갖추고 있는데, 정규직으로 열리지 않는 곳. 지금은 정기적으로 열리지 않는 곳. 한달에 한 번 정도 미사가 열리는 곳. 일부는 일반 사람들이 써라. 공소를 주교님이 쓰라고 하신 거죠. 어떤 신부님은 아예 집을 빌려서 난민을 위해서 쓰라고 하셨어요. 어떤 신도는 자기가 집을 구해서 먼저 3개월치 집을 빌려서 주기도 함. 어떤 사람들은 자기 아파트의 한쪽을 내주기도 하고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났죠. 그 당시에 제주에도 반대하는 사람도 있기는 있었지만, 도와주는 사람들이 만만치 않게 있었다는 거죠. 단지 반대하는 사람은 시끄러웠지만, 도와주는 사람들은 조용히 도와주었어요. 나중에 내가 몇 개월 뒤에 언론의 방송 보도에 따라 후원금이 증가하기도 했어요.

기억에 남는 후원자는 대전에 있는 할머니였어요. 계정을 알려달라고 하셨는데, 당신이 적금을 들오 놓은 게 내일이면 탄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그 돈을 애들한테 안쓰고 기부하고 싶으시다는 거예요. 아 그러시냐고 하면서 그럼 감사하다고 했는데, 나중에 받고 보니 천만원 이예요. 그러니까 그분은 말씀하시면서 그 이야기만 하고, 그 사람들 위해서 잘 써달라고 하시기만 했어요. 그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렇게 크게 하신 분들이 꽤 많았어요. 그래서 돈이 없어서 부족해서 활동을 못한 거는 없었어요. 출도제한에 걸린 사람들이 배고픈 사람이 없었고요. 집이 없어서 밖에서 잔 사람이 없었어요. 정말 제주도에 있는 도민들이 다같이 합심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만나게만 해주면 변할 수 있다!

우리가 집을 얻는데, 제일 많았을 때는 18채 있었죠. 초기에는 법원 근처에 연립주택을 하나 구해서 거기다가 아홉 명 정도를 재웠어요. 초기에는 방 하나에 4명씩 들어가서 살았어요. 정말 난민 촌. 8명이 들어가 있었는데, 2주 이후에 집주인에게 연락이 왔어요. 동네 사람들이 자기한테 전화를 한다. 제발 좀 내보내 달라고. 그래서 우리 사람들이 소리지르고 시끄럽게 하고 그런 게 있었나요 라고 물어보면, 아니요. 그냥 지나가다 보면 무섭다고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 한달 치 돈을 돌려 줄 테니 나가 달라고 하는 거죠. 그리고 아파트에서는 담배 피는 친구들이 많다 보니, 실내에서 담배를 피지 말라고 하니까, 정자에서 담배를 피면 주민들이 경찰한테 신고를 해요. 눈에 보이면 무섭다는 거예요.

공소의 외진 곳에서도 이장이나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도 저녁 8시쯤 전화가 와요. 그 사람들 검은색 봉지 들고 들어갔데요. 그 다음부터는 자기 소설 이예요. 이 사람들 분명히 소주를 사갔을 거래는 거예요. 분명히 저녁에 나와서 행패 부리고 떠들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들 소주 안 마셔요. 이슬람이니까. 그래도 아니래요. 그러면 지금부터 2시간 이후에 전화를 하라고 하죠. 전화가 안 와요. 왜냐하면 자기들의 상상이니까요. 그런 것들을 다 겪은 다음에 보면, 저도 검단이라는 친구를 만났을 때 아랍 사람이는 게 그런 거구나. 예맨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구나. 알게 되는 거잖아요. 얼굴이 험악 해도 만질 수 있다. 만나지 않은 사람들은 TV를 통해 소설 쓰는 것이라고 봐요.

성당에서 열심히 일하는 자매들이 오 십대 육 십대 가장 활발하게 일을 해요. 그런 주부님들이 생필품 필요하다고 할 때 처음부터 가지고 와요. 후라이팬 등 여러 가지 가지고 옴. 교회에서 하라고 하니까 하는데, “왜 우리가 도와주어야 해요?”라고 해요. 교황님은 도와주라고 하는데, 언론은 아니라고 하니까. 그런데 나오미센터가 옷을 몇만 장 받았어요. 길 건너에 커피숍이 있어요. 거기가 분양이 안되었으니까 커피 주인이 무료로 쓰라고 했어요. 옷을 다 행거에 걸어서 채웠지요. 자매님들이 조를 짜서 요일 별로 관리를 해주었어요. 난민들이 오면 외국인 등록번호 적으라고 하고. 몇 개 몇 개 가져 갔다고 적는 책상을 갖추고 일을 해요. 그래서 틈틈이 가서 보면, 세 명이 일을 하는데, 한쪽 구석에서 일을 해요. 책상 뒤에서 말이죠. 아이디 카드를 주면 안받아요. 직접 받지 않고서 책상 위에 놓고 가라고 하고요. 전혀 접촉을 할 의향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보면 볼수록 눈이 맑다고 해요. 그러다가 이제는 옷을 갖고 보면, 겉옷 같은 거 가지고 오면 가서 어울리는 옷으로 챙겨주기 시작한 거죠. 입혀주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스킨십이 시작되고 3주가 되니까 이모라고 부르라고 하는 거예요. 난민들도 오며 가며 들르게 되고요. 그렇게 되는데 거의 한달이 걸리지 않았어요. 5개월 동안 나누어 주었는데, 다 나눠주고 철수했죠. 이제 그들을 위해서 뭘 해야 하는지 그 자매들이 물어요. 그래서 그 자매님들이 한국어 공부를 가르치고 있어요. 클래스 3개를 가지고 가르치는 중 이예요. 만나게만 해주면 변할 수 있어요.

당신들은 당신들 방식대로 기도해주면 좋겠어요!

교황대사님이 왔다 가신 적이 있어요. 대사가 바뀌시고 나서 첫 번째 나들이가 제주였던거죠. 대단하시다 생각했더니, 프란치스코 교황님 비서였던 거죠. 그래서 중요한 사람들 만나고 주요하게 일정 이후 방문하고 후원금을 주셨어요. 난민 여덟 아홉 명이 있었는데 인사만 한 게 아니라 다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실무자들에게 큰 힘이 되었던 게, 공소는 예배 장소여서 예수님 성모님 성화나 다 있었음. 근데 그 친구들은 시간대 별로 기도를 해야 되잖아요. 이슬람방식대로 기도해야 하나? 어떡하지 하고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요. 교황대사님이 전세계 카톨릭 신자들은 같이 합심을 해서 예맨 내전이 끝나기를 기도한다고. 하시면서 우리 기도만 가지고 부족하니까. 이 장소에서 당신들 방식대로 기도를 해주면 좋다고 여기서 기도를 해달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걱정이 다 사라졌어요. 그래서 숙소제공하는 데 어려움이 없이 다 해결이 되었지요.

인터뷰를 마친 후

나오미센터의 김상훈 사무국장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의 활동가인 신강협님 덕분이다. 그와의 인터뷰도 곧 연재될 예정이다. 이번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알게 된 것은 제주 예맨 난민 도착 당시의 상황이다. 그 중 카톨릭이라고 하는 종교적인 부분이 이슬람 출신인 무슬림 난민 지원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된 부분이다. 단체는 결국 사람이 일하는 곳이다. 나오미센터의 활동가로서 기존에 해왔던 방식을 넘어서 연대할 수 있는 포용성이 그 조직에 영향을 미치고, 그 조직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교적 지도자의 말 한마디와 태도라는 것이 얼마나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그 이면 또한 무섭다.

이슬람을 전혀 알지 못하는 한 개인이 자신이 활동하는 공간으로 난민이 찾아 왔을 때 문을 연 것은 역시 마음과 동시에 행동 이어야 함을 알게 해준 인터뷰였다. 제주 또한 혐오세력들에 의해 혐오발언과 국민이 우선이며, 제주도민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주장에 휩싸이기는 했으나, 난민을 직접 만나 이야기해보고 함께 접촉해 본 사람들은 서로의 경계를 결국 넘어섰다.

종교적인 장소로서 성당이었던 공소를 내주는 일을 넘어서 이슬람 방식의 기도를 포용하고 오히려 방식은 다르지만 함께 기도함으로 합심 하자는 이야기는 감동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더 감동적인 것은 기꺼이 공간을 내어주고 함께 한 사람들이며, 노년의 여성이 차곡차곡 모은 적금을 가족이 아니라 난민을 위해 쓰라며 내준 것이었다. 국민이 우선이라고 외치는 혐오발언과 달리 가족조차도 우선이 아니었던 그런 마음들이 있었기에 한국사회에 희망이 있다. 그렇다! 혐오발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크고 더 잘 들리지만, 마음을 다해 도와주려고 했던 사람들은 조용히 뒤에서 드러내지 않은 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혐오세력들의 큰 확성기와 난민들을 왜곡되게 보도하면서 편견과 고정관념을 퍼뜨리는 언론에 현혹되지 말자. 우리는 따뜻하고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함을 기억함으로 함께 더 열심히 연대하면 된다. 무지는 두려움을 키우고 낯 설음은 때로 공포를 일으키지만, 만나보면 안다. 혈육을 넘고 민족을 넘어 국민을 넘어서면 사람과 사람으로 서로의 존엄을 지켜줄 수 있는 충분한 사유가 있음을 말이다. 그래서 의심보다 제대로 알기를 통해 서로의 신뢰를 쌓아가는 기회가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글•사진 | 정혜실 (이주민방송MW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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