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예멘에서 온 래퍼이자 영화감독인 아티스트 유수프가 꿈꾸는 자유

[기획취재] 2018년 제주 예멘 사태 이후의 이야기들 시리즈 세 번째

<예멘에서 온 래퍼이자 영화감독인 아티스트 유수프가 꿈꾸는 자유>

2018년 대한민국은 굉장히 뜨거웠다. 한쪽의 사람들은 “국민이 우선이다” 라고 외치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난민을 환영한다” 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러한 대립적인 갈등은 2018년 제주도에 도착한 500명 가량의 예멘 난민들이 법무부 출입국에 의해 ‘출도 제한’이 되면서 불필요한 논란의 시작이 그 원인이 되었다. 이후 혐오세력들의 발언들과 행동들은 예멘 난민이 제주도라는 섬을 벗어나 소위 육지로 오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오직 5명만이 인도적 사유로 제한 해제를 받았으며, 나머지 492명은 출도 제한이 되었다. 난민 심사 또한 대부분 인도적체류자 지위를 부여하는 것으로 끝났고, 극히 소수의 예멘 난민이 난민 인정자가 되었다. 이후 2020년 현재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예멘 난민은 마치 잊혀진 존재 마냥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 이주민방송MWTV의 웹진 VOM이 새삼 이들의 삶이 궁금해진 건 왜일까? 그 세번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래퍼이자 영화감독인 유수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왼쪽부터 Akram / Hadeel / Yousef

랩 뮤직은 나의 이야기이고, 내가 경험한 것들이에요

아랍세계에서 랩 뮤직은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아요. 특히 예멘도 마찬가지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부터 랩 뮤직과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어릴 적에 친구들과 랩 뮤직을 듣고 연습을 하고, 가사를 적고 했지만, 기회가 없었어요. 그게 18살까지 그랬고, 기회를 찾기 위해 노력을 했죠. 나는 그 기회를 한국에서 찾았어요. 내 노래는 나의 겪은 일들에 관한 것이죠. 랩 뮤직은 나의 이야기이고 내가 경험한 것들이고, 어떤 것들은 정치적인 것이거나, 경직된 종교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죠. 내 스타일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예멘 사람이지만, 예멘인 답지 않아요. 어쨌든 예멘에 돌아갈 생각도 없어요. 이렇게 입고 다닐 수도 없고, 이렇게 머리를 할 수도 없죠. 타투는 더더구나 안 되고요. 내가 성장하면서 알게 된 것은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들은 언제나 아름다운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쁜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지만 분명히 다른 세계가 있고, 이것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어요. 사람들은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죠.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정치적이거나 내 삶에 관한 것이든 다 노래하죠. 이렇게 개인적인 경험을 노래하거나 난민이 된 후의 이야기를 노래하기도 해요.

음악에서 자유로움을 느껴요

종교적으로 유명한 어떤 사람이 SNS 메시지를 통해 죽이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내가 예멘을 떠난 건 18살 때였어요. 2018년에 한국에 왔는데, 한국이 처음으로 도착한 낯선 곳은 아니었어요. 여기 오기 전에 말레이시아에 있었고, 한국에 대해 기대를 하고 있었어요. 이미 한국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를 많이 했고,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서 한국의 영화들을 많이 보기도 했었거든요. 나는 2018년에 다른 예멘 사람들과 같이 왔어요. 난민 인정을 받지 못했고, 인도적 체류 지위를 받은 상황 이예요. 막상 한국에 와서 예멘 난민들에 대한 반응을 보고 두렵지는 않았으나 놀라기는 했어요. 하지만 난 한국사람들을 판단하고 싶지 않아요. 왜냐하면 나는 이미 많은 한국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나는 그들을 좋아해요. 세상 어디나 좋은 사람 또는 나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나는 여기서 조금도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죠. 왜냐하면 나는 내가 원하는 것만큼 표현할 수가 없는데. 무엇보다 어려운 것 중 하나는 언어 문제이고, 일터에서의 전통이나 나이든 사람들이 요구하는 예의를 잘 모르겠고, 내가 하고 싶은 예술을 위해 노동을 병행하는 일들이 어렵기도 해서요. 일하고 와서 작업을 하는 일이 그리 쉽지가 않아요. 그래도 음악에서 자유로움을 느껴요. 한국이라는 나라이기 때문이 아니라 언제나 나는 음악으로 자유롭게 내 가사를 쓰고 있기 때문이죠.

제주 4.3사건과 공명하며 만든 영화 ‘무덤에서 온 메시지’를 만들다

어느 날 호의적으로 다가온 한국남자를 내가 아르바이트 하던 레스토랑에서 만났어요. 그는 웹툰 작업을 하던 사람으로 아직 뚜렷하게 성공한 작품은 없었어요. 그는 내가 뮤직 비디오를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가 아이디어가 있다면서 제안을 해왔어요. 그는 아이디어를 공유하고자 했어요.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에요. 그래서 아이디어를 서로 공유하는 것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그는 내 음악을 듣고 뮤직 비디오를 보고 나서, ‘제주4.3 평화 영상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는 별로 생각이 없었어요. 제주 4.3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어서 배워야만 했고, 조사를 위한 시간을 좀 달라고 했어요. 그는 랩으로 이 사건에 대해 노래를 해보겠냐고 제안을 했고, 나는 아니라고 답을 했죠. 아니면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했고, 나는 아니라고 했으며, 예멘인들의 이야기는 어떠냐고 했을 때 역시 나는 아니라고 답했어요. 나는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불편했고, 그냥 조사할 시간을 좀 달라고 했어요.

마침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나의 약혼녀는 제주 ‘다크투어’에서 인턴십으로 일을 하고 있었고, 그녀는 관광경영을 공부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녀는 이 사건에 대해서 웹사이트를 통해 잘 알고 있었고 참고자료로 도움을 줄 수 있었죠. 그녀는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우리는 서로 제주 4.3 사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내가 이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때 너무나 슬펐어요. 친구들과 팀 멤버들에게 말을 했는데, 3분 안에 이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에 실망했고, 이 이야기를 위해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나는 정말 이 이야기를 좋은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어요. 나는 또 왜 이 사건에 대해 왜 많은 영화가 없는지도 물었어요. 오직 하나의 영화만 발견했는데, 그게 바로 ‘지슬’이죠. 나는 연구조사 차원에서 이 영화를 봤어요. 그래서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 아이디어에 대해 한국인 동료들이 좋다고 했죠. 같이 하기로 한 친구는 영어를 잘 못했고, 나는 한국어를 잘 못해서 문제였어요. 통역의 한계가 있었고, 여러 요구가 있었는데 일단 멈추고 나서 생각해 보았죠.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죠. 그는 제주방언으로 하는 대본을 쓰기로 했어요. 그리고 춤을 추기로 한 여성이 자원하여 무보수로 참여했고요. 많은 사람들이 자원으로 참여했어요. 내가 혼자 비디오 클립을 만들고, 녹음을 하고, 편집을 해야 했어요. 제주 사람인 나이 든 여성을 배우로 섭외했고, 그녀가 대본을 보더니 맞지 않는다며, 제주 방언으로 모든 걸 써주었죠. 나는 그녀의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한 장면이 끝날 때마다 설명을 들어야 했어요. 어렵게 만든 영화는 구글 드라이브를 통해 4.3 평화영상공모전에 보냈고, 10월31일에 1등을 했다고 연락을 받았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제9회 이주민예술제가 ‘코로나 19’로 인해 온라인 생중계가 되던 어느 날, ‘뮤직 퍼포먼스 & 토크 프리즘’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바로 유수프가 ‘블랙&그레이’라는 그룹 이름으로 아랍어 랩을 하고,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들이 예멘에서 온 난민 출신의 아티스트들이라는 것을 알았고, 제주도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제13회 이주민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예멘 난민에 관한 영화 ‘노프라블랜드’ 팀원이기도 했다는 놀라운 사실은 제주에서 만났을 때 알았다. 그 영화의 감독인 양재영 덕분에 스튜디오를 절반 가격의 대여료를 내고 빌릴 수 있었고, 그곳에서 그가 만든 노래들이 녹음되었다. 지난 기사에서 소개한 아살람 레스토랑에서 그룹 멤버들을 실제로 만날 수 있었고, 모두가 유쾌한 젊은 뮤지션들이었다. 영어가 안되는 엔지니어와 한국어가 안되는 아티스트들이 간단한 한국어 “아니오”와 “여기 조금” 몇가지 단어들과 바디랭귀지로 녹음해 만들어낸 랩 뮤직은 멋있었다. 그는 이렇게 자신들이 음악을 할 수 있고, 뮤직 비디오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 한국인 친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선과 악의 대립처럼 분명하게 갈려 있다고 보지 않았다. 그래서 블랙의 반대가 화이트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그룹 이름도 블랙 앤 그레이(Black and Grey)라고 지었고, 활동 명도 EL Godfather, Scorpion, Hunter라고 지었다. 이들의 음악은 아래의 링크를 따라 들으며 감상해 보기 바란다.

BLACK and GREY Music 유튜브

그런데 유수프에게 한국은 음악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도망친 나라이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이런저런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얻은 곳이지만, 자신에게 상처를 준 한국인을 만나거나 자신의 예술적 가치를 신뢰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난 곳이기도 하다. 앞서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제주 4.3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상 작업은 제작과정에서 함께 일한 한국인 동료의 불성실과 무례로 상처를 받았다. 특히 최악은 영화 제작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않은 그 한국인 동료가 작품을 제출할 때 자신의 이름을 맨 앞에 기재함으로써 마치 자신이 팀 리더인 양 행세를 했고,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그저 한국어 가나다 순서에 따라 했다고 거짓말을 한 사실이었다. 이후 심사위원들에게 이의를 제기했는데, 작품의 완성도가 한국인의 전적인 기여라고 생각하여 그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더 큰 상처를 받았다. 물론 지금은 그러한 부분이 수정되었지만, 상금 배분의 문제가 남아있다. 당시 그 한국인 동료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고 있고, 연락 두절이라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는 동안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또한 제주4.3 사건에 대한 이러한 깊이 있는 영상은 비록 3분짜리 단편 영상이라 해도 한국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참여 배우의 제주 방언 대본작성이나 전통 춤을 추며 등장한 배우 그리고 그 외 연기자들의 도움은 컸다. 그러나 영화를 이끌고 가는 감독의 역할이나 내용 구성 그리고 편집의 방향은 모두 그가 결정한 것이다. 한국어 대본마저 제대로 쓰지 않은 그 한국인 동료가 가로챌 수 있는 공적은 없다. 이런 일을 겪은 그에게 정말 미안함을 느꼈다. 한국인과 다름을 능력부족으로 인식하는 것이 단지 언어적 한계 때문일까 싶은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난민은 단지 불쌍한 사람들이어서 도와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자신이 살았던 그 곳이 주는 고통을 피해 새로운 기회를 찾아서 희망을 품고 온 사람들이다. 그들의 출신 국적이 다름이 그들이 무엇인가를 할 수 없는 인간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오늘 한 아티스트를 통해 그가 미래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며 살아가는지 알게 되었다. 고된 노동 속에서도 끊임없이 창작을 위해 시간을 쪼개어 활동하고 있었고, 자신들을 환대하지 않는 한국을 원망하기 보다 이미 만난 좋은 한국인들에게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십 대의 젊은 이 남성들은 밝고 건강한 청년들이었고, 아티스트였다. 유수프가 영화제작 공부를 위해 유럽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인도적 체류자 지위로 머물고 있는 현재의 한국이 그에게 비전을 갖지 못하게 하는 나라라는 사실에 절망스러웠다. 이렇게 재능 있고 아름다운 청년이 한국을 함께 살아갈 수 없는 곳이라고 여기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글 | 정혜실 (이주민방송MW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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